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미숙 (문단 편집) == 여담 == * 문체가 매우 재기발랄하고, 자유분방하다. 예를 들어 [[별에서 온 그대]]라는 드라마가 유행할 때에는 [[http://news.donga.com/List/Series_70080000000330/3/70080000000330/20120313/44720030/1|'나는 별이다']]라는 글을 써서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하는 식이다. 그리고 고전을 생동감 있게 재해석하는 식으로 글을 쓴다. 예를 들어 [[열하일기]]를 읽어보면 연암 [[박지원(실학자)|박지원]]이 옥전현이라는 마을 점포에서 너무나도 재미있는 문장을 발견하게 되어 그걸 열심히 베끼자, 점포 주인이 연암에게 왜 그걸 베끼냐고 물으니까, 연암이 “돌아가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한번 읽혀서 모두들 허리를 잡고 한바탕 웃게 하려는 거요. 아마 이걸 읽는다면 입안에 든 밥알이 벌처럼 날아갈 것이며, 튼튼한 갓끈이라도 썩은 새끼처럼 끊어질 것이외다.”라고 답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런 대목들을 소개하며, 무려 300년 전에도 연암 같은 사람이 남을 웃기기 위해서 그러한 고생을 다 했다고 평하는 식이다. 그런 이유로 고미숙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다. * 다만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좋게 보면 문체가 재기발랄하고 자유분방한 것이지만, 나쁘게 볼 경우 정말 난잡하다. 맥락을 끊어먹으며 반복되는 자잘한 묘사와 쉼표, 감탄사, 심지어 이모티콘(!) 등이 읽는 사람을 매우 짜증나게 한다. ~~[[귀여니]]냐~~ 작가의 서문 등을 보면 흔히 "글은, 소설은 누구나 쓸 수 있다"로 요약되는 사상인 듯 한데, 물론 어디 시정잡배라도 글을 쓸 수는 있다. 그걸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다는게 문제지(...). 대충 비슷하게 표현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열하일기, 그 웃음과, 그 역설의, 유쾌하고 희극적인 시공간! 아, 얼마나 생동감 있고, 팔팔한 시대였는가! 오잉? 믿기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라는 식의 문장이 책 전체를 다 채우고 있다. 문장 구조적으로 보아도 엉망이다. 감탄사는 한 두번 쓸 때야 주의를 환기시킨다지만 글 내내 이 쑈를 하고 있으니 읽는 사람이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 직접 한 챕터만 읽어봐도 안다. * 감이당에서 청년 백수들이 모여 공부로 자립한다는 모토로 사람들을 모아서 같이 공부를 하는데 자본주의, 무한경쟁, 청년문제에 대한 대안인'공부로 자립한다'는 모토다. [[http://m.kyeonggi.com/?mod=news&act=articleView&idxno=1218635]] 위 기사에서 볼 수 있듯 현대 사회의 대안으로 청년들의 '백수되기'를 제시하는데 쉽게 말해서 정규직 되기를 포기하고 프리랜서가 되어서 공부하고 글쓰고 먹고 살라는 말이다. 말은 그럴싸하지만 현대사회의 청년들이 취업경쟁에 매달리는 이유가 자본주의적 욕망 때문인가?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을 '자본주의적 욕망'으로 취급해버리면 할 말은 없다만 부모가 돈이 많거나 특출나게 운이 좋지 않은 이상 우리 사회 청년들은 집 있고, 삼시세끼 잘 챙겨먹고 여가도 즐기는 '평범한 삶을 위해서 죽을 고생을 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 Q) 이런 이야기(공부로써 자립한다)조차 버거워하는 빈곤한 사람들이 많다. 앞서 최고의 생존전략으로 제시한 공동체가 해결할 수 있을까. > 고미숙) 그런 설정 자체가 교만이라고 본다. 물론 불치병 같은 절대 빈곤은 사회적으로 공동의 과제다. 하지만 돈이 없어 공부할 수 없다는 등의 물질적인 빈곤의 문제는 아니다. 정말 가난해서 할 수 없는지 묻고 싶다. 약자니까 내가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권위와 주인의식이 생긴다. 받는 사람 역시 부담스럽다. 책임이나 동정을 가질 필요는 없다. 라는 발언을 하는데, 60년대 생 고미숙의 사회상은 여전히 70~80년 대의 경제발전시기에 머물러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무한경쟁을 빠져나오려면 각자 알아서 공부하고 '[[꼰대|노오력]]' 하라는 말 아닌가. 절대빈곤은 사회적 공동과제라면서 거기에 대한 해결은 청년 개인에게 책임 전가를 하고 있다. 더불어 최근 기본소득 문제가 논의되는 와중에 '청년은 약자가 아니니까 도와줄 필요 없다'는 발언은 복지에 대한 전무한 지식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런 논리라면 청년 일자리정책이나 기본소득 논의, 나아가서는 장애인 복지 등의 문제도 '''"그들을 약자로 보는 시각은 교만이다, 따라서 그런 복지정책은 필요 없다."''' 라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사실 절대빈곤에 빠진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일'''이다. 당장 먹고 사는 게 위협받는 상황에서 그 사람들은 공부를 하지 않는다. 청년들이 무한경쟁에 빠져드는 이유는 상대빈곤이나 낮은 신분에 빠지지 않다거나,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자본과 권력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공부'가 청년 개개인의 삶을 파탄내고 우울과 권태에 빠지게 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 고미숙의 요지이다. 사실 취업을 위해 공부하는 청년들의 대부분은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대학 등록금을 내고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상태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다. 배고픔을 모르는 자들이 가난을 얘기해봐야 공한 얘기만 돌 뿐 아니겠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의 저자 임승수 작가도 페이스북에 고미숙을 비판하는 글을 썼는데, 고미숙의 부족한 노동감수성을 지적했다. >내가 설마설마해서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 [[https://youtu.be/-F8gctGuXmg?si=ffh94xPiPg1ZTaAh|고미숙 씨 편]]을 찾아 다 들었다. 자유주의, 아나키즘, 봉건성, 공상적 유토피아니즘, 전근대성, 노동에 대한 천시, 엘리트주의... 이 모든 것이 짬뽕이 되니 '전 인민의 백수화'가 탄생한다. 고미숙 씨는 자신이 맘 편하게 책 쓰고 강의하며 유유자적하는 것이 노동자들이 공장 컨베이어벨트에 매여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자신이 책 쓰고 강의하고 놀면서 먹는음식 입는 옷은 누군가가 뺑이치며 노동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 나올 수 있는 물건 들인데.. >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0204112118228448&id=1390105126]] > > (임승수 작가 페이스북) [[분류:대한민국의 평론가]][[분류:1960년 출생]][[분류:정선군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출신]][[분류:고려대학교 대학원 출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