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개태사역 (문단 편집) === [[개태사]]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개태사)]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통일 기념으로 지은 절이다. [[http://younghwan12.tistory.com/3590|#]] [[http://k-heritage.tv/hp/hpContents/photo/storyView.do?contentsSeq=1748&categoryType=4&categorySeq=0|#]] 천혜의 관문이라 지정학적으로도 중요한 지점으로, 위성 지도로 보면 이러한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금강 이북 지역에서 금강을 건너 남쪽 평야지대로 진출할 때는 금강 본류, 현 공주시 소학동 인근, 그리고 개태사를 제외하면 논산 평야로 진출할 수 있는 진출로가 전무하다. 논산시 서쪽은 칠갑산을 위시한 차령산맥이 바다와 맞닿는 부분까지 뻗어있고, 동쪽은 말할 것도 없다. 금강 본류는 대규모 육군을 동원해서 따라 내려가기 어렵고, 공주시 소학동은 바로 금강과 맞닿아 있어 도강하다가 적에 요격당하기 쉬우며 이 지점의 강폭은 상당한 것을 고려했을 때, 청주 쪽에서 내려와 대전 및 세종 인근의 금강 상류 지점에서 도강한 뒤[* 이 때는 공주시 소학동과 달리 도강할 지점이 많고 강폭도 좁으므로 방어하기가 어렵다. 후백제을 방어 측 입장으로 보았을 때, 차라리 대전을 버리더라도 개태사만 잘 틀어막으면 기름진 논산평야 이남을 모두 손아귀에 틀어쥘 수 있었다.] 평야지대로 수월하게 나올 수 있는(혹은 반대로 금강 이북지역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목은 개태사 뿐인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