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PTSD (문단 편집) ==== [[고문]] ==== 1980년대 군사독재 시절 당시 [[이근안]]에게 [[서울대학교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심하게 고문받고]] 2011년 12월 그 후유증으로 사망한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육체적 후유증뿐만 아니라 PTSD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래서 고문 후유증으로 비염과 기관지염을 달고 살았는데도 이비인후과에 못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치과 가서 치료대에 누웠다가 고문 장면이 떠올라 치료도 포기하고 바로 나올 정도였다. 증언에 의하면 고문의자가 치과의자와 똑같이 생겼다고 한다. 많은 고문 생존자들이 병원을 찾는 것만으로 잠재 기억이 떠오른다고 한다. 결국 후유증을 계속 안고 살다가 비교적 젊은 나이인 64세에 사망했다. 김근태 전 장관뿐만 아니라 민주화 운동에 종사했다가 고문을 당해 폐인이 되거나 정신이상이 된 사람이 꽤 된다. [[김지하]] 시인이 유신 시대 이후 이래저래 좌충우돌하는 이유를 고문으로 인한 PTSD로 보는 사람이 많다. 1990년대 한 대학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했던 한 정신과 의사의 회고에 의하면 민주화 운동 당시 고문에 의한 후유증으로 추정되는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종종 입원한 일이 많았다고 한다. 제대로 진행된 PTSD는 치료가 상당히 어렵다는 점에서 이들 대부분은 지금도 크고 작은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시대를 겪은 중노년층이 하는 ‘[[중앙정보부|남산]]이나 [[대공분실|남영동]]에 갔다 오면 폐인이 된다, 미쳐서 돌아온다’는 말이 괜한 헛소문은 아니다. 그 외에 [[1969년]] [[대한항공 YS-11기 납북 사건|대한항공 YS11기 납북사건]] 때 납북되어 심한 고문을 받고 송환된 37명 중 일부 역시 PTSD로 폐인 혹은 정신질환자가 되었다. 이근안 말고도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고문 사건]] 으로 유명했던 국회의원 [[유시민]]과 [[심재철]] 그리고 [[윤호중]]이 있는데 심재철에 대해는 물증이 없으나[* 신문이나 언론 인터뷰에서는 2번 내지 3번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고] 프락치로 몰아가며 방관한 자세로 지켜보던 유시민과 폭행을 일삼은 윤호중이 이 사건의 고문 피해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