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오스트리아의 대외관계)] [include(틀:독일의 대외관계)] [include(틀:프랑스의 대외관계)] [목차] [clearfix] == 개요 == [[신성 로마 제국]]과 [[프랑스]]([[서프랑크 왕국]] ~ [[프랑스 제1제국]]) 간의 관계. == 프랑크 왕국 시절 == 843년 [[베르됭 조약]] 이전까지 두 나라는 모두 [[프랑크 왕국]]으로서 통일국가로 있었다. 베르됭 조약으로 서, 중, 동 프랑크로 나뉘게 된다. == 동프랑크와 서프랑크 == 두 나라 모두 처음에는 [[카롤루스 왕조]]였으나 이후 둘 다 단절된다. 이로서 두 나라의 연결고리는 완전히 끊어졌고 [[동프랑크 왕국]]은 오토 왕조를 옹립해서 [[서프랑크 왕국]]으로부터 분리돼서 나간다. == 신성 로마 제국과 프랑스 왕국 == [[파일:Europe_in_1100_(2756×2232).jpg]] 1100년 당시의 지도. 신성 로마 제국과 프랑스 왕국은 유럽 대륙의 양대 강국으로서 최대의 라이벌 관계였다. 그러나 신성 로마 제국은 황제가 교황에게 황제관 받고 [[제3의 로마|로마 제국의 후예]]이자 [[황제]]임을 내세우며 꺼드럭거리고 다녀도 동아시아의 [[중화제국]] [[천자]]마냥 주변국들과 [[조공책봉관계]]를 이룩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진시황]]이 ‘왕보다 높은 자리’라는 개념으로 대놓고 시작한 중국의 황제 개념과 달리, 유럽의 황제 개념은 공화정에서 실질적으로 왕{{{-2 ''Rex''}}}을 해먹으려는 편법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그래서 통상 황제로 번역되는 Princeps, Augustus, Imperator는 그 자체로는 군주라는 의미 없이 그냥 수령, 지존, 통치자라는 의미만 있을 뿐이다.] ‘왕’은 유럽에서 자주국의 수장으로써 전혀 부족함이 없는 매우 존귀한 칭호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칙상의 확고한 종법질서를 무시하고 중국 눈을 피해 ‘눈치껏’ 한 동아시아식 외왕내제와 달리{{{-2 (물론 중국에서도 알았지만 ‘눈치껏’ 넘겼다)}}}, 유럽의 왕{{{-2 ''Rex''}}}은 자기 왕권{{{-2 ''Regnum''}}}에 속한 자에게는 당연히 통치자{{{-2 ''Imperium''}}}요 지존{{{-2 ''Augustus''}}}이요 수령{{{-2 ''Princeps''}}}이었다.] 물론 그래도 명색이 교회가 인증한 서방 통치자{{{-2 ''Imperator''}}}인 만큼 국제무대에서 ‘의전서열’은 서방 군주 중 가장 앞섰지만 딱 그뿐이었고, 그 누구도 프랑스 왕{{{-2 ''Rex''}}}이 신성로마 통치자{{{-2 ''Imperator''}}}의 신하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프랑스의 왕권{{{-2 ''Regnum''}}}은 신성 로마 통치권{{{-2 ''Imperator''}}}과 뿌리를 공유하기에 프랑스 국왕은 황제만 아닐 뿐이지 역사, 정통성, 권위면에서 신성 로마 제국 황제에게 꿀리지 않았다. 비록 신성로마의 통치자{{{-2 ''Imperator''}}}는 명목상 서방 세계의 통치권{{{-2 ''Imperium''}}}을 내세우긴 했지만, 이는 명목상{{{-2 ''De Iure''}}} 작위를 주렁주렁 내세우는 유럽 특유의 관습이지 딱히 신성로마가 오만하다거나 이상한 건 아니다. 특히 프랑스가 [[백년전쟁]]에서 영국을 꺾고 국력을 키움에 따라 양국은 지속적으로 충돌하기 시작하며 제국의 [[합스부르크 왕조]]와 프랑스 [[발루아 왕조]], [[부르봉 왕조]]는 세기의 라이벌로 거듭났다. 