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구 (문단 편집) ==== 암살 당시 ==== 김구는 암살 사건 당일 절명을 전후하여 천주교식 [[세례성사]]와 [[종부성사]]를 받기도 했다. 위키에서는 마지막 종교를 [[감리회]]로 서술했는데 이는 그가 당시 의식불명 상태였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며 죽음에 임박한 자에게 세례성사를 주는 것이 천주교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것은 후술하며 생전에 [[명동성모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던 김구는 당시 며느리 안미생과 명동성모병원 간호[[수녀]]들의 권고로 언제든지 [[천주교]]에 입교할 것을 언약했다고 하며, [[1946년]] 암살 사건이 발생하자 서울 명동성모병원장 박병래 신부는 곧바로 간호수녀들을 대동하고 [[경교장]]으로 찾아가 천주교 예식대로 [[세례성사]]를 주었다고 하고,[* 세례명은 [[베드로]]. 당시 10시에 [[명동성당]]에서 아침 미사를 마친 서울감목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도 급히 경교장에 도착하였다.] 사망이 확인된 뒤에는 간호수녀들이 시신을 염하였다.[* 경교장복원범민족추진위원회, 비운의 역사 현장 아!경교장(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2003) 514~515쪽)] 그런데 당일 김구의 수행비서 [[선우진]]이 암살범 [[안두희]]를 김구의 방으로 안내한 것이 11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고, 안내 후 2~3분이 채 못 되어 3층에서 총소리가 울렸으며, 총소리에 놀라 당시 비서였던 이풍식, 이국태가 뛰어 올라갔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다음 사람인 박동엽([[독립운동가]]이자 [[대광고]] [[교장]])과 경비원 2명이 따라 올라갔을 때는 12시 40분경이었는데 김구가 이미 사망한 뒤였다고 한다. 따라서 영세 당시 김구가 생존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욱이 이러한 상황에서는 김구에게 암살 당일 세례를 준 것이 본인의 진의인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백범이 과거 입교 의사를 밝혔다"는 관련자의 증언 뿐이다. 김구가 받은 세례는 [[세례성사#s-2|임종세례이자 조건부세례]]인데, 천주교에서는 이렇게 죽음에 임박한 자에게 세례를 주는 것을 대단히 중시하며 이때 영세자의 의식을 확인할 수 없거나 의사의 사망선고가 있었더라도 "영세자가 영세를 원하였던 것이 분명하고 아직 완전히 죽음에 이르지 아니하였음을 조건으로" 세례를 준다. 즉 세례가 유효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포기하지 않고 세례를 주어야 한다는 의미다.[* 심지어 신체 상태가 온전하다면 사산된 태아에게도 조건부 세례를 주는 종교가 [[천주교]]다. 물론 이때 그 세례가 유효하게 효력이 발생하였는지 여부는 [[야훼|하느님]]만 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과연 김구가 생전에 천주교 영세를 원했느냐가 문제되는데, 김구가 [[명동성모병원]] 입원시 천주교 입교를 언약했다는 증언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 증언을 교차 검증할 자료는 없고, 그가 생전에 성당에 출석했다는 자료도 없다. [[노기남]] 대주교의 기념 화보집에 한국 천주교회 주요 행사에 김구가 배석한 모습이 등장한 사진이 있는 것을 보면 천주교계와 친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친분과 개종은 분명 다른 문제다. 한국은 다종교 사회로 현재도 정치인들은 자신의 종교와 상관없이 3대 종교지도자들(불교, 원불교, 천주교)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려 한다. 김구는 임시정부 주석으로서 1940년대 한국 정계의 중심이였고 그런 그가 천주교 행사에 참석하는 것과 그가 천주교 입교의지가 있었느냐는 다른 문제다. 다만, 암살 사건 직후 다른 곳도 아닌 [[명동성당]]에 곧바로 피살 소식이 알려지고, 천주교 측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나서서 백범의 주거지에 찾아가 사후 예식을 순조롭게 거행한 것을 보면, 백범의 생전 입교 의사표시나 이에 대한 유족들의 용인이 아예 없었다고 성급히 단정하기는 또 어려운 측면도 있다. 백범이 암살 사건 직후 [[천주교]] 임종세례를 받은 것은 사실로 보이나, 이때에는 총격으로 의식불명 상태였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세례를 주는 것이 천주교의 종교적 전통임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다만 그러한 전통은 그런 방식으로 영세한 사람을 천주교회 밖에서 볼 때에도 사회적으로 천주교에 입교한 신자로 분류할 수 있는지와는 별개 문제이다. 결론적으로 백범의 천주교 개종은 확인되지 않는다고 보아 본 문서에서도 위키백과와 같이 그의 최종 종교를 [[감리회]]로 기술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