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군복/인민해방군 (문단 편집) == [[국공내전]]- [[한국전쟁]] (1945~1955) == [[파일:attachment/xiatian.jpg]] 한국전쟁 당시까지 여름 군복이다. 영화의 한 장면. 국공내전 이후로는 본격적으로 아랫주머니가 없어지고 색상이 황색으로 바뀐 인민복 형태의 군복이 사용되었으며, 중국 건국 이후인 1950년에는 새로운 군복을 '50식 군복'이라고 명명한 뒤 생산하였는데, 계급제도는 없었지만 "병"과 "장교급"의 직책에 따라 다른 군복을 지급받았다, 장교의 경우에는 2개의 가슴주머니에 단추가 드러나지 않은 군복을 착용했으며, 사병은 단추가 드러나 있는 군복을 착용했다 장교용 군복은 국공내전 당시의 군복과 세밀한 차이를 제외하고는 큰 차이가 거의 없었고, 사병용은 앞을 여밀 수 있는 단추가 옷 아래끝까지 내려오는 형태가 아니라 중간까지밖에 내려오지 않는 형태(소련제 M43과 비슷한 형태)였었으나 52년부터 완전히 앞을 여밀수 있게 바뀌었고, 58식 처럼 소매를 여밀 수 있는 단추가 폐지된 통소매로 바뀌었으나, 소매부분을 여미는 단추의 경우 55식부터 다시 부활했다 한국전쟁 후기로 가면 전쟁의 양상이 참호전 비슷한 고지전으로 변해 장기전으로 돌입하면서 [[철모]]를 썼다. [[파일:attachment/CVA.png]] 이것은 국공내전-한국전쟁까지의 겨울군복. 솜을 넣어서 방한성을 살린 것. 우리에게 익숙한 모양이다. 좀 굼뜨게 보이지만 방한성은 최고였고, 소련군 동복을 카피한 것이다. 원래는 방한장갑도 지급되지만 수량이 부족해서 모든 병력들에게 지급되지 못했다. 다만 겨울이 되면 [[중강군|중강진]]을 능가할 정도로 추운 만주 출신들은 개의치 않았다. [[파일:attachment/50winter2.jpg]] [[국공내전]] 1948-49 북중국-만주작전(요심전역)에서 입었던 동복. 북중국은 영하 40도를 오르내리기 때문에 두툼한 동복이 필수적이었다. [[파일:attachment/kongjun2-03.jpg]] 1950년대 중국 공군 조종사들의 정복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