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근태 (문단 편집) === 국회의원 퇴임 이후 === 2008년 17대 국회의원 퇴임 후에는 [[한양대]]에서 강의를 맡기도 하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으로 활동하면서 한반도재단을 설립하여 연구 활동도 병행하였다. 예전부터 지원 유세를 하러 가는 일이 많았다고 하는데, 생애 마지막으로 유세를 지원한 것은 2011년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였다. 개인적으로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다음해 치러질 총선]]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끝난 직후부터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앞서 서술된 대로 전두환 정권 시절 당한 고문 후유증으로 김근태는 말년까지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는데, 지병이었던 뇌정맥혈전증이 악화되어 결국 12월 초 [[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했다. 입원 치료 도중 딸의 결혼식에 축하메세지까지 보냈지만 끝내 참석은 하지 못했고,[* 원래 입원했을 당시만 해도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려 생각했지만, 치료 도중 증세가 극도로 악화되어 결국 참석하지 못하고 축사만 보냈다. 결혼식에서 이 메세지를 본 부부는 물론, 하객들까지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끝내 2011년 12월 30일 새벽 5시 경 별세했다.[* 임종 직전 [[함세웅]] 신부에게 [[세례성사]]를 받았다. [[가톨릭]]에서 이는 '대세' 라고 부르는데, 정식으로 교리교육을 받고 배푸는 세례가 아닌 위급상황에서 세례까지 필요한 과정을 생략하고 행하는 세례를 말한다.] 향년 64세로, 장례식은 [[천주교]]식으로 진행되어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내 민주 열사 묘역에 안장됐다. 빈소에는 과거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던 정치인들과 여러 인사들이 조문을 왔다. 특이하게도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김근태를 장관이나 의장, 고문이 아닌 '선배님' 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980년대]]에 김근태가 민주화 진영에서 가지고 있던 위상을 생각하면 여러 인사들의 존경이 담긴 표현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모란공원은 [[전태일]] 열사, [[문익환]] 목사, [[박종철]] 열사 등 민주화/노동운동가들이 안장된 곳인데, 김근태는 비교적 최근에 별세했기에 묘역 위치는 맨 바깥쪽에 있으며 올라가는 뒷길이 따로 나 있다. 모란공원에서는 참배객들을 위해 직접 안내판을 걸어두었다. 생전 민주화운동가로서 쌓았던 공적과 별개로 너무 작고 소박한 묘소가 인상적이다. 매년 [[더불어민주당]]과 시민단체 주제로 추모행사를 열고 있으며, 성당에서 추도미사도 열리고 있다. 같은 해 노동운동계의 대모였던 [[이소선]] 여사도 별세해서,[* [[전태일]] 열사의 모친으로, 아들의 사망 이후 [[평화시장]]에서 피복노조를 설립하는 등 평생을 노동운동에 헌신했다.] 일각에서는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의 거목이 모두 떠났다는 논평을 하기도 했다. 2011년 10월 18일, 자신의 [[블로그]]에 '2012년을 점령하라' 는 제목으로 글을 남겼는데 이것은 그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2300954071&code=910100|마지막 논평으로 남게 되었다.]] 자세한 것은 해당 링크로.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이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촬영한 영상은, 그가 미디어에 등장한 [[https://youtu.be/ydyYs4emkhI|마지막 모습이다]]. 이른바 "김근태의 마지막 메시지(유언)". 자세한 것은 해당 링크로. [[https://www.newswire.co.kr/newsRead.php?no=27689|두 사람은 이런 인연이 있다.]] 2001년 [[딴지일보]]가 했던 고인과의 [[http://www.ddanzi.com/index.php?mid=ddanziNews&search_target=title&search_keyword=%EA%B9%80%EA%B7%BC%ED%83%9C&document_srl=865410|인터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