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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제 마리 엘리자베트에서 넘어왔습니다.
프로이센의 루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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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바덴 대공국의 대공 프리드리히 1세의 아내이자 독일 제국의 초대 황제인 빌헬름 1세의 유일한 딸이다.
2. 작위[편집]
- 프로이센의 루이제 공주 전하 Her Royal Highness Princess Louise of Prussia (1838년 12월 3일 ~ 1856년 9월 20일)
- 바덴의 대공비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Grand Duchess of Baden (1856년 9월 20일 ~ 1907년 9월 28일)
- 바덴의 대공대비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Dowager Grand Duchess of Baden (1907년 9월 28일 ~ 1923년 4월 23일)
3. 생애[편집]
3.1. 프로이센의 공주[편집]
루이제는 1838년 12월 3일 프로이센의 빌헬름 왕자와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아우구스타 공녀 사이에서 둘째이자 장녀로 태어났다. 이름은 친할머니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루이제, 외할머니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비 마리아로부터 따와 지어졌다. 가족들 사이에서 "비비(Vivi)" 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루이제의 위로는 7살 차이 나는 오빠 프리드리히 왕자가 있었다.
어린 시절 오빠 프리드리히 왕자에 비해 아버지 빌헬름 1세의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어머니 아우구스타와는 그닥 사이가 가깝지 않았다고 한다.
3.2. 바덴의 대공비[편집]
루이제는 1854년 바덴의 프리드리히 공자와 약혼했고, 1856년 9월 20일에 결혼식을 올렸다. 프로이센 왕국 왕세자의 유일한 공주가 바덴의 공자와 결혼하자 이는 바덴 대공국에 많은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결혼한 지 몇 주 후에 루이제는 첫 아이를 임신했다. 루이제와 프리드리히는 바덴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루이제는 올케의 여동생이자 헤센의 대공비였던 앨리스 공주와 친한 사이였지만, 올케 빅토리아 황태자비와는 서로 아이들을 비교하며 경쟁적인 관계였다고 한다. 빅토리아 황태자비의 장남인 빌헬름 왕자의 왼쪽 팔이 기형인 채로 태어났을 때, 루이제는 자신의 아이들은 그에 비해 건강하게 자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래도 루이제는 조카들과 사이가 좋았으며, 후에 조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루이제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루이제의 장남 프리드리히 공자가 빅토리아의 조카인 헤센의 엘리자베트 공녀에게 차이면서 자신의 집안이 모욕당했다고 생각한 루이제는 빅토리아 황태자비와 사이가 더 멀어졌다. 정작 빅토리아 황태자비의 아들인 빌헬름 2세도 엘리자베트에게 차였는데 이건 몰랐던 모양.(...)
3.3. 말년[편집]
1888년부터 1890년까지 2년 동안 루이제는 아버지, 오빠, 작은 아들, 어머니를 모두 잃는 슬픔을 겪게 된다. 루이제가 안타까웠던 빅토리아 황태후는 그녀의 어머니인 빅토리아 여왕을 설득하여 루이제에게 훈장을 수여하도록 했다.
남편 프리드리히 1세가 1907년에 사망한 이후 장남인 프리드리히 2세가 바덴의 대공이 되고, 같은 해에 딸 빅토리아가 스웨덴의 왕비가 된다.
1918년 독일 11월 혁명으로 독일 제국이 붕괴된 이후 루이제는 일반 시민으로 조용히 살다 1923년 4월 24일 바덴바덴에서 사망했다.
4. 가족관계[편집]
자세한 내용은 호엔촐레른 가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1. 조상[편집]
4.2. 자녀[편집]
5. 여담[편집]
- 막내 시누이인 바덴의 체칠리에는 루이제의 고종사촌오빠인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대공과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