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곽순 (문서 편집) [include(틀:다른 뜻1, other1=중국 삼국시대 비의의 암살범 곽수, rd1=곽순(삼국지), other2=조위의 무릉태수, rd2=곽순(조위))] 郭珣 (1502년∼1545년)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백유(伯瑜), 호는 경재(警齋). 곽성기(郭成己)의 증손, 할아버지는 곽효원(郭孝元), 아버지는 사재감첨정 곽수녕(郭遂寧), [[어머니]]는 [[오위|충순위]](忠順衛) 김철단(金哲端)의 [[딸]]이다. == 생애 == 1528년([[중종(조선)|중종]] 23) [[과거 시험|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박사ㆍ[[호조(조선)|호조]]좌랑ㆍ진보현감(眞寶縣監)ㆍ기주관(記注官) 등을 거쳐, 1543년 [[서천군|서천]] [[군수]]가 되었다. 이듬해 1544년 사예(司藝)ㆍ사성(司成)ㆍ장령(掌令)이 되었다. 그는 장령으로서 [[기묘사화]] 때 화를 당한 [[조광조]]의 신원을 상소하였으며, 1545년 [[교리]]ㆍ봉상시정ㆍ[[사간]]을 역임하였다. 중종이 죽고 [[인종(조선)|인종]]이 즉위하자, 소윤과 [[대윤]]간의 세력투쟁이 첨예화했다. 마침내 소윤 [[윤원형]]의 횡포가 심하자 관직을 포기하고 [[청도군|청도]] 운문산에 입산하였으나 [[명종(조선)|명종]]대 [[을사사화]] 때 장살당하였다. 1568년([[선조(조선)|선조]] 1) 관직이 환수되고 [[영천시|영천]] 송곡서원에 제향되었다. [[분류:조선의 인물]][[분류:1502년 출생]][[분류:1545년 사망]][[분류:구타로 죽은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