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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여자들(아녀자)'[* 이는 권력적 측면 뿐만 아니라, 의무의 대상으로서도 압력이 가해지는 표현이다. 사고나 재난 시 여성과 어린이 먼저' 탈출시킨다는 서양의 관념이나, 과거로 돌아가서 '여성, 아이들을 지키는 기사도'라는 로망적 계율을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이라는 표현은 가부장제를 상징하는 표현이라 봐도 좋다. 단, 여성이라고 권력에서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다. 권력은 주로 신분과 재산을 따라갔었다. 높은 신분이거나 재산이 많은 경우 여성도 [[선덕여왕|권력을 가진 경우]]가 존재한다. 다만 상술했듯이 사회안전망 시스템이 잘 정비되지 않고,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체가 약한 여성이 스스로를 지킬 수단이 별로 없는데다가 모든 활동에 신체력이 많이 필요하던 과거에는, 남성에 비해 권력을 유지하기 더 어려운 상황에 자주 노출되었다. 극단적인 상황으로 맨몸뚱이 빈털터리로 무연고자가 살아가야 할 때(전근대 사회에서 재난이나 전쟁, 불상사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밭을 갈거나 산이나 숲, 강에서 먹을 것을 찾거나 누구 밑에 들어가 일을 해주며 살거나 어떠한 생존 방식을 선택하더라도 단독 생존을 시도하려면 노동력이 높은 남성의 생존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결국에 여성이 자신의 생존 확률을 높이려면 상호보호를 보장하는 어떠한 집단에 소속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 효율적인 선택이었다.[* 물론 남성 역시 자녀 생산을 통한 노후보장과 인구 증가에 기반한 집단의 생존 확률 증대를 위해서는 여성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안전 보장 집단은 다양한 형태를 띌 수 있지만 역사적으로 확인된 시기들을 기준으로 보면 남성을 우두머리로 둔 부계/모계 중심의 씨족이 일반적이다. 가부장제의 조건은 일단 가장을 맡은 남자가 자기가정을 부양할 능력을 가져야한다는 것이다. 대중매체에서 나온 것처럼 가족부양도 안하고 술과 도박에나 빠지거나 바람이나 피우고 다니는 주제에 가장대우 받으려고 하는 것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가족을 포함한 모두에게 경멸의 대상이었다. 단지 남의 집안일에 크게 간섭하는 것을 꺼리기에 터치를 안하는 것 뿐이다. 가부장이 되는 남성은 집안에 속해있는 모든 재산(토지, 동산을 포함)에 대해서 그 처분을 결정할 권한을 가지며, 가문의 재산권은 가부장에게 속해 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가부장은 가문 내부에서 아내와 자녀 등 가문의 구성원에 대하여 인신구속권을 가지며, 결혼 등으로 [[가문]]을 나갈 때는 미리 가부장의 허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부장의 허가를 받지 않은 무단 결혼은 [[간통]]과 같이 취급된다. [[노예]]가 허용되는 사회에서는 '''구성원을 노예로 파는 것도 용인됬다'''.[* 로마의 [[십이표법]]을 보면 "아버지가 자식을 3번 노예로 팔면 자식은 아버지의 지배권에서 해방된다"는 조항이 있다. 바꿔 말하면 3번씩이나 노예로 팔 수 있다는 거다.] 또한 중국에서도 1911년 [[중화민국]]이 성립하기 전에는 법률에 의해서 가부장이 자식들을 노비로 팔거나 '''죽일 수도 있었다'''.[* 중국의 오래된 속담인 "'''아버지가 죽으라고 명령하는데, 자식이 이를 거부하면 불효자식이다'''"도 이를 반영한다.] 가부장은 인신구속권에 따라서 구성원이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경우 처벌을 내릴 수 있다. 이러한 처벌은 많은 경우 폭력적이다. 처벌을 내릴 권한은 법률적으로 인정되거나 사회적으로 용인받는다. 극단적인 경우, 가부장은 구성원을 살인하는 것도 허용받는 '''생살여탈권'''까지 가진다. 아프간의 [[탈레반]]들이 바로 이런 극단화된 가부장제의 가장 명확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가장은 (집단의 위기 상황에서) 구성원들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절대적인 책임과 권한을 갖는 셈이다. 당연하지만 이처럼 극단화된 가부장제는 전술한 탈레반들이 몸소 보여줬듯이(...)