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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 총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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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통부 정문
1. 개요[편집]
1927년부터 1949년까지 중화민국(국민정부)의 총통부 청사로 사용되었던 난징시 소재 건축물.
2. 역사[편집]
하늘에서 내려다본 남경 총통부. 우측에는 행정원 건물까지 같이 있었다.
이 자리는 명나라 초기의 황궁 자리이기도 했으며, 명청대를 거치며 양강(兩江)[1]총독의 집무실로 이용되었다. 태평천국의 난 때는 홍수전(洪秀全)의 궁전이 있었으나 1864년에 증국번의 명령으로 대부분 철거되고 1870년에 새 총독 집무실을 지었다. 태평천국의 옥좌가 지금도 내부에 있다.
신해혁명 당시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인 쑨원(孫文)의 집무실(임시대총통부, 臨時大總統府)로 사용되었으나, 이후 중화민국 북양정부가 들어서면서 수도는 북경에 있게 되었다. 1927년 장제스(蔣介石)가 북벌을 시작하면서 이 곳을 국민정부의 본부로 삼았다.
중일전쟁 발발로 국민정부는 충칭(重慶)으로 피난하면서 이 곳을 왕징웨이(汪精衛)의 괴뢰정부가 차지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료와 함께 국민정부가 이 곳으로 돌아왔고, 1947년에 건물 이름도 (중화민국) 총통부로 바꿔 "國民政府"라는 현판을 지금 보듯이 "總統府"로 바꾸었으나, 불과 2년 만인 1949년 4월에 중국 인민해방군에 함락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이후 이 건물을 장쑤성 정부청사로 쓰다가, 지금은 중국 근현대사 박물관으로 공개하고 있다.
3. 여담[편집]
타이베이 총통부와 마찬가지로 난징 시기 역시 집무실과 관저는 따로 분리되어 있었다. 특히 장제스의 관저 미령궁(美齡宮)은 현재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1] 장쑤성 + 안후이성 + 장시성의 3개 성을 일괄적으로 가리키는 명칭. 3개 성인데 왜 2를 뜻하는 양(兩)을 썼냐면 이 당시 장쑤성과 안후이성은 남직예(南直隸: 명)/강남성(江南省: 청)이라는 이름의 하나의 성이었기 때문이다. 장쑤성과 안후이성으로 나뉘게 된 것은 1666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