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세균 (문단 편집) == 상세 == 1947년 태생. [[진주중학교]]와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100&key=20150612.22006192117|#]] 1979년 [[박정희 정부/평가/부정적 평가/정치#4.3.2.10|크리스찬 아카데미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선고유예를 받았다. 이때 같이 구속된 인물이 [[한명숙]], [[이우재(1936)|이우재]], [[신인령]] 등등. [[노회찬]]의 증언에 따르면 1997년 [[국민승리21]]에 참여했었다고 한다. [[http://www.polinews.co.kr/mobile/article.html?no=39859|#]] [[권영길]] 대통령 후보의 유세를 하기도 했다. 1999년 기고문을 통해 [[국민승리21]]에 부정적인 견해를 표출하기도 했다. '국민승리21이 주축이 된 진보정당의 건설은 한국 진보정치의 성장을 방해할 것'이라는 게 주장의 요지인데, 당시 29살의 젊은 활동가였던 [[박용진(정치인)|박용진]]의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http://news.cauon.net/news/articleView.html?idxno=1390|#]][[https://m.blog.naver.com/sungilkwon/80014246409|#]][[http://www2.laborparty.kr/bd_member/678503|#]] 2013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에 참여했다. 이 때문에 명예교수가 되지 못할 뻔 했으나 다행히 재심사를 통과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579560.html|#]] 2014년 12월 24일 105인 국민선언에 참여했다.[[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id=63521|#]] 이 105인 국민선언은 2015년 3월 29일 결성한 [[국민모임]] 창단준비위원회로 이어졌다. 자세한 사항은 [[국민모임]] 항목 참조. 국민모임은 2015년 11월 22일 [[정의당]], [[평등사회네트워크]], [[노동정치연대]]와 4자 통합을 통해 [[정의당]]과 합당했는데 이때 김세균 교수도 정의당에 입당했다. 입당 이후 [[나경채]]와 함께 정의당 공동대표를 맡았다. 정의당 3기 10차 전국위원회에서 정의당 문예위와 관련한 특별결의문이 원안으로 채택되었을 당시 수정안인 "혐오 발언(남혐,여혐)발언을 배격한다." 라는 말을 받아 들이지 않자, 김세균 공동대표는 표결직전에 여성주의자들이 [[메갈리아]]와 선을 명확히 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사실상 반대를 표명했다. 과거에 [[마르크스주의]]자였으나 현재는 정동영과 같이 신당을 차리는 등 많이 온건화하여 리버럴, 사민주의자에 가까워졌다. 2016년 9월 공동대표직을 사퇴했다. [[http://www.justice21.org/78340|#]] 2017년 4월 [[정의당]] [[심상정]] 당시 대선후보 선거대책위원회에 고문단으로 참여했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90467.html|#]] 2017년 6월 출범한 정의당 내 의견그룹 '진보좌파'의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http://www.redian.org/archive/111708|#]] 2019년 1월 선거권을 만 18세로 낮춰야 한다는 학계 및 법조계 성명에 참여했다. [[http://omn.kr/1gylb|#]] 2019년 7월 정의당 동시당직선거에서 [[양경규]] 당대표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http://www.redian.org/archive/134037|#]] [[조국(인물)|조국]] 장관 임용으로 불거진 논란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자유주의 세력]]도 [[자유한국당|수구 세력]]과 마찬가지로 기득권임을 자각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논평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469&aid=0000425460|#]]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