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NE능률 (문단 편집) == 이찬승 == 능률영어의 창업자 이찬승은 1949년 경상북도 풍기군(현 영주시)에서 6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농사일을 거들고 학교 갔다 와서 소 먹이로 들로 나갔으며, 가끔 들판 위를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며 바깥 세계에 대한 동경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학창 시절 그의 낙은 책을 읽는 것이라고 했다. 중학교에 입학하여 영어를 접하고 빠져들어 고교 시절 TIME지를 구독했고, 새벽에 영어학원을 다녔다고 한다. 가난한 집이었지만 다행히 그가 공부에 재능을 보이자 먼저 취업한 형제들이 도와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경동고등학교]]를 다녔다. 1969년 경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에 진학했다. 고등학생 시절 운동을 하다가 코를 다쳤는데 축농증이 너무 심해져서 암기가 전혀 안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암기 안 하는 수학을 하자 하고 결정하고 수학교육과로 진학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수학보다 영어가 좋아서 수업 시간에도 뒷자리에 앉아 영어 잡지를 읽었다고 한다. 1973년 서울대 졸업하였으며, 군복무는 졸업 후에 한 것으로 보이는데, 육군 군수사 통역장교로 복무했다고 한다.[* 당시 지방 출신들은 그렇게 스트레이트로 졸업한 후 군복무를 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고 하는데, 주된 이유는 당시 지방 출신의 가난한 명문대생들이 주로 입주 과외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여 대학교에 다녀야 했는데, 중간에 군복무를 하게 되면 입주 과외가 끊기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학부모 입장에서는 군복무 3년 동안 머리가 돌이 된 복학생보다 신입생을 선호했고, 복학생이 입주 과외를 구하는 것이 어려웠다.] 졸업 후 수학 선생님이 아니라 무역회사에 취업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무역회사에 들어가서 비행기 타고 해외로 나가는 꿈을 이루고 싶었다고 한다. 당시 대한민국의 고도성장과 수출 급성장으로 무역회사들이 성업했고, 회사에서 근무하며 외국 회사와 영문 편지를 주고 받으며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하던 그는 성인 영어 교육 산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게 되었다. 이후 1978년부터 무역영어 일간지를 만들었고, 1980년 능률출판사를 설립했다. 처음에 그가 영어 교재를 집필한 것은 무역영어 쪽이었고, 이후에도 한동안 성인 영어 시장을 주력으로 노력했지만, 사이드로 시작한 중고교 영어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초기 이력부터 사실 이찬승은 중고교 영어 시장보다 성인 영어 시장에 보다 큰 공을 들였지만 성인 영어 시장에서는 아주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80년대 능률은 민병철, 정철, 오성식 등에 비해 인지도가 크지는 않았다. 사실 무역영어를 시작했던 초기에는 빚이 늘어나며 큰 어려움에 처했다고 한다. 이후 '60단계 이찬승 미국어 히어링(Hearing)'을 발간했는데 리스닝 서적이 전무했던 당시 대학생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얻으며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이어 1984년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만든 어휘집인 [[능률보카]]가 대박을 거두었다. 아무래도 당시까지만 해도 능률출판사가 성인시장에 집중하고 있을 때라 능률보카는 다른 참고서들보다 종이 질과 인쇄 품질이 나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능률보카의 아성에 도전하는 수많은 아류 어휘집이 나왔지만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능률보카는 중고교 참고서 시장에서는 최고의 어휘집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후 1990년 독해집 [[리딩튜터]]를 발간했고, 수능 시대에 큰 성공을 거두며 대표적인 영어 참고서 출판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후 회사는 크게 성장했고 여러 양질의 참고서를 출판했다. 이때부터 이찬승은 연구원들을 통해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이후 능률출판사의 책들의 저자명에서 이찬승의 이름이 빠지고 능률영어연구소 저자로 바뀌었다. 나중에 이찬승은 연구원들의 이름도 일일이 책의 저자로 올렸다. 성인 시장 또한 2000년 토익 수험서 '토마토' 시리즈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중고교 참고서만큼 절대적인 성공을 서두지는 못했고 이후 기출 문제를 갖은 방법으로 반영한 해커스가 이 시장에서 절대 강자가 되었다. 단어집과 독해집이 큰 성공을 거두며 중고교생들의 대표 참고서가 되기는 했으나, 영어 참고서 시장에서 가장 코어가 되는 영문법이 없었기 때문에 과거 [[안현필]]이나 [[성문영어]], [[맨투맨영어]]와 같은 영어 참고서 계의 지존, 절대강자 같은 느낌은 20% 부족한 감이 있었다. 사실 이찬승은 이미 1994년 성문종합영어를 의식한 '능률 고교영어 문법완성편'이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지는 못했고 조용히 사라졌다. 이 책은 당시 구시대 영문법을 일부 반영하고 있던 당시 성문영어와 맨투맨의 결점을 수정했고, 다름 현대식 영어를 이찬승 본인만의 체계로 재정리하려고 노력했으나, 책의 구성이나 학습 용이성에 있어 성문영어나 맨투맨만큼 뛰어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영어 참고서 시장에서 문법책의 성공 없이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 것은 자명했고, 이찬승 역시 절치 부심하며 영문법 교재 걸작을 남기기 위해 연구원들과 절치부심하였다. 그리하여 2006년 그의 마지막 역작 [[그래머존]]을 출간했다. 물론 이 책은 이찬승이 단독으로 지은 것은 아니고 여러 연구원들과 함께 만들었고 연구원들의 이름도 저자로 올라와 있다. 어쨌거나 이 책은 이후 성문영어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대표적인 영문법 책으로 자리잡았다. 다만 원서인 [[Grammar in Use]]나 [[김기훈(영어강사)|천일문]] 등 구문 서적의 인기로 성문영어가 차지했던 절대 지존의 위상에는 그래머존이 못 미치지만 어차피 성문영어 시절에도 맨투맨이라는 경쟁자가 존재했었고, 시대가 변하여 영어 종가인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만든 [[Grammar in Use]]와 경쟁하고 있다는 점만 해도 대단한 점이라 볼 수 있다. 이후 2009년 이찬승은 회사를 [[한국야쿠르트]]에 매각하며 물러났다. 이후 교육 관련 비영리 공익단체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를 만들어 대표로 지내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