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일성 (문단 편집) == 개요 == ||<#FFFFFF><-2> {{{#!wiki style="margin: -5px -10px -6px" [[파일:Kim Il-Sung 1950.png|width=100%]]}}} ||<#FFFFFF><-2> {{{#!wiki style="margin: -5px -10px -6px" [[파일:Kim il-sung 1984.png|width=100%]]}}} || ||<#ED1C27><-2> [[1950년|{{{#FFF '''1953년 (당시 41세)'''}}}]] ||<#ED1C27><-2> [[1984년|{{{#FFF '''1984년 (당시 72세)'''}}}]] || [[북한]]의 초대 [[최고지도자]]이자 [[독재자]]. 광복 이전 [[일제강점기]]에 [[소련]] 산하 무장 항일단체 출신의 [[독립운동가]]였다.[* 물론 낯빛 하나 바뀌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성향 때문에 독립운동마저 부인하는 시각도 있기는 하고 [[김일성 가짜설]] 문서에서 보듯 평양 시민도 처음엔 그가 '김일성'이라는 것을 믿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소련은 물론 미국도 그가 만주에서 활동하던 도중 그 활동이 스탈린을 만족시켰다고 해석한다.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1889819&code=61111611&cp=nv|#]] 심지어 CIA의 문서에서는 그가 '사령관'이었다고 하나 사령관이었던 적도 없고, 여러 설 중 하나가 [[마적]]질을 하고 다니며 치안의 목적으로 활동하던 경찰 같은 일본인도 죽이기는 하였으니 [[보천보 전투]] 등으로 항일운동 비슷한 것을 한 것은 맞다는 것이다. [[8월 종파 사건]] 당시에도 김일성에 대한 최후의 반격 카드가 소련에 보천보 전투는 '보잘 것 없는 성과'였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지 그가 일본과 싸운 적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gram/elite_paradox/snkelite-04152022092237.html|#]]] [[소련]]의 정치적 목적으로 선택되어 해방 이후 한반도 이북의 지도자로 옹립되었으며[* 당시 소련의 지도자였던 [[이오시프 스탈린]]은 소련군과 인연이 있으며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젊은 김일성을 한반도 이북의 대중을 사로잡고 통제할 수 있는 수단으로써 강하게 선호했다. 이는 김일성 스스로가 소련군 통역을 자기 심복으로 배치시키고 술자리를 제공하는 등 소련 권력자의 눈에 들기 위한 치밀한 노력이 그 배경이 되었다. 1937년 보천보 전투를 통해 김일성이라는 이름은 당시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어, 소련은 그를 더할 나위가 없이 좋은 선택지라고 판단했다.] [[백두혈통]]으로 일컬어지는 현 북한 3대 세습의 시초를 닦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