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나회 (문단 편집) === 하나회 주도권 잡기 === 하나회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육사 시절 공부 대신 공 차기로 시간을 보낸 '''전두환, 노태우, 김복동, 최성택, 손영길, 권익현, 정호용''' 등 칠성회가 주축이 된다. 이들 중에서 손영길은 박정희의 7사단장 시절 최우수 중대장이 되어 눈에 들기 시작하여 5.16 쿠데타 이후 박정희의 전속부관이 된다. 이후 손영길이 전두환 대위를 국가재건최고회의 비서실 민정비서로 꽂아주기도 했고, 1963년 쿠데타 음모 사건 때는 손영길 소령의 도움으로 훈방되었다. 1963년경 박정희를 찾아갔다가, 박정희에게 육사 내에 [[사조직]]을 만들라고 지시 받은 것도 이들 칠성회의 '손영길, 전두환, 권익현, 노태우' 였다. 손영길은 청와대 외곽을 경호하는 30대 대장으로 4년간 근무하다가 1967년 [[육군대학]]에 입학하면서 그 후임으로 전두환을 꽂아 주게 된다. 여기에 전두환보다 한 해씩 승진이 늦으면서 전두환이 지나왔던 자리를 그대로 넙죽넙죽 받아 먹으면서 성장한 것이 노태우이다. 즉 1번주자 손영길, 2번주자 전두환, 3번 주자 노태우의 서열이 형성되어 있다. 이런 서열 관계는 부인들끼리도 유지되어, 전두환의 부인인 [[이순자]]는 노태우의 부인인 [[김옥숙]]을 대놓고 하급자 대우를 하였다. 몇십 년간 수모를 당하고 있던 김옥숙이 1988년 남편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이순자에게 '''"이제 나는 당신과 다르다. [[체육관 선거|당신은 체육관 출신 대통령 부인이고]], [[직접선거|나는 전 국민이 뽑은 직선 대통령 부인이야!]] 옛날에는 많이 당했지만 지금은 아니야!"''' 라고 일갈한 것은 언론에서도 공개된 아주 유명한 일화다.[* 그런데 이순자는 이것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는데, '''"어떻게 자신보다 나이가 4살이나 더 많은 사람을 하대를 하는가?"''' 라면서 서로 경어를 썼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남편들이 친구였던 것처럼 배우자들 간에도 우애가 돈독했으며 10년 동안 영어공부도 같이 하고 집안일과 자녀 문제 등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면서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https://youtu.be/TkwyKcab1DM?t=3061|본인 인터뷰]]] 사실은, 위의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듯이 굳이 하나회가 아니더라도 직업군인의 부인들 사이에서는 '''남편의 계급대로 서열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대한민국 국군]]의 오래된 병폐다.''' 하다못해 부인들이 다같이 모여서 [[김장]]을 하더라도 부대장 부인은 가만히 앉아서 손가락만 까딱까딱하고, 하급자 부인들은 서열대로 개처럼 구르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웃기게도 남편의 계급대로 서열이 정해지기 때문에, 높은 지휘관이 나이 차이가 좀 있는 [[여군]] [[부사관]]과 결혼했고 휘하 장교들이 동기 여군 [[장교]]와 결혼을 했더라도 높은 지휘관의 부인인 여군 부사관이 부하장교 부인인 여군 장교들을 상대로 윗전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명하복이 필수인 군대에서 위아래가 없이 썩어버린 병폐를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다. 그래도 1진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역시 손영길, 전두환, 김복동, 최성택이었는데 이들 4명은 함께 대령으로 특진했고, 1973년 1월 1일자로 육사 11기 중 최초로 준장 승진하게 된다. 특히 전두환 vs 손영길 vs 김복동의 경우 육사 시절부터 라이벌이었다. 최성택의 경우 포병 출신으로 덕을 본게 있어 앞서 3명에 비하면 파워가 떨어지는 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