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TRPG (문단 편집) === 여명기 === 한국 TRPG의 역사는 1993년 초반, 당시 미국에서 살면서 TRPG를 배워왔던 최경원이 [[PC통신]] [[하이텔]] 환타지동호회의 한 게시판에 모찾사(모험을 찾는 사람들)라는 팀명으로 TRPG모임에 대한 구인글을 올리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 이전에 국내에 TRPG모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어서, 1983년 역시 미국에서 [[AD&D]]를 비롯한 여러 TRPG 규칙을 배워온 유원택(당시 중학생)이 친구인 이환동, 이근동, 민병철과 함께 TRPG를 즐기던 모임이 있었다. 이 모임은 89년에 김찬구, 90년에 장준연이 합류하여 이후 6인 모임으로 지속된다.[* 이 모임은 2014년 현재, 외국으로 이민한 유원택과 민병철을 제외한 4인 모임으로 현존하고 있다. 팀원들의 평균연령은 현재 40대 중후반. 다만 다들 취미생활로, 팀원 중 RPG 게임업계로 진출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나중에 나오지만, 국내 TRPG 초창기 무렵 학생 때 RPG에 빠져들었던 사람들이 대부분 게임업계로 진로를 정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 신기한 일일지도……. 암튼 무려 30년 넘는 역사를 가진 모임이니 역사로만 따지면 자타공인 국내 최고(最古)팀] 하지만 이 모임은 그냥 모임 이름도 없이 친구들끼리의 친목 모임으로[* 그래도 주당 2-3일은 꼬박 밤새다시피 플레이를 지속했으니 TRPG다운 폐인 모임이었던 것은 마찬가지..모 인물 왈, 우리가 이거 할 시간에 공부했으면, 대학이 한 단계 높아졌을 거야..라는 고딩 RPG 폐인들의 흔한 한마디..] 당시에는 물론 이후에도 모임 단위로는 다른 TRPG모임과의 교류도 없었고(팀원 개인적으로는 김찬구, 이환동이 이후 다른 모임에 참여했다) 외부 활동도 거의 없었으니, 사실상 최경원의 이 모임이 제대로 된 한국 TRPG 문화의 효시였다고 해도 문제가 없을 듯하다. 상기의 모임 이외에 국내에서 활동한(제대로 된 TRPG룰을 사용하던) TRPG 모임은 알려진 바 없다. 외국에서 처음 TRPG를 접하고 국내에 들어온 사람은 몇몇 있었으나, 국내에서의 활동 기록은 없다.[* 위의 유원택의 팀도 팀원 중 김찬구가 우연히 하이텔에서 모찾사의 활동기록을 우연히 발견하기까지 국내에 TRPG를 아는 다른 사람이 있는 줄을 몰랐었고, 이후 외국에서 TRPG를 배워온 몇몇이 모찾사등에 합류하기는 했으나, 그들도 여러 이유로 국내에서 TRPG 활동을 생각하지 못했었다고 한다.] 사실 TRPG는 고사하고 판타지라는 장르 자체에 무지한 데다 요즘같은 인터넷도 없고 외국과의 왕래 또한 힘들던 시기에 TRPG를 한다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있는 일이었다. 주사위를 쓴다하면 도박부터 생각하던 시절이니.. TRPG멤버를 구하는 것 자체도 힘들었지만, 특히 어려웠던 것이 주사위의 구입. 책자의 경우 보통 한번 사면 오래 볼 수있는 것이고 당시 저작권 개념이 약했던 덕에 복사본 몇 권정도는 가질 수 있었지만, 당시 군미필자의 해외여행이 거의 불가능했고 인터넷이나 해외우편들도 매우 힘들었던 상황에서 TRPG에서 사용하던 비교적 흔한 6면 주사위 외에 8/10/12/20면 등의 주사위 구입은 매우 힘들었다. 모찾사 역시 주사위는 한두 세트에 불과했고, 유원택의 모임은 가진 주사위가 8면과 10면 한개씩뿐이어서 수년간 사용하던 주사위 모서리가 다 닳아버리자 나중에는 당시 유행하던 애플Ⅱ 컴퓨터에 주사위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 넣어 쓰기도 했다고 한다. 여기에 한이 맺힌 멤버들이 나중에 당시 유행하던 해외 어학연수를 떠나면서 주사위만 있는 대로 사 모아 나중엔 수백 개의 주사위 속에서 헤엄치게 되었다나 뭐라나. 