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두한(야인시대)/행적 (문단 편집) === 여담 === 청년기(20대 후반까지)의 김두한이 독불장군형으로 딱 주먹패 두목 할 정도의 리더쉽이었던 것처럼, 장년기 김두한 역시 막나가는 성격과 정세 판단에 어두운 모습을 자주 보였다. 특히 큰 돈줄이 될 수 있었던 건중친목회를 부하들에게 맡기지 않고, 다른 조폭들에게 나누어 준 것이 큰 패착이었다. 정작 우미관 패거리들은 건중친목회의 득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김관철이 우미관 패거리에게 돈을 보내준다는 언급이 있긴 했지만 그 돈도 김두한의 선거 유세에 모조리 소모했다.], 김두한의 국회의원 당선 직후 조직이 해체되자 대부분 힘겨운 삶을 살게된다. 게다가 다 같이 힘든 시기를 넘겨보자는 김두한의 이상과는 달리, 건중친목회의 주먹패들은 이권문제로 수 많은 갈등과 물의를 일으켰다. 주먹패들이 모이기만 해도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은 다들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일을 이런식으로 처리했다는 점에서 김두한이 지나치게 순진했음을 알 수 있다. 해방기의 혼란한 시대와 전쟁통의 난리에 먹히던 4달러 정신은 이미 시대착오적인 행동이 되었음에도 결국 그 자신과 부하들의 신세까지 모두 망쳐버린 셈이었다.[* 하지만 행적을 돌이켜 보면 그럴만도 하다. 2부 시작부터 김두한은 해군무관부를 자신과 소수의 우미관패 식구들만으로 급습하여 책임자인 대좌를 다이너마이트로 협박하여 무장해제시키는, 좌우익을 막론하고 고평가받는 일을 저질렀고 이후에도 불과 수백명으로 수만명의 국군준비대를 박살내고 그로 인해 미군에게 추적당하는 신세가 되었음에도 그 와중에도 심영을 고자로 만드는 등 김두한은 긍정적으로 말하면 과감하게 결단하고 행동하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그냥 막가파였다. 문제는 '''저게 다 성공했다는 거다.''' 즉 김두한은 너무나 많은 성공으로 오히려 자신의 그 행위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 자체가 없어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시대에 뒤처진건 옹호의 여지가 없기는 했지만 김두한은 본질적으로 주먹이었다. 국회의원이 되고서도 그 버릇 못 고칠 정도로 국회의원이 되었다 뿐이지 결국 주먹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4달러 정신이 시대착오적이기는 했지만 김두한의 문제점은 그걸 비롯해서 많은 부분에서 주먹시절에서 완벽히 탈피하지 못한 것이 컸다.] 청년 시절보다 욕설과 막말이 상당히 많아진 것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캐릭터 차이 때문일 수도 있는데, 처음 주먹패에 입문할 때만 해도 김두한은 다소 숙맥인 미청년이었고, 오야붕이 된 이후에도 의협심 넘치는 열혈 청년으로 묘사되었기에, 청년 김두한이 장년 김두한 처럼 '병신을 만들어주겠다', '개소리 집어쳐', '똥구데기들아!"같은 심한 욕설을 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김영철의 김두한은 이미 산전 수전 다 겪은 베테랑 주먹이며 거대 조직의 보스인 만큼, 이전보다는 욕설과 막말이 좀 더 자연스럽다. 청년시절에 비해 중년시절은 다소 안좋은 방향으로 캐릭터의 변화가 일어났는데, 뻔뻔한 것인지, 아니면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중년 김두한은 일제강점기 때 자신의 행적을 '일제와 맞서 싸웠다'로 포장한다. 물론 청년 김두한도 자신을 거리의 독립군으로 여겼으니 그 것의 연장선상이겠지만, 근로보급대 건에 대해 자아비판이라도 했던 청년 김두한과 달리 중년 김두한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을 '어느 누구보다도 독립운동을 생각한 인물'로 내세운다(국회의원 후보 연설이 대표적). 