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타 (문단 편집) == 데뷔 전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강타돌사진.jpg|width=322]]}}}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강타유치원생.jpg|width=306]]}}}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강타유치원생2.jpg|width=202]]}}} || || '''{{{-1 백일 사진}}}''' ||<-2> '''{{{-1 유치원 시절}}}''' || [[1979년]] [[11월 29일]] [[서울특별시]] [[강동구]] [[방이동|이동]](現 [[송파구]] 오륜동)에서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명은 '안칠현'으로 원래 부모님이 정해놓은 이름은 '안희성'란 이름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림자를 넣은 이름을 받기 위해 고향 본가에 간 사이 우연히 [[지나가던]] 작명가가 '''사람들이 우러러볼 성공을 7번 한다'''는 뜻으로 안칠현이란 이름을 지어줬고 그 이름을 그대로 쓰게 됐다고. 그런 계기로 누나와 형은 평범한 이름이지만 본인만 특이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어렸을 적에 부모님은 공부를 더 해서 평범하게 진로를 선택하길 바랬었다고 한다.[* 1997년 2집 활동 당시 MBC "스타다큐"라는 프로를 보면 어머니가 강타에게 너가 좋아서 선택한 길이니 말리진 않았다만 힘들어도 공부는 소홀히 하지 말고 대학만은 꼭 가라고 간곡히 이야기하는 [[https://m.tv.naver.com/v/2627091|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그런 부모님의 기대와는 달리 [[메탈리카]]나 [[사이먼 앤 가펑클]], [[건스 앤 로지스]], [[그린 데이]] 같은 록음악을 듣고 음악에 심취해 갔다.[* 록 음악을 하고 싶었던 이유에 대해선 아무래도 처음 접한 음악이 록 음악이었고 교내 밴드에서 처음 잡은 악기도 건반이 아닌 기타였을 정도로 중학생 때까지는 록이 아닌 음악은 음악이 아닌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하고 싶었던 건 록이였다고.] 중학교 때는 아르바이트 한 돈을 모아 낙원 상가에서 앰프랑 펜더 기타를 구입했는데 본인 인생에서 처음 잡아 본 악기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보이즈 투 멘]]의 음악을 듣고 흑인음악에 관심이 생기게 되면서 가수의 꿈을 키워나가게 된다. || ||{{{#!wiki style="margin: 10px" {{{-1 Q. 에쵸티 시절,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A. 중학교 때부터 오디션을 보러 노래방에서 녹음한 테이프랑 친구들과 같이 춘 춤 비디오카메라로 녹화해서 여기저기 다녔어요. 지구레코드도 갔었죠. 왜냐면 듀스를 너무 좋아했으니까요. 윤상 형님도 그렇고. 하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죠. 중3 쯤 되니까 '아 우린 너무 어려서 안 되나보다' 싶었어요. 그렇게 포기할 즈음에 길거리에서 명함을 받았는데 에스엠(SM)인 거예요. 그때 에스엠은 현진영 씨가 있던 곳이고 유영진 씨가 있었으니까 두근두근 했죠. 그리고 그때 당시만 해도 저희에게 이수만이란 사람은 연예인이잖아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MC. 그러니 믿을만한 회사였으니까 친구들하고 가서 오디션을 봤는데 저만 붙었죠. 사실 에쵸티가 다섯 멤버를 확정하고 연습한 기간은 1년 밖에 안 돼요. 캐스팅까지 합치면 1년 7, 8개월 정도. 가장 행복한 순간은 첫 앨범 받았을 때에요. 앨범을 받는 순간에 데뷔하기 전 3, 4년 고생했던 게 떠올랐거든요. 그 행복은 어떤 것하고도 바꿀 수가 없어요. }}}}}} ---- {{{#!wiki style="margin: 4px" {{{-2 [[http://m.ch.yes24.com/article/view/34073|강타 “중국 시장이 세계를 뒤흔들 날이 온다”]] [[https://archive.is/PqvOL|아카이브]] (2017.08.14 채널예스) }}}}}} || 1994년 말 강타는 명함을 들고[* 길거리 캐스팅 출신] [[송파구]] [[석촌동]] 4층짜리 연립 빌라에 있는 SM을 찾아가 춤을 선보였다. 당시 SM의 직원은 이수만을 제외하면 4명이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연립 빌라에 사무실이 있는 작은 회사였음에도 당시에는 첨단장비였던 녹음실이 있었다는 것이다.[* 2022년 1월 [[댸니쇼]]] 유영진은 [[뱅크(밴드)|뱅크]]의 [[가질 수 없는 너]]를 불러보라고 했다. 그리고 곧 대표였던 이수만을 만났다. > 안경 좀 벗어볼래? 흠, 그래 같이 해보자. > ---- > ㅡ 1994년 당시 강타를 처음 본 [[이수만]]의 말[* 1999년 출간된 H.O.T. 자서전 중에서] [[H.O.T.]] 멤버 후보 중에서도 가장 먼저 SM에 입사한 연습생인셈. 데뷔 이전 연습생 때는 뒤이어 입사한 [[문희준]]과 함께 무대 경험을 쌓기 위해 [[유영진(작곡가)|유영진]]의 '''너의 착각'''때 백댄서로 활동했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c3QMr7hQ2lg)]}}}||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E3xwNmLeonc)]}}}|| || {{{-1 {{{#ffffff '''백댄서 무대'''}}}}}} || {{{-1 {{{#ffffff '''MV 출연'''}}}}}} || TV에 나온 강타를 보고 친척이 부모님께 이 사실을 알렸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가수는 배고픈 직업이라는 생각으로 가수가 되는 것을 반대하던 부모님은 강타의 의지에 가수 준비를 허락한다. SM에는 강타와 문희준 외에도 데뷔를 준비하던 연습생이 여럿 있었다. H.O.T. 멤버가 되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서 [[유영진(작곡가)|유영진]]은 강타를 멤버로 추천한다.[* 강타는 경쟁에 놓였던 연습생 시절의 마음을 지금도 기억한다. 사내 연습생 자체평가에 심사로 들어가서도 연습생들의 간절한 눈빛을 보면 그때의 마음이 되살아난다. 그래서 연습생을 직접 앞에 두고는 나쁜 평가를 하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수만은 팀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강타를 발탁하지 않았다. 어느날 강타는 백댄서 스케줄을 마치고 유영진과 같이 차를 타고 돌아오던 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를 따라 부른다. 이를 들은 유영진은 그 노래를 다시 불러보라고 하였다. 회사에 돌아온 유영진은 이수만에게 강타를 [[보컬리스트|보컬]]로 팀에 넣어야한다고 재차 주장한다. 결국 이수만은 유영진의 추천을 받아들여 강타를 H.O.T. 멤버로 확정하였다. 강타를 [[H.O.T.]] 멤버로 만들어주었던 곡은 '''IV Xample'''의 ''''I'd Rather Be Alone'''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