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두한 (문단 편집) == 기타 == * 김두한은 [[학력]] 여부와는 상관없이 [[머리]]는 [[문무겸비|매우 좋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139&v=BMDPMS6p8Gw&feature=youtu.be&t=2m0s|실제 증언]] 심영을 [[저격]]할 때 미행했는데 머리를 교묘하게 써서 [[종로구]]와 [[중구(서울)|중구]]의 정확하게 경계선인 광교에서 저격을 해 중부경찰서와 종로경찰서 중 어디의 담당 구역인지 애매하게 만들어 놓았다. 권모술수에도 매우 능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혁명재판|깡패들을 죄다 잡아죽였는데]] 김두한은 [[이정재(조직폭력배)|이정재]], [[임화수]] 등이 잡혀 죽는 와중에도 자기 조직을 반공청년단으로 바꿔버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협조하는 등 놀라운 처세술을 보여 살아남았다. 물론 이 때 전직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이었기는 했으나 명백히 박정희 전 대통령과 생각이 다른 쪽이였으며 [[한국독립당 내란 음모 사건]]으로 [[프락치]]까지 심어 잡아넣었던 것을 생각하면 저 때 죽지 않은 것은 처세술이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로 이러한 점이 김두한과 이정재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김두한은 정권의 개라고 하기엔 반항기를 자주 보여줬지만 그와는 별개로 끊임없이 시국에 걸맞는 처세술과 대처, 재빠른 상황 판단을 통해 자기만의 구심점을 형성하여 국회의원까지 할 수 있었던 반면 이정재는 김두한과 같이 국회의원을 꿈꿨음에도 [[이기붕|권력]]의 개로 이용만 당하다가 끝내 사형당하는 결말을 맞았으니 김두한의 처세술이나 재빠른 시국 판단 능력만큼은 정말로 대단한 것이다.] [[김영삼|YS]]도 김두한을 "머리, 언변은 좋은데 글을 잘 못 읽는 사람[* 실제로 김두한은 한글밖에 읽을 줄 모르고 한자에는 정말 까막눈이었다. 그게 어떻게 글을 못 읽는 거냐고 의아해할 수 있겠지만, 그 당시엔 중졸 정도의 학력자도 자연스럽게 한문을 읽었고 그보다 더 저학력자인 사람도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한문만큼은 따로 공부했던 시대였다. 공문서는 한문을 모르면 아예 못 읽을 만큼 그냥 거의 다 한자였으며, 한문을 모르면 간단한 은행 업무조차 보기 힘들어서 은행원한테 문서 내 항목을 일일이 물어봐야 했고, 신문만 보더라도 90년대까지는 현대의 신문과 달리 한자가 워낙 많았기에 한자를 모르면 신문의 내용을 대부분 알 수가 없어 사실상 문맹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으로 치면 일본과 다를바 없이 일상생활에 한문을 쓰는걸 당연시했다.]"이라고 평가했다. 노변야화 출연 당시에도 그 화려한 언변 덕분에 청취자의 반응이 매우 좋아서 동양방송 측에서 당초 기획보다 방송기간을 늘린 게스트 중 한 명이었다. 물론 머리가 좋았던 것과는 상관없이 [[정치]]운은 그리 잘 풀린건 아니었다. [[자유당]]이나 [[민주공화당]]에 기웃거리기는 했다만 정작 자유당에 있었을 때는 일방적인 거수기 노릇을 거부하고 스스로 박차고 나왔으며 민주공화당에 기웃거리기도 했다가 결국 거부당하고 이후로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가 된 뒤, 마지막엔 [[국회 오물 투척 사건]][* 이때 또 감옥에 갔었다. 간첩 조작 사건때 한달간 감옥에 살았던 것부터 죽을때까지 감옥에서 살다가 나오는걸 반복했다. 특히 오물사건때 박정희한테 완전히 밉상으로 찍혀버려서, 재판 전 수사과정에서 중정에서 심한 고문을 당했었다는 게 정설이며, 그 이후로도 정치보복의 집중 대상이 되어버렸다.]에 나서면서 반[[독재]] 투쟁에 나선 인물로 조명받으면서 거물급으로 성장하나 싶었는데, 신민당에 영입되기까지 하고도 3선에 실패[* 이병희에게 졌다.]하며 재기하기도 전에 [[사망]][* 딸인 김을동 등 지인들의 말로는 그렇게 일찍 갈 분이 절대 아니었다고 증언했을만큼 깡패 시절부터 튼튼한 걸로 유명했던 사람인데, 오물투척 사건으로 수사받을때 심하게 고문당해서 후유증이 크게 남아서 환갑은 커녕 사건 발생 6년 뒤인 1972년 11월 21일에 향년 55세를 일기로 갑작스럽게 죽었다는 평가가 많다.]했기 때문에 거물급 인사로 성장하지 못했다. 