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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칼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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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아나운서. 주로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목소리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
1959년에 아이오와 대학교를 졸업하고, 1965년부터 휴스턴 애스트로스 지역방송에서 5년을 활동했다.[2] 그리고 1971년에 전임이었던 빌 켐벨[3] 의 후임으로 영전하였고, 여기서 필라델피아의 전설적인 외야수인 리치 애시번과의 찰떡궁합을 자랑하였다. 그 기간에 1980년 월드 시리즈 우승, 6회의 노히트 경기, 마이크 슈미트의 통산 500호 홈런, 1993년 월드 시리즈 진출[4] , 2007년 포스트시즌 진출[5] , 2008년 월드 시리즈[6] 우승 등을 목도했다. 화려했던 커리어를 뒤로 하고 맞이한 2009년 시즌 중이었던 그 때...
2009년 4월 13일, 평소와 마찬가지로 내셔널스 파크에서 방송을 준비하는 도중[7] 에 중계 파트너였던 크리스 윌러가 자리를 비운 사이, 혼자 맥없이 방송 부스에 쓰러졌고 그대로 사망하고 말았다. 사인은 심장마비였고, 향년 73세.[8] 갑작스런 그의 사망 소식에 필리스 팬들과 지역 사회의 충격이 너무나 컸다.[9] 그래도 전년도 월드시리즈 우승을 보고 갔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때의 슬픔에 잠겼던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워싱턴과의 원정 3연전을 마치고 홈으로 돌아와 장례식을 치르며 그를 추모했다.
1. 개요[편집]
미국의 아나운서. 주로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목소리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
2. 경력[편집]
1959년에 아이오와 대학교를 졸업하고, 1965년부터 휴스턴 애스트로스 지역방송에서 5년을 활동했다.[2] 그리고 1971년에 전임이었던 빌 켐벨[3] 의 후임으로 영전하였고, 여기서 필라델피아의 전설적인 외야수인 리치 애시번과의 찰떡궁합을 자랑하였다. 그 기간에 1980년 월드 시리즈 우승, 6회의 노히트 경기, 마이크 슈미트의 통산 500호 홈런, 1993년 월드 시리즈 진출[4] , 2007년 포스트시즌 진출[5] , 2008년 월드 시리즈[6] 우승 등을 목도했다. 화려했던 커리어를 뒤로 하고 맞이한 2009년 시즌 중이었던 그 때...
2.1. 하늘의 별이 되다[편집]
2009년 4월 13일, 평소와 마찬가지로 내셔널스 파크에서 방송을 준비하는 도중[7] 에 중계 파트너였던 크리스 윌러가 자리를 비운 사이, 혼자 맥없이 방송 부스에 쓰러졌고 그대로 사망하고 말았다. 사인은 심장마비였고, 향년 73세.[8] 갑작스런 그의 사망 소식에 필리스 팬들과 지역 사회의 충격이 너무나 컸다.[9] 그래도 전년도 월드시리즈 우승을 보고 갔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때의 슬픔에 잠겼던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워싱턴과의 원정 3연전을 마치고 홈으로 돌아와 장례식을 치르며 그를 추모했다.
3. 여담[편집]
- 그의 사망 이후, 시티즌스 뱅크 파크에서 필리스가 홈런을 쳤을 때 "THIS BALL IS... OUTTA HERE!" 라는 멘트가 나온 다음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 켄 헤럴슨과 친했다고 한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원정 경기 중계를 앞두고 있었는데, 비보를 접하자 크게 슬퍼했다고...[10]
- 2009년 8월 8일(현지시간), 그의 명예의 벽 헌액식에 장남 토드 칼라스와 막내인 케인 칼라스가 참석하여 아버지의 업적을 기렸다. 뮤지컬 배우이자 성악가로 활동 중인 케인 칼라스가 미국 국가인 Star Spalgle Banner를 불러 홈 팬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를 받았다.
[1] 그 중에 장남 토드 칼라스가 있다.[2] 여기서 토드 칼라스가 태어났다.[3] 필라델피아 76ers의 목소리로도 잘 알려진 아나운서[4]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만나 6차전 접전 끝에 패배해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조 카터의 끝내기 3점 홈런으로 유명한 그 시리즈 맞다.[5] 이때 지구 1위였던 뉴욕 메츠를 관광보내며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디비전시리즈에서 콜로라도 로키스를 만나 맥없이 탈락했다.[6] 조 벅의 우승 콜이 너무나 형편없었기에(...) 당시 라디오 중계를 했던 그의 목소리를 덮어서 우승 장면 클립을 MLB에서 만들었을 정도...[7]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주중 3연전 첫 경기 준비 중이었다. 당시 한국시간 오전 2시에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다.[8] 그 전의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원정 3연전부터 안색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해당 중계는 톰 매카티가 급하게 호출되어 대신하게 되었다.[9] 당시 17세였던 마이크 트라웃도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꼴리건 인증[10] 그 외에도 빈 스컬리, 존 밀러, 마이클 케이, 렌 캐스퍼 등도 그를 추모하며 회상에 잠기는 시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