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공익광고협의회 (문단 편집) == 역사 == 설득력있는 커뮤니케이션으로서 방송광고를 활용하여 국가정책 목표에 대한 국민적 화합과 합의를 실현하고, 선진국민으로서 바람직한 의식을 확립하여, 문화민족의 긍지와 주인의식을 함양하는 데 크게 기여하기 위해 1981년 10월 1일 한국방송광고공사 산하 '방송광고향상 자문위원회'로 발족했다.이후 공익광고의 자율운영계획을 수립하여 1983년 2월 22일 '공익광고향상 자문위원회'를 거쳐, 1988년 7월 1일 현재의 명칭인 공익광고협의회로 재구성하였다. 1981년 12월 5일 '저축으로 풍요로운 내일을'이라는 내용의 광고를 낸 것이 첫번째 공익광고다. 첫번째의 공익광고로부터 약 2년간 공익광고향상 자문위원회는 방송광고향상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방영되었다. 초창기 공익광고는 위협적이고 딱딱한 면이 많았다. 인상적이면서 강렬한 영상 전개와 무거운 배경음, 날카로운 궁서체 자막,무미건조의 중후한 내레이션 덕분에 더 그렇다. 이런 내레이션 톤을 전담하다시피 했던 성우는 [[조명남]], [[한상덕]], [[이광세]] 등이 있다. 특히 사회적으로 무거운 주제를 담은 광고의 경우[* 대부분이 바로 마약, 폭력, 범죄추방 등.]엔 아이들이 보기에는 '''[[PTSD]]'''가 예상되는 공익광고가 대부분이다. 대한민국이 민주화되고 군사독재의 색채가 옅어진 이후에는 훈계 대신 본래 목적인 "설득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부드러운 공익광고가 많이 제작되고 있다. 공익광고의 활성화를 위해 연 1회 일반인과 학생을 구분하여 대한민국 공익광고제(舊 공익광고 작품현상모집)도 한다. 2008년까지의 공익광고 작품현상모집에서는 자유주제로 작품을 만들었으나, 2009년부터 3년동안은 특정한 주제(2009년 - 물, 2010년 - 녹색성장, 2011년 - 지구온난화)로 공모를 받았다. 2012년부터는 다시 자유주제로 돌아왔다. 해외에도 공익광고제 출품을 했다. 공익광고협의회가 거둔 최고의 실적으로 1991년도 작품인 "필름 역회전"과 "올가미"는 각각 [[칸]] 국제광고제 은상, [[뉴욕]]페스티벌 파이널리스트에 선정된 바 있다. 그 이후에도 꾸준히 해외 광고제에 작품을 출품하고 있다. [[http://www.adeevee.com/aimages/200802/01/kobaco-illegal-copy-campaign-musican-copy-outdoor-206702-adeevee.jpg|해외 공익광고제 출품작 참고]] 또 다른 공익광고제 출품 작품의 예를 말하면 마이크를 들고 노래하는 가수의 손이 [[디지털 풍화|열화되면서]] 총기로 변하는 장면으로 음원 [[불법복제]]를 비판하는 광고도 있다. 공익광고협의회 로고는 발족 시부터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며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를 참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