물론 결과적으로 볼 때 정치적으로는 성공하지는 못했을지언정 반공을 하면서도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에 저항한 양심적인 [[야당]] 인물로 [[명예]]롭게 포장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끝이 좋아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 반대로 아버지 김좌진은 태어날때 기준으로 흙수저였던 김두한과 다르게 은수저로서 시작했으나, 말년에는 [[빈주 사건|재만동포들에게 독립자금을 강제로 징수하고 이에 반발하는 농민들을 학살하여]] 동포들의 증오를 받았고 결국엔 자기 부하에게 살해당했는데, 이는 빼도박도 못하는 김좌진의 [[흑역사]]로 남았다. * 그의 행적과 별개로 가족에게 정말로 소홀했던 건 사실이어서 [[김을동]]은 아버지가 죽었을 때도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다 할아버지 김좌진 명의로 나오던 국가유공자 연금을 기부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을 때 그제서야 아버지를 용서하게 되었다고 하고, 이후 김을동은 자신의 아들인 송일국에게 할아버지 김두한은 훌륭한 분이셨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송일국은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지만[* 김두한이 1972년 11월 21일에 죽었고 송일국이 1971년 10월에 태어났는데, 김두한이 사망했을 당시 송일국은 겨우 생후 13개월이었다. 사람은 5살 이전의 기억은 성인이 되기도 전에 다 까먹는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자라며 할아버지를 동경했으며 배우로 데뷔한 후에는 김두한을 연기하고 싶다고 밝혔다. 실제로 [[야인시대]] 기획 당시 송일국에게 [[김두한(야인시대)|청년기 김두한]] 역 제의가 들어왔지만[* 두 사람의 외모는 그리 닮진 않았지만 송일국은 185cm의 장신인데다 기골이 장대한 체격이기 때문에 덩치 큰 김두한과 딱 어울린다. 일제 시대 출생한 한국남성들의 평균신장이 160대 초반이었기 때문에 176인 김두한은 요새로 따지면 186~187급 장신이었던 셈이다. 안재모는 연기력과 별개로 172 단신에 선이 가늘고 곱상한 외모라 투박한 외모의 김두한과 전혀 싱크로율이 안 맞고, 이 때문에 '곱상하게 생겼는데 싸움을 잘한다'는 설정이 붙었다.] 어머니의 극렬한 반대로 무산되었고 청년기 김두한 역은 [[안재모]]에게 돌아갔다.[* 어머니 김을동도 김두한의 친할머니 역을 제의받았지만 아버지 이야기라 냉정하게 연기하기 힘들 것 같다면서 자료나 고증은 도와줄 수 있어도 드라마 출연은 할 수 없다며 고사했다.] * [[천연두]]를 앓아서 곰보 자국이 심했다. * 현역 시절 [[별명]]은 '잇뽕(한방)'이었는데, 노변야화 출연 당시 김두한 스스로의 증언에 따르면 누구든 자신에게 한 대만 맞으면 뻗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두한은 스스로의 별명에 대해 이걸 미국식으로 말하자면 "원 펀치"라며 자랑하듯 말했다.] 발차기 또한 상당히 잘 썼다고 하는데 특기가 어깨 짚고 양발차기. 발차기도 잘 썼지만 실제 김두한이 1대1로 [[싸움]]을 할 때 많이 썼던 건 바로 [[태클#s-2.4|태클]]을 걸고 마운트 포지션을 잡고 그 자리에서 박치기를 하거나 파운딩을 해서 끝냈다고 한다. 김두한 본인이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남긴 증언을 들어보면 그가 [[몸무게]]를 이용한 양발차기(드롭킥)과 태클에 이은 마운트 모두 체격이 크고 힘이 센 사람이 체격적 우위를 이용하기 좋은 [[기술]]들이다. 반면 [[구마적]] 같은 경우 김두한이 주장한 자신의 몸무게 25관(약 93.75kg)[* 다만 김두한의 후계자 조일환은 김두한의 체격에 대해 "전성기 때 선생의 몸집은 키 176cm에 몸무게 80kg 정도에 불과했다."고 말한 바 있다.[[https://blog.daum.net/lovefox/15822038|#]] 물론 이 정도도 당시 기준으론 평균을 훨씬 웃도는 체격이다.]보다도 월등히 큰 30관(약 112.5kg)이었다고 하는데,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021009/7870521/1|그에게는 "잡히면 다룽다룽 메달렸다 죽을 정도"였기 때문에 "휙 뜨면서 두 발로 안면을 내질러" 거꾸러졌다 일어나는 것을 눈과 코 사이 급소를 쳐서 쓰러뜨렸다고 한다.]] 구마적이 자신보다 크고 힘이 셌기 때문에 힘으로 상대하지 않고 몸무게를 실은 드롭킥을 날린 다음 헤롱거리는 상대의 안면을 가격해 쓰러뜨린 것. 본인의 묘사대로라면 덩치가 큰 장사 체형임에도 굉장히 민첩하고 격투 [[감각]]이 뛰어난 사람인 듯 보인다. 