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북전쟁 (문단 편집) === [[1860년 미국 대통령 선거|1860년 대선]] - 링컨의 당선 === 1850년대 초까지 주요 양당이었던 미국 [[민주당(미국)|민주당]]과 미국 [[휘그당]]에서도 남부계와 북부계의 분열이 극심했으나, 민주당이 스티븐 더글러스가 어정쩡하고 어중간하게나마 중도 노선을 취할 수 있었던데 반해 휘그당은 [[에이브러햄 링컨]] 등이 탈당하여 신생 [[공화당(미국)|공화당]]에 입당하는 등 당 자체가 와해 위기로 몰리기에 이르렀다. 1856년 선거에서는 민주당, [[무지당|미국당]], 공화당의 3파전이 벌어졌다. 휘그당은 일단 존재 자체는 남아 있었으나 대부분의 세력이 공화당으로 빠져나갔고, 단독으로 대선 후보조차 내지 못해 반이민, 반가톨릭 미국당의 [[밀러드 필모어]] 후보를 공동으로 지지해야 할 정도로 몰락했다. 1856년 선거, 1858년 선거를 거쳐 미국당(무지당)이 몰락하고 1860년에는 공화당 vs 민주당의 구도가 되었는데 당시 신생 공화당은 북부 지역당이었다. 정확하게는 확고한 이념을 가진 정당이라기보다는 망한 휘그당, 반이민자 성향의 [[무지당]], 반노예제 [[자유토지당]] 등 서로 성향이 다른 정치집단들이 단지 '반노예제, 남부 노예주들의 횡포 타도'를 위해 뭉친 연립정당(Coalition)에 가까웠다. 공화당에서는 서로 다른 계파에 속한 여러 대선 후보들이 경쟁했고, 가장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 온건파 [[에이브러햄 링컨]]이 선택되었다. 공화당에서도 온건파였던 링컨은 바로 노예제 폐지를 공약하진 않았지만 개인적인 신념은 노예제 폐지였다고 볼 수 있다. 공화당은 미 헌법이 중앙정부가 노예제가 현재 이미 존재하는 지역들은 간섭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되, The Northwest Ordinance 등 사례를 들면서 연방정부가 아직 주 정부가 성립되지 않은 연방정부의 땅들에 대해서는 노예제를 폐지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반 노예제 당으로써 현재 연방정부 땅에서는 노예제를 폐지하겠다라는 것을 공약으로 삼았다. 즉 공화당의 목적은 노예주들이 정치적으로 앞으로 우위에 설 수 없게 정치적 사형선고를 내림과 동시에 장기적으로 노예주들을 자유주들로 둘러싸서 노예주들이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노예제를 포기하도록(put it in course of ultimate extinction) 만드는 것이었다. 이 당시 링컨 및 공화당의 입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헌법적으로 이미 노예제가 이미 존재하는 곳에서 노예제를 폐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서부로 노예제의 확장을 막는 건 연방정부가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자유주들에게 둘러싸인 노예주들은 노예제라는 시스템의 약점 때문에 차례대로 알아서 무너질 것이다.'[* James Oakes (2012). Freedom National: The Destruction of Slavery in the United States, 1861–1865. W. W. Norton. p. 12.] 한편 민주당은 북부와 남부 간에 의견 통일이 안 됐다. 북부 민주당은 노동자들의 당이자, 아일랜드 이민자들 및 해외 이민자들의 당이었다. 이들은 노예제에 대해서 소극적 지지 혹은 현상유지에 가까웠고, 관심은 대륙횡단 열차 등 경제적인 곳에 더 많았다. 물론 노예제를 선거에 써먹지 않은 건 아니라서 공화당을 '흑인 공화당'이라고 비난하고 집요하게 북부 백인들의 백인 우월주의에 호소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러나 남부 민주당에게는 이것조차 부족했다. 남부 민주당, 실질적으로 강경 노예제 찬성론자들이자 남부주 분리독립론자들('Fire-Eaters')은 북부 민주당의 소극적 지지가 아니라 완전하고 적극적인 노예제 지지를 원했다. 그런데 남부 노예주들의 횡포가 너무 심해서, 북부에서는 아무리 보수적이라고 해봤자 이미 '자유주의' 사상이 퍼져 있었기 때문에 적극적인 노예주 지지는 인기가 없었다. 이런 민주당 남부와 북부의 차이로 인해 민주당의 패배는 이미 예정되어 있던 수순이었다. 북부 민주당의 [[스티븐 더글러스]]가 끝까지 어정쩡한 위치에서 어물적대자 폭발한 남부계 민주당이 [[존 C. 브레킨리지]](John C. Breckinridge)[* 당시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 밑의 [[미국 부통령]]이었다. 미국 역대 최연소 부통령. 나중에 남부연합에 가담하여 남군에 장성으로 입대한다.]를 따로 후보로 내놓는 등 대분열이 일어났다. 구 휘그당 세력 중 남부에 동정적이고 연방의 현상유지를 주장하는 입헌연합당(Constitutional Union Party)의 존 벨(John Bell)이 남부에서 브레킨리지와 대결하고, 공화당의 에이브러험 링컨이 북부에서 북부민주당의 더글러스와 맞서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선거 결과 공화당의 링컨이 북부지역의 표만 가지고 39.8%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렇게 공화당의 링컨이 남부주에서 선거인단을 단 1명도 얻지 못 했는데도 불구하고 대선을 이기자 남부주 주민들은 권력의 추가 남부에서 북부로 넘어갔음을 느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공화당 같은 북부의 공세에 노예제가 종말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는 것도 느끼며 전율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