모찾사의 초창기 멤버는 최경원을 비롯하여 최광림, 김동은, 정성환, 최형식 등이었으며, 당연히 TRPG라는 쟝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였고, 당시 TRPG는 완전히 미개척 쟝르였지만 여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조금씩 생기면서 한두명씩 숫자를 불려갔다. 당시에 TRPG 마스터를 할수 있을 만큼 TRPG 지식이 있던 사람은 최경원뿐이었다. 따라서 마스터는 항상 최경원만 하고 있었으나, 이후 93년 여름 즈음에 앞서 기술한 모임에 속했던 김찬구가 가입하여 당시 처음으로 동양세계를 바탕으로 하는 세계관으로 마스터를 시작하고, 팀원으로 있던 멤버들 역시 그동안 쌓인 지식을 바탕으로 마스터를 시작, 신입 멤버들이 급증하며 모찾사는 갑자기 거대화되어가기 시작했다. 이에 부담을 느낀 일부의 의향에 따라 모찾사는 94년들면서 환상특급과 H2J2의 두 팀으로 분리되었다[* H2J2는 기존처럼 아는 사람들끼리 RPG를 즐기는 것에 만족했지만, 환상특급은 국내 RPG보급을 위해 적극적으로 팀을 확장시키는 데 주력했다]. 모찾사와 이 H2J2, 환상특급의 초기 멤버들이 사실상 국내 TRPG의 1세대라고 볼 만하다.[* 당시 최경원이 마스터를 볼 때 별명은 ""뺀마"". 이유는 마스터가 ~~외모가~~ 영 뺀질거린다는 이유로……. 나중에 최경원이 게임매거진에 필자로 참여할 당시에도 뺀마도사라는 펜네임을 사용했다. 이외에 김동은은 백마, 김찬구는 적마.] 최경원과 기존 멤버들이 주력을 이룬 H2J2팀은 기존대로 멤버들 위주의 플레이를 지속했지만,[* 여담이지만, 당시 팀의 분리는 마스터를 먼저 분리해놓고 팀원들이 취향에 따라 따라가는 방식이었다. 당시 마스터는 최경원의 서양 세계관과 김찬구의 고구려 세계관, 김동은의 갈회피겐이라는 이름의 독자 세계관이 있었는데(당시 김동은은 최경원으로부터 처음 RPG를 배운 지 6개월여만에 마스터를 갓 시작한 상태였다), 모찾사의 초기 멤버들은 대부분 최경원을 따라 모찾사에 이어 HappyHappyJoyJoy(H2J2)를 세웠고 비교적 후반기에 참여한 사람들이 대부분 김동은을 따라 환상특급(당시 유행하는 TV프로의 이름을 따랐음)을 설립했다.] 김동은을 위주로 한 환상특급팀은 이후 급속도로 몸을 불려가면서 한국 TRPG의 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흑석동 김동은의 집을 아지트(모임 장소)로 둔 환상특급팀은 지방에 분회모임을 두는가 하면 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으면서 TRPG인구를 급속도로 불려나갔는데, 사실상 이후 D&D한국어판이 만들어지면서 이어진 한국 TRPG황금기에 생기는 초창기 TRPG인구의 대부분은 직간접적으로 이 환상특급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 때의 초기 모찾사 멤버들이 나중에 한국어판 D&D의 번역에 주된 역할을 담당했으며, 이후 최경원씨를 비롯하여 대부분이 컴퓨터 RPG게임 쪽으로 진입하여 현재 RPG게임계의 주축으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의 초기 대부분의 온라인RPG게임은 이 멤버들의 손을 거쳤다고 볼 수 있을 정도]. 당시 대부분의 멤버들이 대학생들로, 그들 중 컴퓨터나 게임 관련 전공을 가진 사람들은 거의 없었으나(인문사회학 쪽이 대부분이었고 일부 공대생도 포함), 정말 이상할 정도로 당시의 H2J2와 환상특급의 초창기 멤버들의 대부분은 게임업계로 진출하여 현재 업계 선도기업들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먼저 업계로 진출한 사람들이 계속 동료들을 끌어들였기 때문인데.. 모 인물이 말한 "프로그래밍을 잘하는데 TRPG를 모르는 사람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TRPG 아는 사람에게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게 훨씬 쉽다"라는 말로 정리될 듯하다. 당시 사용하던 시스템은 주로 AD&D 1판과 2판이었으며, 이외 ICE에서 나온 Rolemaster, 소드 월드, 겁스, 룬퀘스트 등의 시스템도 일부 마스터들이 사용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