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인 (문단 편집) ==== 실재론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한민족)] [[파일:worldfactbook.jpg]] 몇몇 사람들은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아온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여 한국인은 단일민족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이러한 인식은 약탈(looting)도 침략(invade)으로 모조리 합산하여 한민족은 역사적으로 1000번이나 침략 당했다는 80년대 모 교수의 주장 때문인데, 그의 주장과 달리 한민족은 유별나게 많은 침략을 당한 민족이 아닐 뿐더러, 무려 200만 명 이상의 독일 여성들이 강간당한 [[연합군에 의한 독일 점령 기간의 강간]]을 보더라도 여성들은 침략 또는 전쟁으로 임신을 하면 낙태를 하거나, 태어난 혼혈아를 사회적 또는 가족들의 압박에 의해 죽이거나 버려버리기에 단순히 외세의 침략과 전쟁으로는 물에 물감을 탄듯 타민족과 혈통이 섞이지는 않는다. 특히나 한국은 역사적으로 여성들이 정절을 잃으면 자살을 택하는 경우가 흔했기에 외세의 침략이 잦았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이 단일 민족이 아니라는 주장은 몹시 단편적인 주장이다. 혼혈화는 주로 오랜 기간에 걸친 민족간의 자연스러운 민간교류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 경우에도 혼혈아의 유전적 다양성은 몇 세대 후에 유전적으로 동질화되어 한민족과 유사한 유전적 구성을 가지게 되고, 결국 기존의 균질한 한민족 유전자풀에 동화된다. 또한 한국인의 기원을 설명할 때 흔히 북방계와 남방계로 이분법처럼 나누어 말할 때가 많은데, 어디까지나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지, 명확한 실체가 있는 학술적인 집단이 아니다. 특히 특정 지역을 두고 북방계와 남방계로 구분하고, 북방계와 남방계의 외모적 특징들을 구분하는 내용이 인터넷에 많이 떠돌아다니는데, 이는 [[유사과학]]이다. 한국인의 조상이 되는 집단이 어디에서 어떤 경로를 거쳐 한반도에 정착했는지는 아직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알 수 있다. 또한 북방계니, 남방계니 하면서 외모의 특징을 말하는 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다. 북방이라고 하니 몽골, 남방이라고 하니 동남아시아가 떠올라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한국인과 [[동남아시아인]]은 유전적 거리가 아예 다른 인종으로 분류될 수 있을 만큼 매우 멀다.[*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7/7a/Populations.png|전 세계 기준 유전적 거리]] [[:파일:Genetic Distance of 39 Asian populations.png|아시아 대륙 기준 유전적 거리]]] 다른 민족의 예를 들어보자면 [[유대인]]들은 사는 지역에 따라서 외부와의 혼혈이 많이 진행되었음에도, [[유대교]]라는 정체성으로 묶였다. 심지어 이들은 서로 인종마저 다른 경우가 있지만[* 유럽에 살면서 백인과의 혼혈이 진행된 유대인들도 있는 반면, 아프라카에 살면서 흑인과의 혼혈이 진행된 유대인들도 있다. 우간다에는 아예 흑인계 유대인들이 존재한다.] [[유대인]]이라는 [[문화]], [[언어]], [[역사]], [[종교]]의 동질성으로 묶였다. 한국인의 [[하플로그룹]]을 조사한 결과, 한국인은 지역별 유전적 차이가 매우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민족의 주변 민족, 한민족의 조상이 되는 국가들을 연구하면서 한민족의 혈통이 고대부터 지금까지 큰 차이가 없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고려 이후의 혈통 유입을 생각하더라도 그 혈통이 한국인의 현재 혈통에 큰 흔적을 나타내지 않고 있으며, 그들이 한국에서 정체성을 근래까지 유지하지도 못했다고 본다.[* 다만 함경도의 [[재가승]]집단의 경우 근래까지 명맥을 유지했었다. 물론 인종적 차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이것은 혈통성을 따지냐 문화성을 따지냐의 문제라서 해석에 따라 다르게 볼 여지는 충분하다. 이와 별개로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 정착한 일본인 여성들도 많았다. 부용회와 같은 재한 일본인 여성 모임회가 아직까지 존재하며 가장 많았을 때가 4,000~5,000명 정도의 규모였다고 한다. 