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녕하세요? 노래 '연극이 끝난 후'를 작사, 작곡한 최명섭입니다. 오래 전에 발표한 곡을 지금껏 사랑해 주심에 감사하며 또 실제보다 과분한 평가를 해 주심에 항상 쑥스러움을 느낍니다. 이 노래는 당시 대학생들에게 선망의 무대였던 대학가요제에 나가 보고 싶다는 열망이 동인이 되어 만들어진 곡입니다만, 오래도록 많은 분들께 즐거움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을 기쁨이자 보람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노래를 들으시는 4분 여 순간 동안 작은 행복감을 느끼시길 바라겠습니다.
2. 작품자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댓글을 남기는 것이 무척 이례적이긴 하지만, 최근에 몇몇 분이 일본곡 표절 의혹 내지는 확신 의견을 올려서 작품자인 저 뿐만 아니라 이 노래를 좋아하시는 많은 분들께서도 불편하셨을 듯하여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고자 합니다. 우선 표절 운운하는 분들은 표절이 어떤 행위를 의미하는 지부터 확인해 보셨으면 합니다. 음악의 스타일이나 분위기가 엇비슷하다는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대뜸 표절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경솔한 행동입니다. 이는 작품자의 명예를 훼손시키고 해당 작품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따라서 표절이라 언급하려면 명확한 기준과 증거를 내놓고 제기하시기 바랍니다.
3. 음악의 3요소인 선율(melody), 화음(harmony), 장단(rhythm) 에서 표절 또는 유사를 판단하기에 가장 쉬운 것은 선율입니다. 표절, 유사의 기준이 법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관례적인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동기(motive) 2마디, 중간부 4마디가 같으면 표절 또는 유사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표절과 유사를 판단할 때는 표절할 의도가 있었느냐 아니면 공교롭게도 우연히 비슷하게 만들어졌느냐를 따져 봐야 합니다.
4. 최근에 몇몇 분들로부터 이른바 '표절' 대상곡으로 일본의 7080 노래인 'Stay With Me'와 'Love Space'가 언급되더군요. 저는 그 두 곡을 이곳 유튜브 영상 댓글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어 들어 봤습니다. 굳이 멜로디 악보를 대조하지 않고 귀로 듣기만 해도 '연극...'과 두 일본 노래의 멜로디는 별개의 곡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덧붙여, 화음 진행의 유사성도 언급이 되던데 '연극...'의 모티브 화음 진행은 < Ⅱm7 / Ⅰmaj7 / Ⅱm7 / Ⅰmaj7 > 이고 'Stay...'는 < Ⅱm7 / Ⅱm7 / Ⅰmaj7 / Ⅰmaj7 >, 'Love...'는 < Ⅱm7 / Ⅱm7 / Ⅰmaj7 / Ⅵ7 >이라서 들리기엔 엇비슷한 것 같지만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 외의 유사성은 관심있는 분들께서 직접 들어 보시고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5. '연극이 끝난 후'는 제가 재수를 하고 대학에 갓 입학한 만 19세에 만든 곡입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완성도가 높은 곡을 만든 것에 의구심을 가지신 분들이 많은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작곡가이신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일찍 음악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고 청소년기 때는 퓨전 재즈와 흑인 soul, funky 음악에 심취했던 것이 '연극...'과 같은 스타일의 노래를 만들게 된 바탕이었습니다. '연극...'의 음악 스타일이 시대를 앞서 갔다는 평을 많이 하시지만 사실은 당시 한국에서는 생소하나 이미 미국 팝음악계에서는 주류였던 쟝르의 음악을 대학가요제를 통해 일찍 시도해 봤던 결과입니다. 그래서 대중들로부터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6. 일본의 이른바
시티팝 스타일은 7080 당시 미국에서 한창 유행하던 crossover jazz, fussion jazz의 어휘를 일본식
멜로디 스타일에 접목한 것입니다. 좋게 보면 일본의 독특한 대중 음악 스타일이 만들어진 것이고 좀 박하게 보자면 일본의 시티팝도 미국의
팝음악,
퓨전 재즈를 추종한 겁니다. 그런데 당시 한국에서는 일본 대중 문화 봉쇄 정책으로 일본 대중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전무하다시피 했습니다. 음악을 좋아했던 저조차도 80년대 초중반이 되어서야 지인들로부터 카피한 카세트 데이프를 통해 비로소 일본 시티팝 음악의 일부를 제한적으로 접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방 안에서
유튜브를 통해 당시의 시티팝 음악들을 들으면서 이렇다 저렇다 논할 수 있지만 이러한 과거 배경을 알고 나면 '연극...'이 일본 시티팝의 영향을 받았다는 의견이 근거 없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7. 글이 길어졌습니다만, 일부로부터 제기된 표절 의혹의 해명이 아니라 개인적인 분노 표출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그리고 '연극...'을 계속 좋아하시고 또 좋아하실 분들께는 편한 마음으로 즐기시기를 바라겠으며 혹시 이러한 저의 입장 표명이 마뜩치 않은 분이 계시면 사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연극이 끝난 후' 작사, 작곡자 최명섭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