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장기적으로 억압된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각종 폐단을 축적시킬 가능성이 크다. 가정, 더 나아가 사회를 유지하고 보존하는 것은 구성원 간의 상호신뢰이지(심지어 군대조차도 그렇다) 가장과 같은 소수의 독재적인 판단이 아니기 때문. 실제로 가부장제의 대명사격인 이슬람 문화권의 가장들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집안 문제에 관해서는 꼭 아내의 의사를 묻는다. 과거 여성들이 가부장제로 인해 겪은 대표적 폐단이 [[남아선호사상]]이다. 과거 사회에서 여성은 내부 활동이, 남성은 외부 활동이 잦았기에 남성이 대다수의 책임을 부여받게 되었다. 때문에 관직에 오르거나 높은 자리로 진출할 수 있는 것은 대부분 남성이었고 따라서 집안의 대를 잇는 것 역시 자연스럽게 남성의 몫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한민국에서는 심화된 남아선호사상이 [[80-90년대의 여아 낙태 문제]] 같은 사회적으로 매우 좋지 못한 사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998년까지만 해도 한국은 부계혈통주의였으며, 2007년까지만 해도 기혼녀는 [[호주제]]로 인해 남편 호적에 들어갔다. 심지어 남편이 사망 시 [[장남]]이 호주가 되어 어머니가 어린 아들의 호적 아래 들어가는 이상한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다만 이러한 행보는 근대 사회에 들어서며 생겨난 폐단들이지, 과거 사회에서부터 쭉 이어져온 현상은 아니었다. [[조선시대]]의 양반가라면 모를까, 일반적인 평민들은 집안의 대를 이을 이유가 없었고, 더욱이 호적·족보가 없없기 때문에 이같은 폐단은 생기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한편 [[동성애]]나 [[비역|남색]]을 강하게 혐오하는 종교[*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가 영향력이 강한 지역들의 공통점 중의 하나가 가부장제가 매우 심한 지역들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성소수자]]의 권리가 비교적 잘 보장되어 있는 나라들은 성평등 의식 역시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가부장적이면서 동성애가 만연한 고대 로마와 그리스, 중세 일본 등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사실 가부장적인 문화에서는, 특히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 및 문화권에서는 [[게이]]나 [[레즈비언]] 뿐 아니라 남녀간의 결혼을 통한 성행위 이외에는 전부 안 좋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고대 그리스]]의 영향으로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이 큰편이 아닌 [[고대 로마]](기독교 도입 전)조차도 이런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부장제의 영향으로 고대 로마에서는 아버지는 자식의 생살여탈권까지 가지고 있었고, 로마 시민은 남자답게 박을지언정(penetrate) 박혀서는(penetrated) 안되는 존재였다. 즉, 고대 로마에서 [[황제]]나 [[원로원]] 의원 등 [[높으신 분들]]이 동성애자인 경우 전부 다 공 즉 탑 포지션이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 [[트라야누스]] 황제가 특히 그러했다. 또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경우 20대 초 청년시절에 [[술라]]의 [[숙청]]을 피해 [[비티니아 왕국|비티니아]]에 망명해 있으면서 비티니아 왕 [[니코메데스 4세]]과 관계를 맺으며 [[바텀(성소수자)|바텀]] 역을 했다는 섹스 스캔들이 퍼진 이유만으로 정계활동 내내 카이사르의 약점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놓고 로마 시민 자신이 바텀임을 주장한 결과가 어땠는지는 [[엘라가발루스]] 황제의 최후가 이를 말해준다.][* 실제로 [[로마 제국]]에서든 [[수메르 신화]]에서든 '남자로서 삽입 당하는 것'을 그 자체로 사회적 죽음인 것처럼 이야기하며, [[수메르 신화]]에서는 자기가 남자를 강간해 놓고서 "이 남자는 삽입 당했으므로 자유민이 아니다"라고 언플을 치는 장면이 나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