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호학 (문단 편집) == 한국의 기호학 == 1968년 [[사상계]]는 구조주의를 주제로 쓴 글을 싣는다. 이를 보고 자극을 받은 많은 학자들은 이후 단편적으로나마 구조주의(기호학)[* 당시에는 그 둘의 개념구분이 모호해 혼용해서 쓰기도 했다.] 연구를 하였다. 1987년 [[이어령]]이 이화여대 내 기호학연구소라는 한국최초의 기호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1994년 한국기호학회[[http://semiotic.cafe24.com/rb/?r=home]][* 학회지-게재논문검색에 들어가면 기호학 관련 논문들을 많이 볼 수 있다.]가 설립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기호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는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이도흠 교수, 제주대학교 독문과 박여성 교수, 고려대학교 언어학과 김성도 교수,전 서울대학교 작곡과 서우석 교수,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백승국 교수, 건국대학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송치만 교수,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송효섭 교수, 경희대학교 프랑스어학과 김기국 교수 등이 있다. > 화쟁기호학은 한마디로 원효가 제창한 화쟁의 원리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처럼 팽팽히 맞서 있었던 형식주의 비평과 마르크시즘 비평을 종합한 이론이다. 이는 텍스트의 내적 구조를 분석하면서도 이를 사회와 문화, 이데올로기와 연관시켜 해석한다. 텍스트 속의 현실, 구체적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동시에 이를 수용자의 맥락에서 해석하고 다른 텍스트와 서로 주고받는 영향관계를 살핀다. 주체와 구조를 끊임없는 진동의 과정에 놓고 의미를 찾고 미학적 가치를 평가하는 비평이론이다. > 나는 이 이론으로 《삼국유사》를 하나의 텍스트로 놓고 이를 '반영상'과 '굴절상'으로 나눈다. 반영상은 당대의 역사적 현실을 거울처럼 반영한 부분이므로 역사서와 자료, 유물 등을 바탕으로 당시의 현실을 재구한다. 재구한 현실과 《삼국유사》 텍스트를 대비하면서 역사적 의미를 푼다. > 굴절상은 빛이 프리즘을 통과한 후 무지개를 펼쳐 보이는 것처럼 신라의 현실이 신라인의 꿈과 무의식에 따라 굴절된 부분이다. 굴절상은 겉으로 의미를 드러내지 않으므로 텍스트의 내적 구조를 기호학적으로 분석한 후 굴절되기 전의 빛, 역사적 현실의 씨앗을 찾는다.[* 이도흠, 『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 도서출판 푸른역사, 2003, pp. 11 - 12] 1990년대 노엄 촘스키의 창조적이고 생성적인 앵글로색슨 언어학의 유행이 지나자, 소쉬르와 구조주의 언어학이 한국 기호학계를 지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미국에서 수입한 화용론적이고 해석적인 기호 접근법이 횡행했으나 구조주의 언어학 덕택에 기호학의 비교적 과학적인 요소들이 한국에 소개 되었다. 현재, 엄밀한 의미에서의 한국의 기호학은 프랑스의 그레마스 기호학을 거의 모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이는 미국이나 프랑스를 제외한 서구의 경우도 실은 비슷한 상황이다. 한국의 경우 김성도(고려대학교) 교수를 중심으로 그레마스 기호학이 알려졌으며 이론적 개발보다는 실제 활용에 치중하고 있다. 주로 광고, 영화, 드라마 등이 기호학의 활용영역에 속한다. 기호학의 이론적 기초와 보다 범용적인 접근을 하는 학자로는 박여성(제주대학교), 최용호(한국외국어대학교), 김영순(인하대학교)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언어로 된 텍스트에 치중하거나, 코딩과 해석이 비교적 어렵지 않은 이미지물(드라마, 제스처, 도시계획, 예술사진 등)에 기호학을 적용하고 있다. 2000년대 초 한국 최초로 이미지 기호학을 소개하고 복잡한 자동차 로고, 일러스트레이션, 인터넷 상징, 이모티콘, 공간 같은 디자인 및 회화를 분석하고 연구한 신항식(전 홍익대학교 영상대학원 교수)은 한국에서 독보적인 영상기호학자로 알려져 있다. 특히 광고분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신항식(2002) 롤랑 바르트의 기호학 서울: 문학과 경계, (2003) 광고커뮤니케이션과 기호학 서울: 문학과 경계, (2005) 시각영상커뮤니케이션 파주:나남] 그러나 그는 강단을 일찍 떠나 언어와 이미지의 기호학적 구조가 어떤 경로를 통해 기독교의 권력을 공고히 했으며 전체주의적 독재에 도움을 주었는가 하는 역사학으로 건너갔다. 그는 원래부터 서양사 전공자였기 때문에 제 길을 걸어간 것으로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