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영수 (문단 편집) == 여담 == * 부친은 [[한국방송공사|서울 중앙방송국]] [[기자]]로 일한 언론인인데 고영수가 국민학교 1학년이던 1957년 아버지의 연줄로 방송국 어린이 합창단 단원이 되어 라디오 방송에 수 차례 출연하였다. 당시 신입 [[아나운서]] 이던 '''강영숙'''[* 아나운서 은퇴 후 예지원 원장으로 재직하였다.]은 퇴근길에 고영수의 손을 잡고 그의 집 근처이던 [[탑골공원]]까지 데려다주곤 했는데 세월이 지나 개그맨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어느 날 방송 출연차 [[정동]] [[MBC]]에 갔다가 [[엘레베이터]]에서 MBC [[임원|중역]]이던 강영숙과 마주쳤다. 강영숙은 고영수에게 방송 잘 보고 있다며 인사를 건네자 고영수는 "선생님 저 기억 안나세요? KBS 외신부 고아무개 기자 아들입니다" 라고 말했다. 강영숙은 고영수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어머! 어머!"라고 깜짝 놀라며 눈물을 흘렸고, 자신의 집무실로 데려가서 "그 고사리손 꼬맹이가 이렇게 훌륭하게 자랐느냐. 아버님은 건강하시고?" 라면서 감격에 젖어 옛날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 [[HD현대]] 총수이자 전 [[대한축구협회]] 회장인 [[정몽준]]과는 [[중앙중학교(서울)|중앙중학교]], [[중앙고등학교]] 동창이다. 중앙중학교 시절 [[소풍]] 장기자랑 시간에 정몽준과 친구들이 우스운 춤을 춰서 1등상을 가져갈 듯하자, 고영수는 [[라 트라비아타|축배의 노래]]를 "마누라~ 마누라 마누라~ 나좀 그만 때려줘~" 라는 식으로 코믹하게 개사한 가짜 오페라 아리아를 불러 학생과 선생들을 포복절도 시키면서 1등을 차지하였다. * [[최양락]]이 가장 좋아하던 코미디언이었다고 한다. 당시 [[전유성]]보다 TV에 더 많이 나왔기 때문에.. 사석에서 고영수보다 웃긴 개그맨은 없다고 한다. 2021년에 관련 일화를 본인 유튜브 채널에서 풀었다.[[https://youtu.be/59D_lI5hvF8|#]][[https://youtu.be/KwVnzu164_U|#]] * 최양락의 말에 의하면 [[해병대]] 출신이라 한다. 다만 만기전역이 아니라 당시 심했던 구타 때문에 다쳐서 의병 전역을 했다고 한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344394#home|해병대 274기였다고 한다]]. * 사실 본래는 1974년 6월 10일 [[육군훈련소]]에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7406120032920801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4-06-12&officeId=00032&pageNo=8&printNo=8833&publishType=00020|입소했었는데]], [[지병]]인 [[관절염]]과 [[디스크]]가 있어 귀향 조치가 이뤄진 것인지 같은 해 9월 2일 다시 [[해군]]에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7409050032920801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4-09-05&officeId=00032&pageNo=8&printNo=8906&publishType=00020|입대했다]]. 그런데 위에서 해병대 274기였다고 하는데, [[https://blog.daum.net/seung9145/9306203|이 글]]에 따르면 해병대 274기의 입대일은 1974년 9월 9일이었다. 아마도 해군으로 입대했다가 [[해병대]]로 차출된 것 같은데, 확실치 않다. * 고영수가 가수로 활동하던 시절 '''자유인'''이란 노래를 만들었는데 대략 "날 보고 가라고, 날 보고 오라고,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라는 저항적 의식이 담긴 가사였다. 당시는 웬만큼 삐딱한 노래는 금지곡을 뻥뻥 때리던 [[박정희]] 정권 시절인지라 발표해봤자 방송도 못탈거 같아서 묻어버렸는데, 1978년 대학생이던 동생 고영선이 [[MBC 대학가요제]]에 나가려는데 곡 하나 있으면 달라고 조르자 고영수는 그 자유인의 가사를 "내 마음도 하나요, ~~[[코이즈미 하나요|응?]]~~ 내 뜻도 하나요, 어젯밤의 꿈도 하나요" 라는 식으로 발랄하게 고치고 제목도 '''한마음'''으로 바꿔서 주었다. 고영선은 친구인 [[임백천]]과 듀엣으로 한마음을 불러 장려상을 받았다. * 2010년 12월 24일 KBS 2TV [[여유만만(텔레비전 프로그램)|여유만만]]에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출연했다. 여기에서 DJ 시절 있었던 일화를 밝혔다. 한동안 방송이 끝나고 5분간 캠페인이 있었기 때문에 55분 무렵에 평소 때처럼 "네, 지금까지 제작 XXX, 기술 XXX..."라며 스탭들을 소개하고 엔딩을 치려는데 부스 밖에서 방송 진행요원이 갑자기 "캠페인 방송 없어졌다! 미안하지만 5분만 더 끌어달라!!" 라고 종이에 써서 흔들며 사정을 하자 고영수는 순간적으로 재치를 발휘했다. >제작 XXX, 기술 XXX... 두분이 오늘 수고 많이 하셨구요... 두분만 수고하신 게 아니고... 두분을 키우신 부모님들... 두분이 오늘같이 훌륭한 PD, 엔지니어가 될 수 있게 도와주신 스승님들... 국민학교 선생님, 고등학교 체육선생님...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면서... 그리고 이 CBS 건물을 짓는 데 도와주신... 벽돌공 여러분들, 시멘트를 날라주신 분들, 미장공사를 해주신 분들... 또 공사하실 때 밥을 날라주신 분들... 그런 분들께 오늘 새삼스럽게 감사를 드리고... 특히 추운 겨울날 안테나 세울 적에 산소용접 해주신 분들, 특히 철탑 위에 어지러운데도 불구하고 올라가서 맨끝에 십자가 달아주신 분들,[* 그 방송국이 [[기독교방송]] 이어서 그런 애드립을 쳤다고.] 또 이 분들이 내려올 때 사다리 잡아 주신 분들... 당연히 부스 밖은 완전히 뒤집어졌고, 오히려 시간이 부족하여 다 소개를 못할 정도로 훌륭하게 시간을 때웠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방송국 음지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는 2022년 12월 [[송승환]]의 [[유튜브]] 채널 '''원더풀 라이프'''에서 재현되었는데, 송승환은 얘기를 다 듣고 자신도 라디오 방송을 해봐서 알지만 생방송을 갑자기 30초 늘리는 것도 절대 쉽지 않은데 어떻게 무려 5분을 늘렸느냐며 감탄하였다.] * "청와대에서 부부싸움을 하면? '''육박전'''이다." 라고 당시 삼엄하던 군부독재시절 '''육'''영수 '''박'''정희 얘기를 농담으로 하는 바람에 [[국가안전기획부]]에 끌려가서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분류:한국 남성 코미디언]][[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1950년 출생]][[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 신자]][[분류:중앙고등학교 출신]][[분류:성균관대학교 출신]][[분류:해병대 출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