대부분이 광복쯤에 결혼하신 분들이라 연령대가 90대 이상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2020년 기준 생존하신 분들은 적은편이다. 다만 이것도 혈통성을 따지냐 문화성을 따지냐의 문제라서 이 역시 해석에 따라 다르게 볼 여지는 충분하다. 한편 [[여진족]]은 청의 건국과정에서 동화되지 않았던 집단인 번호가 결국 청에 합류함으로써 소멸하였다고 주장한다. 요동으로부터 도피해온 무리도 있었으나 요동의 거주민은 상당수가 [[16세기]] 초까지 종족적으로 조선인과 동일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풍습이 이질적이었던 재가승이라는 집단이 함경도 지방에 존재했다고 하는데, 인종적으로나 언어적으로는 한국인과 동일했다. 여진족의 후예라는 설이 있지만, 논란이 많은 부분이다.] ||[[파일:imrs.webp|width=100%]] || ||<:> '''국가별 종족적 다양성 수치 '''|| 결국 상대적으로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단일혈통을 유지한 민족이 한국인이다. 다만 이러한 혈통적인 측면은 민족담론에서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하고,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공통된 민족의식인데, 특히 이 부분에 있어서 한국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한반도 거주민들을 한데 묶어 공동체 기틀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1400년에 달하는 긴 세월동안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한민족이라는 민족관이 견고히 형성되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매우 이른 시기부터 높은 동질성을 보이는 편이다.[* 물론 이것은 근대 민족주의의 정의와 연관이 된 것이기 때문에 동아시아 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하는 테제이다.] 단일민족을 긍정하는 또 하나의 주요 근거는 [[언어]]와 [[문화]]다. 언어는 [[민족]]의 형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언어적 동질성이 낮아도 중세 이후에 중앙집권화를 통해 단일성에 성공한 프랑스처럼 연합의 형성이 가능했다. 그러면 한국은 어떠한가? 여기서도 한국은 [[제주도]]를 제외하면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다. 심지어 중국에 간 [[신라]] 사신이 중국어 [[통역]]이 없었는데 때마침 와있던 [[백제]] 사신이 통역을 빌려줬다는 기록과 고대어 연구를 통해 고대 삼국시대부터 서로 동일한 언어계열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제주어]]의 경우가 예외긴 하지만 본토인 [[한반도]]와 비교했을 때, [[국력]]과 [[인구]]를 비롯한 총체적인 격차가 워낙 심했기에 민족성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제주어도 근본적인 뿌리는 한국어와 동류인 형제 언어이다. [[한국어족]] 문서 참고) 중국은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중국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여있지만 각 지역끼리의 언어 차이가 심해서 이미 [[언어학]]적으론 '[[관화]], [[민어]], [[월어]], [[객가어]], [[오어]] 같이 뿌리는 같지만 다른 언어들로 갈라졌다'고 정의내려진지 오래고 심지어 각 지역 언어들의 화자 인구수도 수천만명에 달할 정도로 상당한 규모인지라 여전히 언어를 통한 통합된 민족성 형성에 있어서 애를 먹고있는 중이다. 문화적으로는 물론 지역성은 나타났으나 그것이 대표적 단일민족국가인 [[독일]]이나 일본의 지역차와 비교해도 적은 정도였으며 민족의식의 측면에서도 고려인, 조선인이라는 공통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여러 면에서 살펴 봤을 때, 민족의 기본적인 정의인 집단 동질성 및 집단 정체성 측면에서 매우 높은 수준의 동질화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인종, 언어, 문화, 역사의 동질성으로 묶여있는 공동체를 민족으로 본다면 [[한민족]]은 실재한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민족]]을 언급하며, 민족문화의 창달을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고 적혀 있다.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