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90년대 (문단 편집) === 20세기 말까지 대한민국에 존재했던 생활 모습들 === 21세기 이후 시점에선 다 옛날 일이고, 1990년대 이전에 출생한 사람들한테는 사실상 아련한 과거다. *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 다소 능력이 부족한 아이가 있으면 더 유리한 조건을 주고 놀이에 끼워주는 깍두기 문화가 존재했다. 물론 90년대 초중반에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사라지기 시작. * 오래된 작은 주택가들이 많았고 아파트 단지에도 노는 아이들이 어디든 바글바글 했었다. 전자게임과 컴퓨터가 지금처럼 발전되지 못했고 스마트폰도 없었기에 밖에서 놀이를 하고 노는 아이들이 많았다. 물론 90년대 후반부터 컴퓨터가 더욱 발전하며 게임의 기술 수준이 많이 상승. * 아는 동네 어른이나 학교 선생님, 선배를 볼때 인사를 고개숙여 제대로 드리지 않으면 혼이났다. 지금보다 상하관계에 더욱 엄격했던 시절이었다. * 가정은 물론이고 학교, 학원에서도 얼차려와 체벌이 아무렇지 않게 자주 일어났다. 단체기합이 섞인 체벌도 많았다. 사실 대부분 어느정도는 맞고 살았다. 군대에서 역시나 지금은 상상도 못하는 병영 부조리, 선임들에 의한 가혹행위가 일어났다. * 친척들끼리 왕래가 지금보다 더욱 많았고 할머니, 할아버지 댁도 자주 방문했다. 명절에는 실향민이 아닌 이상 차가 막히는 민족대이동 도로를 10시간을 넘게 운전해서 고향에 갔으며 지금처럼 명절에 해외여행을 가는건 상상하기 어려웠다. * 오늘날처럼 음식점에서 파티가 아니라, 친구들끼리 돌아가면서 집에 초대해 모임을 가졌다. 음식도 모두 어머님이 손수 장만해서 상을 차렸다. 손님도 보통 가정집으로 많이 초대했다. *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화상통화가 어려웠고 그냥 멀리있는 사람과는 전화통화로 목소리만 듣고 대화를 나눴다. * TV는 무거운 브라운관 TV였으며 화질도 지금보다 떨어졌다. 전화도 발전했지만, 큰 유선전화기, 무선전화기를 썼다. 아날로그 핸드폰은 거의 무전기처럼 컸으며 소유한 사람도 많지 않았다. TV 채널은 지상파 방송채널 몇개밖에 없었고 정해진 시간에만 나왔다. 따라서 연속극이나 뉴스, 영화, 만화를 볼때 모두가 TV앞에 모여 앉았다. 다른 시간에 TV를 보려면 비디오방에서 비디오를 빌려서 봐야했다. 라디오, 음반을 구매해서 듣는것도 큰 낙이었다. * 멀리서 만나는 약속 시간은 널럴하게 잡고, 만남 장소는 눈에띄는 유명한 장소로 잡아놓고 정시에 못와도 한시간 정도는 기본으로 기다렸다. * 가족, 친척, 친구 전화번호를 20개 정도는 그냥 외우고 있었다. * 전화예절이 필수였다. 보통 집으로 전화를 해서 어른이 전화를 받으시면 정중하게 친구를 바꿔달라고 했었다. * 지금처럼 물품이 많이 수입되지 못했기 때문에 수입산 식품부터 시작해서 의류, 공산품, 장식물은 서울 부촌이나 가야 구할 수 있었고 가격도 당시치고는 높았다. 그나마 1990년대 중반경이 되어서야 지방 광역시에도 백화점에 수입상품 코너가 생겼다. 당시는 국산과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에서 수입한 상품의 품질 차이가 많이나서 외제라면 다들 좋아했다. 아버지가 해외 선진국으로 출장이라도 다녀오시는 날에는 현지에서 구매해오신 물건들을 보면서 눈이 즐거워졌다. 수입 열대과일 역시 그렇게 흔하게 맛보기는 어려운 별미였다. * 남자, 여자 할거없이 자발적으로 아니면 주변의 강요에 의해 나이 30세 이하에 95프로 이상이 다 결혼을 했었고 결혼 후 자연스럽게 애엄마, 애아빠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혼인율, 출산률이 모두 많이 낮아졌지만, 당시 90년대 까지만 해도 한집당 자식을 두명은 가졌고 대부분이 결혼을 했기에 인구는 제법 늘었다. * 1980년대 말에 유학과 해외여행이 자유화 되었지만, 해외유학은 거의 선택받은 집안의 자제들만 가능했다. 해외여행 역시 집안사정이 좋은 사람들만 보통 갔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혼여행마저도 보통 국내 여행으로 때웠다. * 지금보다 가부장적인 문화가 심했고 집안에서 아버지의 권위도 막강했다. 선생님의 권위도 강했고, 회사에서도 상명하복 문화가 더 강했었다. 