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금주법/미국 (문단 편집) === 1700년대 === [[1700년]]대까지 식민지 사람들은 발효된 [[복숭아]] 주스, 진한 [[사과주]], [[럼]]을 마셨다. 이들은 대부분 [[서인도 제도]]에서 수입하거나 서인도 [[당밀]]을 [[증류]]해 만든 것이었다. 술은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었고 사람들은 [[바베큐]], 장날, 선거 때마다 술 주전자나 술이 든 그릇을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선거 후보자들은 [[공짜]] 술을 나눠줬고 이에 인색한 후보자는 이길 기회가 없었다. 심지어 금욕적인 [[뉴잉글랜드]] 사람들도 술을 많이 마셨다. [[청교도]]들은 [[알코올]]을 '신의 선한 창조물'이라고 불렀다. 자랑스럽지만 조심히 다뤄야 한다는 의미에서였다. 1770년이 되자 미국인들은 매 끼니마다 술을 일상적으로 마시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눈뜨개'로 하루를 시작하였고, 술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갓난아기]](!)를 포함한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술을 마셨는데, 아기들은 부모들의 럼 토디 머그잔 바닥에 [[설탕]]이 많이 든 부분을 다 마셨다. 한 사람당 알코올을 연간 3.5갤런(약 13.25리터) 남짓 소비했다. 참고로 여기서 3.5갤런 알코올은 일반적인 술 3.5갤런이 아니라 순수 에탄올 3.5갤런을 뜻한다.[* 에탄올 3.5갤런(13.25리터)면 16.9도짜리 소주 220병에 해당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https://www.kihasa.re.kr/news/card/view?seq=43162|#]] 2019년 한국인 한 명이 1년간 마시는 주류의 알코올 양이 평균 8.3리터다.] [[미국 혁명]]이 일어날 무렵에 평균적인 사람이 80프루프짜리 술을 연간 8.75갤런(약 33리터) 마신다는 것인데, 현재 소비 수준보다 45% 높은 수치. 그래도 당시는 고위층이 주로 술을 마시는 편이었다. [[건국의 아버지들]]도 종종 술을 마셨는데 오크렌트의 책에 의하면, [[조지 워싱턴]]은 농장에 증류기를 가지고 있었고, [[존 애덤스]]는 매일 진한 [[사과주]]를 들이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했고, [[토머스 제퍼슨]]은 [[와인]] 수집뿐만 아니라[* 비록 기후와 토지의 차이로 실패했으나 유럽 포도를 수입해서 직접 재배하여 와인을 만드려고도 했었다. 현 미국의 와인 주산지인 오리건-워싱턴-캘리포니아 주는 제퍼슨이 사망하고도 20년은 더 지난 1850년대를 전후해 미국이 차지하는 땅이다.] 자기가 직접 호밀을 길러 위스키도 만들 정도였다. [[제임스 매디슨]]은 매일 [[위스키]]를 한 파인트씩 마셨고, [[미합중국 육군]] [[사병]]들은 1782년 이래로 매일 배급의 일환으로 4온스(113.34g)의 위스키를 받았고, [[조지 워싱턴]] 자신은 '강한 주류의 온건한 사용으로 인한 이점은, 모든 군대에서 경험되었으며, 이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으며, 실제로 선거 유세하면서 사이다와[* 당연히 탄산음료가 아닌 당시의 탄산이 있는 사과주를 말한다. [[막걸리]]나 [[맥주]]에 탄산을 따로 넣지 않아도, 톡 쏘는 시원한 탄산이 있는 것과 같은 셈.] 맥주를 돌렸었다. 메사추세츠 지사였던 [[새뮤얼 애덤스]]는 주류사업에 관여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술을 물처럼 마셔댔던 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