양국은 15세기 후반부터 [[이탈리아 전쟁]]등에서 충돌을 거듭했으며, 합스부르크 왕조는 스페인과 결혼 동맹으로 동군연합을 결성하면서 독일과 스페인 양쪽에서 프랑스를 압박하고 프랑스는 이에 저항하는 형태였다. 17세기 [[30년 전쟁]]에서 후반에 프랑스의 참전으로 인해 [[베스트팔렌 조약]]에서 제국의 영방들이 독립국가화 하였으며, 합스부르크 왕조의 황실은 가문 영지 이외의 제국 영토에 영향력을 상실하였다. 그럼에도 [[합스부르크 제국]]과 프랑스는 주요 강대국으로서 대립을 이어갔으나 18세기 중반 [[동맹의 역전]]과 [[7년 전쟁]]으로 동맹 관계로 전환하였다. 이 관계는 [[프랑스 혁명]]으로 붕괴된다. == 신성 로마 제국과 프랑스 공화국 == [[파일:external/www.daniel.rego.com/Europe_1795_7.jpg]] 1795년 당시 지도. 신성 로마 제국의 양대 강국인 [[합스부르크 제국]]과 [[프로이센 왕국]]은 모두 혁명과 공화국을 적대하는 입장이었다.[* 프랑스가 유럽의 대국이고 유럽의 중심에 위치했기 때문에 프랑스의 혁명과 공화주의가 주변 유럽국가들로 퍼져나가기 딱 좋았다. 당연히 당시 유럽의 국가들은 거의 다 군주정이였다. 본인들도 저 꼬라지날까봐 두려워했다.] 특히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 이후 양국은 프랑스 공화국을 자국의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전쟁을 개시했지만 오히려 프랑스에게 깨진다. 이 과정에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프랑스 공화국의 실권을 갖게 된다. == 신성 로마 제국과 프랑스 제국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프랑스 제국과 신성 로마 제국은 지속적인 전쟁 관계에 놓인 적대 관계였다. 다만 신성 로마 제국은 이미 영방 국가들이 독립 국가로서 기능하며 형태만 남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황제직을 가지는 [[합스부르크 왕조]]의 [[합스부르크 제국]]이 프랑스와 적대하는 위치였다. 그러나 압도적인 국력에 바로 갈려나가고 나폴레옹이 신성 로마 제국의 선제후 대부분을 정복하자 합스부르크 가문의 제위 승계가 위태로워졌고, [[프란츠 2세]]는 합스부르크 세습령을 통합하여 [[오스트리아 제국]]을 세운다. [[파일:Frenchempire.png]] 그러나 프랑스 제국의 압박에 못이겨 결국 1806년에 공식적으로 제국의 해체가 선포되어 샤를마뉴 대제의 대관으로부터 약 1,000년만에 신성 로마 제국은 역사속으로 사라졌고 [[라인 동맹]]이 결성돼서 몇 년 동안 프랑스 제국의 속국으로 지내게 된다. 1815년 프랑스 제국의 몰락 후 [[빈 회의]]를 통해 창설된 [[독일 연방]]이 부분적으로 신성 로마 제국을 계승하게 된다. == 관련 문서 == * [[프랑스-독일 관계]] * [[프랑스-오스트리아 관계]] * [[프랑크 왕국]] * [[카롤루스 왕조]] * [[샤를마뉴]] * [[서프랑크 왕국]] * [[동프랑크 왕국]] * [[독일 왕국]] * [[프랑스 왕국]] * [[카페 왕조]] * [[발루아 왕조]] * [[부르봉 왕조]] * [[신성 로마 제국]] * [[합스부르크 왕조]] * [[30년 전쟁]] * [[베스트팔렌 조약]] * [[프랑스 혁명]] * [[프랑스 제1공화국]] * [[프랑스 혁명 전쟁]]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프랑스 제1제국]] * [[보나파르트 왕조]] * [[나폴레옹 전쟁]] [[분류:신성 로마 제국]][[분류:프랑스의 역사]][[분류:프랑스-독일 관계]][[분류:프랑스-오스트리아 관계]][[분류:오스트리아의 외교]][[분류:과거의 외교 관계]][[분류:나무위키 외교 프로젝트]] [include(틀:포크됨2, title=신성 로마 제국-프랑스 관계, d=2023-12-05 22:2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