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90년대 (문단 편집) === 문학 === 1980년대 후반 ~ 1990년대 초반에 걸친 변혁기를 지나 그 열기가 가라앉으면서 한국 문학은 한동한 방향감각을 상실했다. 이에 따라 민중/노동문학이 쇠퇴하고 개인적 일상과 삶의 의식에 따른 내면추구와 탈정치화가 대세가 됐다. 이러한 변화/모색 과정에서 가장 선풍을 일으킨 건 1994년 [[최영미]] 작가의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였는데, 최영미 자신도 운동권 출신이었지만 경직된 이념과 사회성에 얽매이지 않고 감각적 언어와 내밀한 고백체로 엮어 문단계에 돌풍을 일으켜 '최영미 신드롬'으로 호평받았지만, 운동권과 일부 평론가들은 "운동의 패배주의를 확산시키고 상업성에 영합했다"고 매몰차게 비판을 가했다. 이런 시대적 상황으로 '후일담 문학'이란 말이 유행했는데, 이 말은 평론가 김윤식 교수가 공지영, 박일문, 김영현 등의 작품들을 평하면서 처음 쓰기 시작했고, 해당 문학은 운동의 중심 및 분류, 실제 과정보다 운동권 주변 및 운동권들의 후일담을 다룬 것이다. 위와 같은 모색기를 지나 신경숙을 비롯해 공지영, 윤대녕, 김소진, 구효서, 은희경, 공선옥, 김인숙, 이청해, 채영주 등 '30대 신진 작가'들의 활동이 크게 주목을 받았고, 조정래도 <태백산맥>에 이어 <아리랑>, <한강> 등을 내며 건재를 과시했다. 그 외에 송기숙, 한승원, 한수산, 이청준, 홍성원, 최인훈, 최명희, 김남일, 김주영, 이순원 등 중진 작가들 역시 꾸준히 창작활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소설과 달리 시는 꾸준한 창작활동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호응이 떨어져 침체기를 겪었고, 이념/사회성 대신 문명 비판적인 환경시 및 생명시 등 신서정시가 강세를 뚜렷이 나타냈다. 특히 미당 서정주, --고은--, 구상, 조병화, 황동규, 정현종, 김지하, 김혜숙, 허영자, 김후란 등 원로/중진들의 시에서 더 큰 경향을 드러냈으며, 일부 신인들에게도 이러한 경향을 나타냈다. 그 외에도 곽재구가 <첫눈>, 전영애가 <카프카, 나의 카프카>, 정호승이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를 내는 등 여전히 건재를 과시했다. 같은 시기 이종록, 신정숙, 임후성, 서림 등 참신한 감수성을 지닌 신세대 시인들의 활약도 흥미를 더했고, 진보 문인 박노해, 백무산, 박영근 등은 1980년대식 급진성 대신 차분하게 삶을 응시하는 쪽으로 변화해갔다. 1990년대 들어 개방화/자유화가 진행되는 와중에 문단계에서 '표현의 자유' 문제가 더욱 부각을 받았다. 1992년 <[[즐거운 사라]]> 작가 마광수 교수, 1997년 <[[내게 거짓말을 해봐]]> 작가 장정일이 음란문서 제조죄로 각각 법정구속되었다. 특히 장정일은 성에 대한 사회의 이중적 태도를 비판코자 했으나 공안의 잣대에 걸렸고, '표현의 자유'는 여전히 사법적 판단 대상이었다. 그리고 진보 문인에 대한 법정구속도 여전해 1991년 박노해를 비롯해 1993년 [[황석영]], 1996년 김하기가 각각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감옥에 갔고, 소설가 조정래도 <태백산맥> 이념시비 때문에 1994년부터 11년간 법적 갈등에 돌입하게 됐다. 1996년 [[이문열]] 작가가 페미니즘이나 여성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선택>을 내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1998년 들어선 IMF 여파로 문학계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 고학력 주부 및 사무직 여성이 독자층에서 대거 이탈해 시는 거의 빈사 상태였고, 소설 역시 시장이 위축됐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이혜경 창작소설집 <그날에>나 이치은 장편소설 <권태로운 자들> / <소파씨의 아파트에 모이다> 등 양질의 작품이 나왔고, 대중소설 쪽으로 전환한 양귀자의 <모순>도 베스트셀러 대열에 합류했다. 이어 박완서, 은희경, 공지영, 김형경, 신경숙 등도 시대적 욕망을 반영한 작품들을 내놨다. 1999년 문학계는 영상매체 확장에 따른 위기감이 확산되는 중에 새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다. 20~30대 청년작가군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향의 완성도 높은 작품이 무수히 나왔지만 문학계 전반은 사회적 파장을 지닐 만한 뜨거운 논쟁이나 새 세기를 준비하는 움직임은 없었다. 위와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검은 이야기 사슬> 등을 낸 정영문, <청동거울을 찾아라>의 민경현,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의 김영하 등 독특한 상상력을 지닌 신예 작가들의 활약이 돋보였고, 강석경의 <내 안의 깊은 계단>, 최인석 창작집 <나의 사랑 나의 귀신>, 이경자 장편소설 <정은 늙지도 않아> 등도 하반기 독서시장에서 화제를 일으켰다. 또 당년도 베스트셀러는 말 그대로 '여인천하' 였는데, 신경숙의 <기차는 7시에 떠나네>가 28만 권을 기록한 걸 비롯해 은희경 창작집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가 18만 권, 전경린 장편소설 <내 생애에 꼭 하나뿐일 특별한 날> 및 공지영 창작집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가 각각 11만 권을 돌파했다. 반면 시집은 황지우의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가 8만 5천 권을 기록했다. 반면 판타지 소설계는 이우혁의 <퇴마록>이 히트한 후 1998년부터 사이버 공간을 벗어나 서점에까지 큰 반향을 일으켰고, 1999년 들어 상업적 성공으로 문학출판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으로 떠올랐다. 이 즈음 이영도의 <드래곤라자> 등이 5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히트했다. 또 문화관광부는 1999년 문예진흥원을 통해 외환위기 이후 생활고를 겪는 문인들을 위해 상/하반기 걸쳐 지원금 10억 원씩을 보탰다. 1999년 문학계에 새로 불거진 이슈는 바로 <문학과 사회> 및 <문학동네> 등 유력 문학계간지들이 겪은 '문학권력 논쟁'이었다. 김정란 시인은 <인물과 사상> 12권 기고문 '그들의 문학 - 그 치명적 얽힘: 권성우, 고종석의 글에 대한 발론'에서 <문학동네>를 "특정 언론매체와 결탁한 상업주의의 온상"이라 비판했고, 권성우 등도 <문예중앙> 여름호에서 <문학과 사회>에 대해 "특정 학연 등을 중심으로 한 문학계의 권력집단"이라 질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