실제로 김두한이 살아 생전 저지른 악행들은 모두 폭행 사건들이라는 점에서 '인성이 어땠냐, 어떻게 평가받아야 하냐'와는 별개로 '''싸움을 매우 잘 하는 인물'''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 위에 언급한대로 그의 주력기는 발차기지만, 실제로는 주먹도 핵주먹급이였고 박치기도 잘썼다. 게다가 잘 언급되진 않았을 뿐, 구마적이나 신마적, 김관철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괴력의 소유자였다. 그의 측근들의 증언에 따르면 구마적의 부하 뭉치[* 야인시대 속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김두한의 회고에도 등장하는 인물이다.]와 대결했을때, 뭉치는 씨름에 능했고 구마적도 인정할만큼 힘이 장사였는데 김두한은 뭉치와 맞붙었을때 뭉치와 힘을 겨루어도 뒤지지 않을정도였다고 한다.[* 물론 뭉치에게 주특기인 발차기 한방으로 갈빗대를 부러뜨려 항복을 받아냈다고 한다.] 젊었을 때는 국회의원 시절 100kg에 육박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80킬로 이상은 나갔던 근육질의 거구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김두한이 가장 뛰어났던 점은 상대와 맞붙었을때 심리전과 함께 상대의 공격 스타일을 빠르게 파악하고 약점을 간파하여 속전속결로 끝내버리는 등 상당히 두뇌회전이 빨랐다.[* 반대로 이정재는 소싯적에 상품으로 걸린 황소를 여럿 쓸어담던 씨름꾼답게 힘은 장사였지만 둔하고 기술이 부족해 싸움은 영 못 했다고 한다.] * 김두한은 회고록이나 라디오 [[방송]] 등에서 자신이 [[역사]]적으로 굵직한 인물들과 밀접하게 엮였다며 사실 여부를 따질 수 없는 이야기로 온갖 [[양념]]을 쳤다.[* 해방 직후 [[대한민청]]을 실질적으로 이끌었고, 정계에도 몸담았으니 굵직한 인물들과 엮인 것 자체는 사실로 볼 수 있으나, 이들과 밀접한지의 여부는 사실 확인을 할 수 없다.] 얄궃게도 김두한 본인은 사망한 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여러 사람이 이름을 팔아먹는 유명인이 되었는데 김두한보다 한참 어리면서 자신이 김두한의 [[보스]]였다던 거지왕 [[김춘삼]]이 대표적인 예. 김두한과 비슷한 연배인 [[김동회]]나 [[이상욱(조직폭력배)|종로꼬마 이상욱]] 역시 이런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우연스럽게도 김두한, 김춘삼, 김동회 셋 다 [[안동 김씨]]인데 김두한은 신 안동 김씨고 나머지는 구 안동 김씨다.] * 김두한의 구술과 회고록은 당대 그의 인기 만큼 그 분량이 풍부하나 질이 매우 떨어져 사료로서의 가치는 거의 없다. 이는 그의 언행이 거칠어서가 아니라, 최고위급 정치인들과 죄다 인연이 있었다는 피상적인 허풍과 역사적으로 있으나 없으나 그만인 자잘한 사건들을 자랑하는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전부 사실이라 치더라도 역사적 의미를 갖지 않기 때문에 진위 여부를 논쟁에 붙이는 연구자도 없으며, 그런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쓸 시간에 허풍의 당사자인 고위 정치인을 직접 연구하는 것이 훨씬 가치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역시나 꽤나 재미가 있기 때문에 그를 바탕으로 수많은 창작물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 일본, 중국 등 [[한자문화권]]의 해외에서는 [[전두환]]과 종종 오기되기도 한다. [[김씨|金]]이 [[전씨|全]]과 비슷하기도 하고, 둘다 두([[斗]])를 쓰기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보인다. 사실 한국 발음으로도 성씨를 떼고 이름만 놓고보면 매우 비슷하기에 간혹 김두환, 전두한 등으로 잘못 얘기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 편이다. * 증언에 따르면 김두한은 [[이성순|시라소니]]를 만나자마자 욕지거리를 퍼부었고 휘하의 부하들을 보내 전력을 탐색한다. 하지만 거구의 부하가 시라소니의 주먹 두 방에 뻗어버리고 만다. 증언자는 김두한이 시라소니와 한 판 붙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지만 김두한은 시라소니를 "형님'으로 부르며 사과를 한다. [[https://vop.co.kr/A00000730593.html|시라소니와 김두한 세기의 격돌은 어땠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