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제통화기금 (문단 편집) == 대한민국과의 관계 == 대한민국은 1997년 11월 21일 [[1997년 외환 위기|외환보유고 파탄]]으로 결국 이 기구로부터 외화를 조달받는 대가로 국내 경제 구조를 전반적으로 거의 재편하는 수준의 강도 높은 요구 사항에 순응해야 했다. [[김영삼]] 임기 말에 재정 파탄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다음 대선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후보 모두 대통령에 당선되면 IMF의 구제금융을 받으며 경제 구조를 재편하겠다는 문서에 서명하고 선거를 치렀다. 따라서 유력 후보 중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더라도 대한민국 경제 구조는 [[신자유주의]] 방식의 극단적 불균형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 대신 [[김대중 정부]] 시기의 사회안전망 구축[*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등]으로 균형은 맞추게 되었다. 당시의 혼란의 원인을 제공한 주체가 IMF가 아니었던 만큼 학술적인 자리에서는 'IMF 사태'보다는 [[1997년 외환 위기]]라는 말을 주로 사용한다. 학술적인 정식 명칭은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Asian Financial Crisis in 1997)를 많이 사용한다. 당시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이 IMF에서 돈을 빌린 것은 [[1998년]]이 처음이 아니다. [[http://www.imf.org/external/np/fin/tad/extarr2.aspx?memberkey1=550&date1Key=2008-09-30|IMF 공식 자료]]. 1965년부터 1985년까지 지속적으로 IMF에서 돈을 빌렸으나 [[1997년 외환 위기]]와 같은 IMF 관리 체제는 아니었다. IMF 대출 계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마이너스 통장과 같이 제한된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빌릴 수 있는 '''차입예약협정(Stand-by Agreement)'''과 무제한 한도인 대신 1998년 IMF 사태와 같이 부채 상환이 완료될 때까지 IMF가 경제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긴급수혈자금(Supplemental Reserve Facility)'''으로 나뉘어진다. 위의 링크 내용과 같이 지금까지 대한민국이 IMF에서 돈을 빌린 횟수는 차입예약협정과 긴급수혈자금 모두 합쳐 18회이지만 긴급수혈자금은 1997년이 처음이었다. IMF의 강도 높은 경제 개혁으로 인해 그 충격파가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전두환 정권 시절 IMF 관리 체제를 겪었다는 얘기도 있지만 긴급수혈자금이 아닌 차입예약협정으로 빌린 기금에 대해선 IMF의 의사를 따를 강제적 구속력이 없다. 따라서 대한민국에서의 IMF 관리 체제는 긴급수혈자금을 빌린 기간인 1997년~98년이 유일하다.] 2010년 이후 한국 학계에서는 IMF의 경제 개혁이 한국의 경제체질을 망치게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다른 방식으로 외화부채를 해소할 수도 있는데, 고금리를 강요해 상당수 한국 기업을 파산시켰고, 파산된 기업을 미국의 헤지펀드들이 싸게 사서 큰 이득을 보았기 때문이다. 12%였던 금리를 27%로 올렸다. 또한 IMF의 경제 구조조정으로 인해 한국은 직업 안정성이 파탄나고, 양극화가 심해지게 되었다. 비정규직이 흔해지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차이가 심해지고, 공무원 쏠림 현상이 생긴게 바로 IMF 때문이다. 사실상 IMF는 한국 기업과 한국 국민을 강탈하여 미국 [[헤지펀드]]의 배를 불렸다고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