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공위시대 (문단 편집) == [[오스만 술탄국]] == [[바예지트 1세]]가 [[티무르]]에게 [[앙카라 전투]]에서 참패 당한 이후 약 10년 동안을 '[[오스만 공위시대]]' 라고 한다. 1402년 ~1413년. 결국 바예지트 1세의 아들 중 한 명인 [[메흐메트 1세]]가 나머지 형제들을 다 죽여버리고 술탄직에 올랐다.[* 이후 재위 기간은 1413 ~ 1421년이지만, 1402년부터 술탄으로 재위한 거라고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주장에 대한 근거는 두 가지인데, 먼저 무슨 생각이었던지 티무르가 메흐메트를 술탄으로 봉했던 사실이 있다. 게다가 내전 동안 네 명의 형제들은 제각기 주화를 발행했는데, 거기에 '술탄' 이라는 칭호를 박아넣었던 사람은 메흐메트 뿐.] 자세한 내막은 [[오스만 제국/역사]] 문서 참조. 오스만 술탄국의 팽창을 저지할 절호의 기회였다고 할 수 있으나 서유럽은 이 시기 동안 오스만을 공격한다거나 하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는데, 먼저 저 튀르크족이 한방에 주저앉았다는 데 충격을 받았기 때문. 즉 '튀르크도 저렇게 쎈데 몽골은 대체 얼마나 세다는 거야...?!' 라는 공포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때문에 티무르가 앙카라에서 대승을 거두고 아나톨리아 서부 지역을 초토화하자 공포에 빠진 오스만군 패잔병들이 살기 위해 [[다르다넬스 해협]]으로 도망쳐왔는데 해협을 오가는 유럽인 상선들은 해협 건너편으로 도망칠 수 있게 도와달라는 요청에 "같은 무서운 놈이라도 아는 놈이 모르는 놈보다 그나마 낫다"는 생각에 오스만군을 해협 건너편으로 태워다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 유럽인들의 입장에서 튀르크에 대한 정보는 가지고 있었어도 티무르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기 때문. 즉 유럽의 입장에서 '얘나 쟤나 강력한 이교도라는 점에서는 똑같다면, 잘 모르는 이교도보다는 잘 아는 이교도가 그래도 낫다' 였던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