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59년 (문단 편집) === 실제 === * [[1월 5일]] - 신국가보안법 반대 시위가 전국으로 파급되었다. * [[1월 6일]] -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쿠바]] 사회주의 반군이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입성하며 [[풀헨시오 바티스타|바티스타]] 독재정권이 전복되었다. (쿠바 공산혁명) * [[1월 10일]] - [[충북선]] [[조치원역]] ~ [[봉양역]] 전 구간이 개통되었다. * [[1월 15일]] - 개정 국가보안법(신 국가보안법)이 시행되었다. * [[1월 21일]] * 평화시장 화재사고로 청계천 판자촌들이 거의 전소되고 말았다. * [[유럽인권재판소]]가 설립되었다. * [[1월 22일]] - 정치깡패 [[임화수]]를 중심으로 한 '대한반공청년단'이 결성되었다. * [[1월 25일]] - [[교황]] [[요한 23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준비를 시작했다. * [[1월 27일]] - 소련 [[프라우다]]지 기자 이동준이 판문점을 넘어 귀순하였다. * [[2월 2일]] - [[소련]] 우랄산맥 에서 [[디아틀로프 사건]]이라 불리는 의문의 사건이 발생했다.(사망자 9명) * [[2월 3일]] - 비행기 사고로 인해 [[미국]]의 록/로커빌리 스타 [[버디 홀리]], 리치 발렌스, J. P. "빅 바퍼"리차드슨이 모두 사망했다. 이 날은 이후 "The day the music died"로 미국 음악사에 남게 된다. * [[2월 4일]] - [[경향신문]] 여적 필화사건이 발생하였다. * [[2월 9일]] -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이 제정되었다. 최종 결정은 11일. * [[2월 13일]] - [[일본 정부]]는 [[재일교포]]의 북송을 정식으로 결정하였다. * [[2월 18일]] - [[제28보병사단 사단장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 [[2월 19일]] - [[영국]]이 [[키프로스]]의 독립을 승인했다. * [[3월]] 중 - 락희유지공업이 설립되었다. * [[3월 10일]] * 제1회 [[노동절]] 기념식이 서울운동장에서 열렸다. 1994년까지는 대한노총 창립기념일인 3월 10일로 하였다. * [[티베트]] [[라싸]]에서 [[중국]]에 반대하는 민중봉기가 일어났다. * [[3월 11일]] - 대법원은 강원도 영덕, 인제, 양구 선거결과에 대해 무효 판결을 내렸다. * [[3월 15일]]: 일본 아사히신문사가 <아사히 저널>을 창간하였다. 이 잡지는 1960년대에 전공투 세대들의 주요 필독서로 자리잡게 되었다. * [[3월 17일]] * 일본 쇼가쿠칸이 <[[주간 소년 선데이]]>를 창간하였다. * 일본 고단샤가 <주간 [[소년 매거진]]>을 창간하였다. *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 14세]]가 [[인도]]로 망명을 떠났다. * [[3월 20일]] - 육군 군단장급 회의에서는 정군 방침을 결정하였다. * [[4월 10일]] - [[일본]] [[쇼와 덴노]]의 장남 [[아키히토]] 황태자가 [[쇼다 미치코]]와 결혼했다. 황실의 신붓감은 황족이나 [[화족]]에서만 맞아들이던 오랜 전통을 깨고, 평민 출신에서 신붓감을 맞아들여 큰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미치코의 친가인 쇼다(正田) 가문은 말이 평민이지 닛신(日淸) 제분이라는 대기업을 운영하는 재벌가이며, 외가인 소에지마(副島) 가문은 옛 화족이다. * [[4월 15일]] -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방송인 [[부산문화방송]]이 개국하였다. * [[4월 30일]] - 공보실은 미군정 법령 88호에 따라 [[경향신문]]을 강제 폐간시켰다. 그러나 6월 26일에 [[서울고등법원]]이 폐간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자 정부는 무기정간 처분을 내렸다. 이후 다시 발행될 때까지 1년을 기다려야 했다. * [[5월 4일]] - 제 1회 [[그래미 어워드]]가 열렸다. * [[5월 15일]] - 서울 남산에서 새 국회의사당 기공식이 열렸다. 