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NKVD (문단 편집) === [[대숙청]] === >'''무고한 시민 열 명이 처형되어도 한 명의 스파이를 놓쳐서는 안 된다.''' >---- >- [[니콜라이 예조프]], 내무인민위원[* 근대 형법의 기초 중 하나인 [[무죄추정의 원칙|무죄추정주의]]를 [[응 아니야|완전히 엿 바꿔먹은 발언]]이다. 그런데 이 말을 남긴 예조프도 1940년에 [[토사구팽|처형된 무고한 시민 열 명 중 한 명이 되었다.]]] NKVD의 권력과 위세가 절정에 이른 것은 1937년 스탈린의 대숙청 시기였다. 당시 인민의 적으로 낙인찍힌 수많은 사람들이 NKVD에 의해 교도소와 [[굴라크]]에 끌려가야만 했다. 이들 다수는 NKVD가 주재하는 특별 법정에서 별다른 증거 없이도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익명의 밀고 혹은 [[고문]]까지도 이 과정에서 정당화되기 십상이었다. 특히 [[대숙청]] 시기에는 특정 계층을 통째로 숙청시키기도 했는데, 기술자들이 [[사보타주]] 혐의로 연루된 샤흐티 음모사건, [[미하일 투하쳅스키|투하체프스키]]와 같은 군 고위 장교들이 연루된 파시스트 음모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덧붙여 사상이 불순하다고 판단된 소수민족 전체[* 한국에서는 [[고려인]]이 특히 유명하지만 고려인 이외에도 독소 불가침조약 이후 합병된 폴란드 영토에 거주하던 [[폴란드인]]이나 [[에스토니아인]], [[라트비아인]], [[리투아니아인]]을 비롯해 [[볼가 강]] 일대에 살고있던 독일계 등 수많은 민족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어야 했다.]나 부농([[쿨라크]])을 오지로 강제 이주시키는 일을 주도한 것도 물론 NKVD다. 종교계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라서 [[유대교]]와 [[러시아 정교]], [[가톨릭]], [[이슬람교]] 등 소련 내 여러 종교들이 NKVD에 의해 활동을 감시당하고 탄압받았으며, 성직자들 및 신자를 감시하기 위해 교단에 [[밀정|정보원]]을 심어놓기도 했다.[* 독소전쟁 시기 초반에 정말로 소련이 급박한 상황으로 밀리자 그때는 일시적으로 러시아 정교회를 후원해주기도 했다.] 심지어는 자신들 스스로도 숙청의 대상이 되어 [[니콜라이 예조프]]를 비롯한 [[1930년대]]에 활동한 대부분의 요원과 지휘자들도 희생양으로 전락해 처형된다. 특히 NKVD는 [[멕시코]]에서 자객에게 등산용 피켈에 맞아 죽은 '''[[레프 트로츠키]]'''를 암살하면서, 소련 입장에서 정적은 끝까지 추적하여 제거하기도 하였다. 2016년에 러시아의 한 인권단체가 추적 끝에 스탈린의 대숙청을 실제 집행한 비밀경찰 4만 명의 신상을 공개하였다.[[http://m.news.naver.com/read.nhn?oid=001&aid=0008848473&sid1=104&mode=LSD|#]]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