게다가 청년 시절에는 정진영으로부터 아편에 대해 어느정도 듣고 나서는 아편은 나쁜 것이니 태워버리자고 했지만 중년 때는 오히려 이 아편을 돈벌이에 활용할 생각만 했으니 얼마나 생각이 바뀌었는지 알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은근히 노회한 면도 보이는데, 장충단 공원 습격사건 당시에도 대응하지 않고 얻어맞게 시켜서 오히려 동대문사단과 자유당에 대한 이미지를 악화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덕분에 작중 조병옥이나 유진산 등에게 지략으로 칭찬을 받기까지 한다. 사망하기 전, 절에서 회상을 하는 씬에선 김두한 인생의 주요 사건들(장충단 공원 전투, 광복, 6.25 전쟁 등) 및 가족들, 과거 주먹패 동료 및 친구들(쌍칼, 김무옥, 문영철, 정진영, 개코, 시라소니)과, 라이벌(구마적, 하야시, 시바루, 마루오까, 이정재), 옛 연인들이 (설향, 박인애, 나미꼬, 애기보살) 한번씩 얼굴을 비춘다. 그런데 김두한의 인생에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간에 큰 영향을 주었던 원노인, 유태권, 미와 경부는 등장하지 않았고, 또한 김두한 때문에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던 부하 번개, 김두한이 주먹패에 들게하는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부하 털보 역시 등장하지 않았다. 또한 이런저런 인연이 있었으 뿐더러, 6.25 전쟁 때는 생명의 은인이기도 했던 이화룡 역시 등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짧은 악연이었던 외삼촌과, 그리고 직접 대면한 적도 거의 없었던 임화수가 회상 씬에 나왔다. 좀 황당한 점은 중년 김두한 역의 [[김영철(배우)|김영철]]은 1953년 생으로 같은 드라마에서 김좌진 역의 [[최동준]]의 1959년 생보다 6살이나 나이가 많은 것이다. 최동준은 조병옥 역의 [[김학철(배우)|김학철]]과 나이가 같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김좌진이 사망했을 때는 만 40세에 불과했으며, 어린 시절 김두한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는 당연히 30대였을 것이다. 김두한은 이보다 만 54세에 죽었으니 그가 중년이 된 이후 기준이라면 당연히 김좌진보다 나이가 많아야 한다. 사실 황당한 점은 해방 직후에 만 27세 청년이었던 김두한 시절부터 김영철이 맡았은 것. 편의상은 청년기/중년기로 갈리지만 청년기는 만 나이 기준 18~27세까지 10년이 채 안되는 시절인 반면에 중년기는 27~54세부터 무려 27년을 다루기 때문에 20대 청년부터 50대 중년까지 만 49세였던 김영철이 혼자 커버한 것이다. 이는 사극의 고질적인 문제점이긴 하지만, 그나마 수염이라도 붙히는 사극과 달리 여기선 외모 변화가 전혀 없다.[* 차이점이라면 배우의 화장 정도. 5.16 군사정변 이후부터는 이전에 비해 배우의 화장이 옅어졌고, 국회 오물 투척 사건 이후의 말년때는 노쇠한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인지 다소 어두운 톤이 되었고 주름도 많이 그렸다.] 정치깡패 미화가 많은 드라마 특성상, 작중 김두한에 대한 미화가 굉장히 많다. 김두한의 모든 행적 및 비판받을 부분들을 모두 '국가를 위한 필요악', '독재 정권에 대항하는 민주투사' 등으로 포장한다. 김두한이 저지른 명백한 범죄(대표적 예시: 김관철 살인미수)도 권력자가 억지로 죄를 만드는 식으로 묘사된다.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에도 그저 자유당의 독재에 맞서는 민주투사로만 묘사될 뿐, 사람을 폭행하는 등 이런저런 사고를 쳤던 그의 깡패같았던 행적에 대해선 묘사되지 않는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김두한(야인시대), version=1635)]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