대학교에서의 선후배 문화도 마찬가지. * 토요일에도 출근을 하고, 학교에 갔었다. 대신 일찍 끝났다. * 아이들은 만화는 만화방에 가서 많이 봤고, 게임은 오락실에 가서 많이 했었다. 물론 80년대 후반부터 TV에 연결해서 게임팩을 넣고 하는 가정용 게임기가 나와 아이들한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 세계 온라인 마켓을 동원해 무엇이든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지금과는 다르게 구할 수 없는 물건들이 많았고, 특히나 인기상품이 아니라면 뭐 하나를 구하려고 해도 부지런히 인맥을 동원해 곳곳의 가게를 찾아다녀야 했다. 물론 아무리 찾아도 결국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소한 물건인데 친구가 그걸 가지고 있을 경우 본인이 가진 물건 중 그 친구가 원하는 물건이 뭔지 보고 사이좋게 물물교환을 하기도 했었다. * 시골이든 도시든 개발이 안된 지역들이 곳곳에 있어서 곤충과 개구리처럼 작은 동물들이 적어도 지금보다는 아주 많았고 동물을 잡으면서 재미있게 놀기도 했었다. * 지금처럼 대형화 된 문구점이 없었고 동네마다 작은 문방구가 있었다. 학교 준비물, 학용품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대부분의 장난감은 동네 문방구에서 구매했고, 생일, 크리스마스를 비롯한 특별한 날에는 백화점에 데리고 가서 부모님이 비싼 장난감을 사주셨다. 일본제 가정용 전자오락기도 이때 주로 전자상가에서 구매했다. * 지금처럼 24시 편의점이 없었고, 대신 동네마다 소소한 먹을것과 생필품을 구매할 수 있는 허름한 구멍가게가 있었다. * 놀이터는 지금처럼 고무바닥이 아니고 모래로 덮여있어 아이들이 흙장난도 많이 했었고, 놀이기구가 위험해 부상도 많았다. * 군대에서의 아침점호 비슷하게 학교에서는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차려 자세 대열로 줄을 서 애국조회를 섰다. 특히 겨울아침 애국조회는 정말로 고역이었다. * 대한민국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선진국 중에서도 준수한 수준으로 올라간 지금과는 다르게 90년대 까지만 해도 평균 수명이 선진국들에는 못미쳤다. 따라서 어르신들 대부분이 회갑(60세) 또는 칠순(70세) 잔치를 많이 했었다. 요즘은 팔순(80세) 잔치가 더 많지만. * 복지 제도가 지금에 비해서 미약했었고 그래서 장애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살기가 더 어려웠다. * 지금처럼 K-pop이 전세계적인 인기를 자랑하지 못했으며, 국내 인기 정도로 끝났다. 노래의 종류도 더 적었고, 아이돌이 그리 많지도 않았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끼리 공감대가 통하는 유행가는 거의 뻔하게 다 잘 알고있었다. * 아이들은 밖에서 놀때 롤러스케이드, 롤러블레이드, 자전거를 많이 탔다. 겨울에는 눈이오면 썰매를 탔었고, 스키와 스노보드는 고급 스포츠에 속했다. 그나마 1990년대에 와서 스키도 보급이 많이 되었으나 당시에도 비싸서 어지간한 사람들은 고작 1년에 한번정도 타보는게 전부였다. * 대한민국 철도는 [[KTX]]로 대표되는 [[고속열차]]가 아직 다니기 전이고 [[새마을호]]가 최상위 등급, [[비둘기호]]가 최하위 등급이며, 대부분이 단선에 전철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 [[시내버스]]는 [[좌석버스]]를 제외하고 대부분 [[자동차용 에어컨|에어컨]]이 달리지 않아 여름에 찜통이었으며, 대부분 [[교통카드]]보다는 현금이나 [[버스 토큰|토큰]], [[회수권]]으로 지불했다. * [[택시]]는 [[현대 쏘나타|쏘나타]]보다 [[현대 스텔라|스텔라]]가 더 많았으며, [[택시 합승|합승]]도 많았다. * [[인천국제공항]]이 개항 전이라 [[김포국제공항]]이 대한민국 중추 공항이었으며, 대한민국 항공사는 [[저비용 항공사|저가 항공사]]가 들어서기 전이라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둘 뿐이었다. * [[오락실]]에 리듬 게임기가 설치되기 전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