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켈트]] [[갈리아족]]의 한 부류인 세노네스족의 족장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Brennus_mg_9724.jpg]] Brennus 생몰년도 미상 기원전 390년에 갈리아족은 당시 많은 종족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지금의 [[이탈리아]] 쪽에도 진출하여 [[포 강]] 유역의 [[에트루리아]] 도시국가들을 파괴하고 [[중부]] 이탈리아로 전진하여 이 와중에 에트루리아의 도시인 클루시움을 공격하였다. 이 때문에 클루시움에서 [[고대 로마|로마]]에게 갈리아 사람들을 쫓아내달라고 지원 요청했으며, 로마가 설득하여 나가달라는 요청을 했으나 이를 거절한다. 로마에서 설득하러 온 대사들 중에 한 명인 [[누메리우스 암부스투스 파비우스]]가 전투에 참가하자 일개 [[대사]]가 [[전투]]에 참가해서 모든 나라의 법률을 깨뜨렸다는 데 분노해 클루시움의 포위를 풀고 로마로 진군하여 [[알리아 전투]]에서 로마군을 격파하고 그 지역들을 약탈하면서 수많은 시민들을 학살했으며 수도인 로마를 점령했다. 로마 점령 후에 일부 로마 시민이 있던 카피툴리움 언덕을 공략하다가 실패하자 야음을 틈타 올라가다가 [[거위]]가 자꾸 울어대서(...) 이를 알아차린 로마 병사들이 켈트 병사를 차례로 죽였으며[* 이로써 거위는 신조로써 로마의 국조급 위치로 격상되었다. 반면 이때 짖지 않았던 개들은 비교적 천시되었다.], 켈트인들은 로마로부터 전쟁 배상금을 받고 퇴각하기로 했는데 브렌누스가 자신이 가지고 온 엉터리 [[천칭]]으로 로마인에게 금의 중량을 산정하도록 강요했다.[* 저울의 눈금을 대놓고 조작하다가 나중에는 저울을 그냥 흔들어 버렸다고 한다(...)] 이에 로마의 [[호민관]]이 항의하자 저울추 그릇에 자신의 칼을 올려놓으면서 "'''[[Vae victis|패자는 비참하도다!(Vae victis, Woe to the Vanquished)]]'''" 비웃으며 무게를 줄이는 놈은 죽일 것이라고 위협했으며, 이에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가 분노해서 그를 공격했다. 카밀루스의 마니풀리 대형의 방어와 야습 등으로 두 차례 패배한 데다가 도시전에서도 패배하였기 때문에 로마에서 철수한다.[* 단 [[로마인]]들의 기록에서는 애초에 패배를 숨기려는 흔적이 역력하게 보이기 때문에 갈리아족이 패배하는 과정에서는 자료의 신빙성이 의심스러운 면도 있다. 현대 연구자들은 이름높은 [[역사가]]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가 이런 일에 상습범이었다고 지목하고 있다.~~역사가가 아니라 역사왜곡가~~] 한편 이때 브렌누스의 침공으로 인해 로마의 각종 기록들이 손실되어서, '''기원전 390년 이전의 [[로마사|로마의 역사]]는 [[신화]]와 [[역사]]를 구분하기가 매우 힘들어졌다고 한다.''' === 등장 매체 === ==== [[문명 시리즈]] ==== * [[문명 3|시드 마이어의 문명 3]]: 켈트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 [[도미네이션즈]] ==== 브렌누스의 할슈타르 단지가 유물로 등장한다. == 동명이인의 [[갈리아족]]이며 켈트족 지도자 == 둘 다 켈트족 지도자인 데다 [[로마]], [[그리스]]를 털어먹어서 동일인으로 착각되기도 하지만 고대에 켈트족은 [[프랑스]] 및 [[갈리아]]부터 북이탈리아, [[이베리아 반도]]의 [[히스파니아]], [[브리튼 섬]]의 [[브리타니아]] [[중유럽|중부]], [[동유럽|동부 유럽]], 심지어 [[터키]] 한가운데까지 퍼져 살았다. 111년 후인 BC 279년 1월 수천 명의 켈트족 전사들을 이끌고 [[마케도니아 왕국]]을 침공하여 [[마케도니아]] 국왕인 [[프톨레마이오스 케라우노스]](Ptolemy Ceraunus)가 이끄는 마케도니아군을 쳐부수고 케라우누스를 붙잡아 목을 잘라 죽여 버렸다.[* [[http://blog.daum.net/timur122556/6305|#1]], [[http://blog.daum.net/timur122556/6213|#2]]]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남쪽의 테르모필레[* 영화 [[300]]의 배경이 되었던 [[테르모필레 전투]]의 그 테르모필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여기도 배신자가 돌아가는 길을 알려줬다.]]''' ~~과연 테르모필레는 배신의 땅인가.~~]에서 그리스군을 격파하고 [[델포이]] [[신전]]을 털어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에 대해 그리스의 [[지리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스트라보]]는 "켈트족들이 델포이 신전을 [[약탈]]하려 하자, [[아폴론]]신이 직접 나타나서 켈트족들한테 [[천둥]]과 우박을 퍼부었고 이를 본 켈트족들은 신의 노여움을 사서 [[천벌]]을 받았다고 여겨 신전을 약탈하지 못하고 ~~[[빤스런]]~~ 달아났다."라고 기록했으나 그로부터 170여 년 후인 기원전 105년 갈리아 남부의 [[툴루즈|톨로사]](Tolosa) 마을에서 로마 장군 [[카에피오]](Caepio)가 켈트족들이 델포이 신전에서 약탈해서 가져온 엄청난 양의 황금을 발견했다는 내용을 감안한다면, 아무래도 [[그리스인]]인 스트라보는 그리스인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델포이 신전이 [[야만족]]인 켈트족들한테 몽땅 털린 일을 부끄럽게 여겨 신이 벌을 주어 쫓아냈다는 식으로 [[역사왜곡]]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부하들과 함께 [[다뉴브 강]]을 건너 기원전 279년 여름에 그리스를 침공했으며, 이때 20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왔다고 알려졌지만 [[연대기]] 작가들의 특유의 과장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스에서 스페르케이우스의 교량을 파괴해 진격하는 것을 막으려고 하자 [[방패]]를 이용해 거친 급류를 건너면서 여러 곳에서 약탈을 했다. 그러나 약탈을 하는 사이에 그리스군은 병력을 집결할 수 있었으며, 그리스군과 전투를 했다가 불리하자 후퇴했다. 몇 주 후에는 기병을 보내 아에톨리아 지역을 약탈해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아에톨리아 출신의 그리스 병사들을 분산시킬 수 있었으며, 일부 [[목동]]들의 협조를 받고 테르모필레 인근의 비밀 통로로 안내받아 그리스군을 포위해 격파했다. 그리스군을 격파하자 남쪽으로 진군해 델포이 신전을 약탈했으며, 돌아가던 도중에 그리스군과의 교전에서 상처를 입고 사망했다. 게임 [[문명 4|시드 마이어의 문명 4]]에서 [[부디카]]와 함께 켈트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각주] [[분류:동명이인]] [include(틀:포크됨2, title=브렌누스, d=2023-12-01 10:3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