그러나 2년 뒤 5.16 군사정변으로 건설이 무산되었다. * [[5월 21일]] - 이날 재일동포들은 일본 외무성 앞에서 북송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 [[6월 2일]] - 국제언론인협회는 한국의 가입신청을 거부하였다. * [[6월 10일]] * <하와이 근성> 필화사건이 터짐으로써 이를 게재한 잡지 <야화>가 판매금지를 당했다. * 제1회 운전사의 날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 [[6월 15일]] - 정부는 재일교포 북송에 대항하여 대일교역을 중단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10월 8일까지 지속되었다. * [[6월 18일]] - 이날 서울운동장에서 '재일한인 북송반대 전국대회'가 열렸다. * [[6월 24일]] - 대법원은 보성지구 선거 결과를 무효 확정하였다. * [[6월 29일]] - 이날 열린 자유당 9차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에 이승만을, 부통령 후보에 이기붕을 또다시 내정하였다. * [[7월 3일]] - [[알래스카]]가 주로 승격되어 미국의 49번째 주가 되었다. * [[7월 7일]] - 전 육군 정병감인 김근배 중장이 군수품 횡령혐의로 구속되었다. * [[7월 14일]] -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원자로 기공식이 열렸다. * [[7월 17일]] - [[구덕운동장|부산공설운동장]]에서 열린 국제신보 주최 '시민 위안의 밤'에서 [[부산 공설운동장 압사 사고|대혼잡으로 인해 관중 67명이 압사당했다.]] * [[7월 22일]] - 대법원은 경남 양산 지역구의 선거결과가 무효 판결을 내렸다. * [[7월 27일]] - 국방과학연구소가 우리나라 최초로 인천 고잔동 바닷가에서 3단 로켓을 발사하였다. * [[7월 31일]] - 진보당 당수 죽산 조봉암이 간첩이란 누명을 쓴 채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 [[8월 12일]] - 한일회담이 속개되었다(한국 측 대표는 우양 허정). 그러나 회담 과정에서 양국 간에 어업 문제와 청구권 문제에 관한 이견, 재일교포 북송 문제 등으로 난항을 겪다가 1960년 4.19 혁명으로 중단되었다. * [[8월 13일]] - 일본적십자사와 북한의 조선적십자회가 교포 북송 협정에 조인하였다. * [[8월 14일]] - 대한노총 분열 사태가 발생하였다. * [[8월 15일]] - [[키프로스]]가 독립에 성공했다. * [[8월 21일]]: [[하와이]]가 주로 승격되어 [[미국]]의 50번 째 주가 되었다. * [[9월 17일]] - 남부 지방에 태풍 '[[사라(태풍)|사라]]'가 불어닥쳐 약 9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 [[9월 22일]] - 서울 필동에서 일가족 몰살 사건이 일어났다. * [[10월 7일]] - [[소련]]의 [[달]] 탐사위성 루나-3이 달의 뒷면 사진을 촬영하여 전송하는 데 성공했다. * [[10월 26일]] - 김기옥 대한노총 위원장 반대 세력과 [[김말룡]] 등 민주노조파를 중심으로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이하 전국노협)'을 결성하였다. * [[10월 31일]] - [[벨기에령 콩고]] 스탠리빌(현 [[키상가니]])에서 '콩고 민족운동 전당대회'가 열린 뒤 대규모 충돌이 발생하였다. * [[11월 15일]] * 금성사가 국산 진공관 라디오 A-501을 처음 생산하였다. * [[서독]]에서 [[고데스베르크 강령]]이 채택되었다. 이로 [[독일 사민당]]은 창당 90년만에 공식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이념을 포기하고 계급정당에서 탈피해 대중정당으로 자리잡게 된다. * [[11월 26일]] - 민주당은 정/부통령 후보자 지명대회에서 조병옥 박사를 대통령 후보로, 장면 박사를 부통령 후보로 각각 선출하였다. * [[11월 27일]] - 임화수가 김희갑을 폭행한 일명 합죽이 구타사건이 발생했다. * [[12월 4일]] - [[일본]] [[니가타현]]에 소재한 일본적십자사에서 한국 공작원에 의해 폭파 테러 미수사건이 일어났다. * [[12월 9일]] - 대법원은 경북 영주 지역구 일부 선거결과에 대해 무효 판결을 내렸다. * [[12월 13일]] - 한국 정부는 일본측에 재일교포 북송문제의 국제 제소를 제의하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닷새 뒤 이를 거부하였다. * [[12월 14일]] - 북송교포 제 1진 975명이 일본 니카타에서 북한 청진으로 향하였다. * [[12월 25일]] - [[이승만]] 대통령은 군 수뇌부에 숙군을 지시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