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폴리 (문단 편집) === 이탈리아 통일 후 === [[이탈리아 통일|이탈리아의 통일]]로 결국 남이탈리아는 1300년 만에 최초로 (북)이탈리아에 예속되었고, 신생 [[이탈리아 왕국]]의 도시가 되었다. 일개 지방 도시로 전락한 나폴리는 그 성세가 쇠퇴하여 많은 남부 이탈리아인들이 [[미국]], [[아르헨티나]] 등 신대륙으로 이민을 떠나게 됐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3년에는 연합군의 공중 폭격을 받았으며 같은 해 10월 1일 해방되었다. 1946년 왕정 폐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는 약 80%가 왕정을 지지해 이탈리아 전역에서 가장 [[사보이아 가문]]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시절도 있었다.[* 정작 사보이아 가문의 본거지였던 [[피에몬테]]의 [[토리노]]와 [[발레다오스타]]의 [[아오스타]]에서는 공화정에 대한 지지도가 더 높았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탈리아 통일 초창기 사보이아 가문이 토리노를 버리고 [[피렌체]]로 도망치듯 [[천도]]하면서 이미 민심이 나빠졌는데, 제2차 세계 대전 중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연합국]]에 항복하면서 [[독일 국방군]]이 이탈리아 북부를 점령해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을 세워 내전이 일어났고 이탈리아 북부는 그 피해 현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 국민투표에서 결국 왕정 폐지가 결정되자 나폴리에서는 왕정 폐지를 이끌었던 [[이탈리아 공산당|공산당]]과 [[왕당파]] 사이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열혈 왕당파들은 나폴리에 왕정 신정부를 수립하고자 했으나 이탈리아의 마지막 국왕 [[움베르토 2세]]는 이를 거부하고 망명을 떠나 무산되었다. 하여튼 공화국이 된 후 나폴리는 세계적인 [[관광]]도시에 [[공업]]도 나름대로 발달하지만, 남부 각지에서 빈민들이 몰려들면서[* 사실 이러한 이촌향도 현상은 타 유럽국가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남부 개발에 실패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빈부격차나 치안 등 사회 문제가 대두되었으며 [[마피아]] 세력의 중심지로 전락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안좋을 때는 나폴리가 위치한 캄파니아 주의 1인당 GDP(PPP)가 2008년 명목이 아닌 구매력 평가 기준 $18,900 정도로 동유럽을 제외하면 유럽 최저 수준을 찍던 적도 있었다. 2018년에도 명목 gdp가 18800달러 정도로 상당히 낮다. 왕당파가 우세했던 20세기 중반과는 달리, 현재는 정치적으로 [[좌파]]의 지지기반이 이탈리아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곳 중 하나다. 2020년대 초반 기준 나폴리 시의회의 집권여당은 사회민주주의 성향인 [[이탈리아 민주당]]보다 훨씬 더 급진적인 좌파연합 세력이다. 종합적으로 보면, 나폴리 지역은 원주민인 쿰마인-그리스-에트루리아-[[고대 로마]]-동고트족-[[동로마 제국]]-노르만-호엔슈타우펜-[[프랑스 왕국|프랑스]]-아라곤-합스부르크-[[프랑스 제1제국|나폴레옹 제국]]-이탈리아 통일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민족의 지배를 받으며 흥망성쇠를 거듭한 땅이라 할 수 있고, 오늘날에도 이탈리아 남부 지역의 최대 도시로 기능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