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한길 (문단 편집) === 창당과 합당 이력 === 2016년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당시 2007년경 민주당 분열 과정에서 빚어진 수 차례의 창당과 합당 과정이 화제가 되었다. 다만 친노와 비노가 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비노 중 중도-보수성향 정치인들의 동반탈당이었기 때문에 '잦은 당적 변경'과 같은 개인적 선택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피닉제]]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이인제]]의 경우 소속되어 있던 정당이 [[자유선진당|당명]] [[선진통일당|교체]] 및 [[새누리당|합당]] 등과 같이 타의적 당적 변경이 아닌 자의적 당적 변경(탈당 및 당 대표인 상황에서 합당을 결행)만 셌을 경우 '''8회'''(무소속 포함)이고 같은 기준을 적용했을 경우 김한길 의원 역시 '''8회'''이다.[* 불분명한 탈당 1건이 있는데 이것을 포함하면 탈당 횟수는 9회다.] 물론 진보 정당을 제외한 모든 당에 소속된 적이 있는 이인제와는 달리 김한길은 [[제3지대 정당]][* [[통일국민당]], [[국민의당(2016년)|국민의당]], [[바른미래당]]]과 [[민주당계 정당]] 범위 밖으로 나간 적은 없지만, 그 복잡한 [[민주당계 정당]] 계보에 들어가는 거의 모든 당에 몸담은 적이 있고, 특히 그 자신이 [[민주당계 정당]]들의 이합집산에서 중심적 역할을 맡은 점으로 인해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에 김한길 본인은 우리 사회의 갈등요인 중에서 "지역 갈등은 조금씩이라도 완화되는 것 같으나, 정치 진영 간의 갈등은 여전히 심각하다.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하는 양당 중심의 정치는 필연적으로 적대적으로 될 수 밖에 없다. 내가 정치하는 내내 양당 중심 정치를 어떻게 해서든 깨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당적이 자주 변경될 수 밖에 없었지만 결국 매번 실패했다. 내가 요즘 다시 등장하니까 탈당, 창당을 많이 했다고 나를 공격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내가 탈당, 창당을 시도 했던 것은 나름대로 양당 정치의 폐해를 바로잡기 위한 행동이었기 때문에 좌절했어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 사실 양당이 서로 보수니 진보니 말하지만 그렇게 극명하게 차이가 있는 정당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굳이 차이점을 든다면 [[경상도|지역]] [[전라도|기반]]이라든지 대북 정책 등에서 몇 가지 차이가 있는 정도에 불과하므로 여든 야든 서로 동의할 수 있는 국가를 위한 공동 목표를 가지고 서로 경쟁하는 게 맞다고 본다."라고 항변하였다. 이어서 자신이 최근에 본 멋진 말 중에 하나가 "우리가 이만큼이나마 누리고 있는 세상은 수많은 이상주의자들의 좌절을 통해서 이뤄진 것이다. 오늘날 다당제가 정치 발전인 것처럼 말해지는 데까지 오는 과정에서 수많은 창당 시도가 칭찬을 받지는 못할 망정 비난을 받을 일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탈당과 창당은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정치적 기본권이지 비난 받을 대상이 아니다. 정당이 특정 패거리에 장악되어서 다른 목소리를 용납하지 않고, 정당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체제에서 굴종하지 않는 방법은 신당 창당으로 맞설 수 밖에 없지 않는가."라고 말하였다. || 1 || [[민주당(1990년)|꼬마민주당]][* 김한길의 정치 시작을 [[민주당(1991년)]]에서 시작한 걸로 알려져 있는데, [[신민주연합당]]과 합당 이전인 1991년 4월에 꼬마 민주당 동작 을 지구당 조직책(현재의 지역위원장/당협위원장)에 임명됐다는 기사가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있다.] → [[민주당(1991년)|민주당]] || 1991. 9. 16. || [[신민주연합당]]과 합당 || || 2 || '''[[민주당(1991년)|민주당]] → [[통일국민당]]''' || 1992 || 정주영의 제의로 제3당 입당 || || 3 || [[통일국민당]] → [[무소속]] || 1994 || 대선 패배 후 탈당[br]정계 은퇴 및 방송활동 시작 || || 4 || [[무소속]] → [[새정치국민회의]] || 1996. 1. 23. || 전국구 제안에 의한 입당[br]정계 재입문 || || 5 || [[새정치국민회의]] → [[새천년민주당]] || 2000. 1. 20. || 새정치국민회의의 확대 개편 창당 || || 6 || '''[[새천년민주당]] → [[열린우리당]]''' || 2003. 11. || 새천년민주당 분당 || || 7 || '''[[열린우리당]] → [[무소속]]'''[* 이때 소속 정당은 없이 무소속이었지만, 함께 집단 탈당한 20여명이 '중도개혁통합신당추진모임'라는 원내교섭단체를 만들어 활동했다.] || 2007. 2. 6. || 김한길계 집단 탈당 || || 8 || '''[[무소속]] → [[중도개혁통합신당]]''' || 2007. 5. 7. || 김한길계 신당 창당 || || 9 || '''[[중도개혁통합신당]] → [[중도통합민주당]]''' || 2007. 6. 29. || [[민주당(2005년)|민주당]]과 합당 || || 10 || '''[[중도통합민주당]] → [[대통합민주신당]]''' || 2007. 8. 3.(탈당)[br]2007.8.5.(입당) || 김한길계 집단 탈당[br]2008. 1. 6. 정계 은퇴 선언 || || 11 || [[대통합민주신당]] → [[통합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 2008. 2. 17. || [[민주당(2007년)|민주당]]과 합당 || || 12 || [[통합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 [[민주당(2008년)|민주당]] || 2008. 7. 6. || 당명 변경 || || 13 || [[민주당(2008년)|민주당]] → [[민주통합당]] || 2011. 12. 16. || [[시민통합당]]과 합당[br]2012년 초, 정계 재복귀 || || 14 || [[민주통합당]] → [[민주당(2013년)|민주당]] || 2013. 5. 4. || 당명 변경 || || 15 || '''[[민주당(2013년)|민주당]] → [[새정치민주연합]]''' || 2014.3.26. || 흡수 합당[* [[새정치연합]]은 창준위이므로 합당의 주체가 되지 못했다.] || || 16 || [[새정치민주연합]] → [[더불어민주당]] || 2015. 12. 28. || 당명 변경 || || 17 || '''[[더불어민주당]] → [[국민의당(2016년)|국민의당]]''' || 2016.1.3.(탈당)[br]2016. 2. 2.(입당) || [[새정치민주연합 분당]]의 여파로 탈당 || || 18 || [[국민의당(2016년)|국민의당]] → [[바른미래당]] || 2018.2.13. ||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 || || 19 || [[바른미래당]] → [[민생당]] || 2020. 2. 24. || [[민주평화당]], [[대안신당]]과의 합당 || || 20 || '''[[민생당]] → [[무소속]]''' || 2022.7. ||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 취임 || 김한길은 불출마 선언을 두 차례 했지만[* 다만 2008년과 2016년 이후로는 총선 불출마 내지 은퇴까지는 아니어도 선거철 시즌만 제외하고 대체로 정계 활동을 관여하지 않아 정계와 멀어지기는 했다.] 정계 은퇴를 선언한 적은 없고 국민의 당 이후로는 정계 활동을 하지 않고 정계와 멀어지기는 했다. [[국민의당(2016년)|국민의당]]에 입당한 이후 다른 당에 별도로 입당을 하거나, 활동을 한 사실은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