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영재(1952) (문단 편집) == 생애 == 1952년 9월 7일 강원도에서 태어났다. 김일성종합대학 외문학부 영어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1년 5월, 무역성 부상에 임명되었으며 2002년 조선국제무역촉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2003년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2006년 9월, [[박의춘]]의 뒤를 이어 주러 북한 대사로 부임하여 2014년까지 8년간 재임하였다. 이때 카자흐스탄, 몰도바, 벨라루스, 투르크메니스탄, 아르메니아 주재 북한 대사를 겸임하였다.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 때 러시아 측은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김영재를 소환한 바가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2684895|있다.]] 2012년 7월, 북러 국경조약에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260432&plink=OLDURL|조인하였다.]] 2009년 1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며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었다. 2011년 12월, 지재룡, 리용호 등 주요 대사들과 함께 김정일 장의위원에 위촉되었다. 2014년 8월 [[김형준(북한)|김형준]]에게 주러 대사 자리를 물려준 이후 귀국하여 2015년 4월 대외경제성 부상을 맡았다. 2016년 8월에 [[리룡남]]이 내각부총리로 승진함에 따라 그의 뒤를 이어 대외경제상으로 승진하였고 주북 러시아 대사 [[알렉산드르 마체고라]]가 페이스북에 축하 메시지를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0822500081|올렸다.]] 2016년 5월 7차 당대회에선 중앙위원회에 들지 못했으나 2017년 10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 당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보선되었다. 2019년 3월, 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며 4월 10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당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했다.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에서 [[김재룡]] 내각 하에서 대외경제상에 유임되었다. 2020년 10월 10일, 조선로동당 창건 75돐 열병식에 참석했다. 하지만 대북제재와 코로나로 북한의 상황이 계속 악화되는 와중에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에서 탈락했고, 최고인민회의 14기 4차 회의에서 [[윤정호(북한)|윤정호]]에게 자리를 물려주어야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