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북전쟁 (문단 편집) == 여담 == * 남북전쟁 중 북부에서 통과된 개정 징병법에서는 부자들에게 합법적으로 병역을 피할 수 있도록 했는데[* 300달러의 면제비를 내거나 대리복무자를 입대시키면 면제가 가능했다.] 빈민들이 반발하여 [[1863년]] 7월 '''[[뉴욕 징병거부 폭동]]'''이 터졌다. 사흘간의 폭동 결과 약 120명이 사망하고, 20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최신무기였던 [[개틀링 기관총]]이 남군과 싸우는 전선이 아니라 무려 이 폭동 진압에 처음 사용됐다. * 북부는 일종의 [[용병]]인 [[외인부대]]원을 유럽에서 모집하기도 했다. [[조지프 퓰리처]]도 이 때 미국으로 건너와 북군 용병으로 입대했다. * 남군은 공작원들을 동원해 북군 지역 후방에서 여러 가지 분탕질을 시도하기도 했는데, ~~무장공비~~ 1864년 10월 19일 [[캐나다/역사#s-4|영국령 북아메리카]]에서 침투한 21명의 공작원들이 [[버몬트]] 주 세인트앨번스를 습격한 사건(St. Albans Raid) [[https://en.wikipedia.org/wiki/St._Albans_Raid|#]], 같은 해 11월 25일 자칭 '[[맨하탄]] 연맹군(Confederate Army of Manhattan)'을 자처하는 8명의 괴한들에 의한 맨하탄 방화 음모 공작 등이 그것이다. * 세인트앨번스 사건은 남북전쟁의 최북단 전투(?)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은행을 습격해 은행원에게 [[미연합국]]에 대한 충성 맹세(...)를 시킨 후 88,000달러의 돈을 챙기고서 현지인 1명을 죽이고 2명을 부상 입힌 후 캐나다로 무사히 다시 철수했다. 영국령 캐나다 당국은 돈은 미국에 돌려줬지만 습격자들은 석방해 미국 여론을 화나게 했다. * 남북전쟁의 연금수령자가 2020년까지 생존해 있어 화제가 되었다. Moses Triplett이라는 이름의 1846년생 남자가 남북전쟁에 참전해서 연금수령 자격을 얻었고 1920년 그의 첫번째 아내가 죽자 1924년 50세 연하의 Elida Hall이라는 여성과 결혼했으며 1930년 83세의 나이로 Irene Triplett이라는 딸을 낳았다. Irene Triplett은 부모 사후 Moses의 자녀 자격으로 연금수령자가 되었는데 미국 보훈부는 Irene Triplett에게 2020년 사망시까지 매달 73.13달러의 연금을 지급했다고 한다. [[https://www.cnbc.com/2020/06/03/irene-triplett-last-person-to-receive-civil-war-era-pension-dies-at-age-90.html|언론 기사]] 참고로 Moses Triplett은 남군에 참여도 했지만, 전쟁 후반에 탈영해서 연방군에 입대했기 때문에 [[연방군]] [[군인]]으로서 연방정부의 [[연금]]을 받은 것이다. [[https://news.v.daum.net/v/20200609113106969|한글 관련 기사]] * [[제너럴 셔먼호 사건]]에서의 배 이름인 제너럴 셔먼과, 미국 전차 [[M4 셔먼]]은 남북전쟁의 북군의 육군 사령관 중 한 명인 [[윌리엄 테쿰세 셔먼]]의 성인 셔먼에서 따온 것이다. * 한편 [[민주당(미국)|민주당]]은 [[앤드류 존슨]]이나 [[스티븐 더글라스]]처럼 남부 주의 연방잔류를 지지하는 인물들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방탈퇴를 지지하는 남부 민주당이 남부연합에 대거 가담하는 바람에 종전 이후 '''반란분자들의 정당'''으로 낙인찍혀 암흑기에 들어간다. 그래서 링컨 대통령 암살 이후 미국은 [[그로버 클리블랜드]]를 제외하고 한동안 공화당 출신 대통령만 계속해서 당선된다. 이 공화당 천하는 약 50년 동안 계속 이어지다가 1912년 [[우드로 윌슨]]이 당선되고 나서야 끝이 난다. * 미국의 [[국력]]은 이 시점에서 이미 유럽 [[열강]]도 건드릴 수 없는 수준임이 증명되기도 했다. 특히 [[철도]]의 효율적인 개발과 운송의 발달은 이미 다른 국가들과 궤를 달리하는 발전 상황이었다. 1870년 [[보불전쟁]] 당시 프랑스-[[프로이센]]이라는 두 육군강국이 합쳐서 200만을 동원했음을 보면, [[대서양]]과 [[태평양]]으로 보호받는 미국을 공격하는 건 [[유럽]] 열강이 같이 죽을 각오로 [[총력전]]을 펼쳐도 불가능하다. 여기서 수십 년이 흘러 1차 대전기가 되자 [[초강대국|아예 넘사벽이 되었다]]. * 남북전쟁이 종결된 이후 [[미국 남부]]에서 건립된 남부연합 관련 상징물, 기념관, [[동상]] 등은 2010년대까지도 곳곳에 남아있었지만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를 계기로 잔존해 있던 기념물들이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monuments_and_memorials_removed_during_the_George_Floyd_protests|연이어 파괴 또는 철거되거나 박물관에 놓이는 처지가 되었다]]. 다만 이 행동들은 남부연합 관련 기념물 뿐만 아니라 북군측 노예 폐지론자의 동상을 흑인들이 훼손하거나 관련없는 동상을 부수는 등 남부 동상들만 피해를 본 것은 아니다. * 포로에 대한 대우가 열악했던 전쟁 가운데 하나이다. 북부연방이나 남부연합이 운영하던 포로 수용소에서 수 만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특히 남부연합이 운영하던 조지아주 앤더슨빌의 섬터 수용소(Camp Sumter)만 연방군 포로 약 13,000명이 질병, 영양실조, 추위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곳은 1865년 7월 26일 앤더슨빌국립묘지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 남북전쟁 당시 전쟁 후반에 다다를 쯤, 남군들이 시기와 각오를 다지기 위해 머리카락을 [[삭발|싹 밀고]] [[수염]]을 기른 채로 등장하였는데, 그 당시 북군들에게는 신선한 상황으로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 윌리엄 체스터 마이너라는 북군 출신 군의관은 제대 후 [[PTSD]]에 시달리다가 [* 다만 당시에는 PTSD의 개념이 뭔지도 정립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영국 런던으로 이주하였는데 우발적으로 조지 메렛이라는 남자를 살해하고 브로드무어 치료감호소에 수감되었다. 다만 그가 수감된 동안 제임스 머리의 주도로 옥스퍼드 사전의 초판본이 한창 작업중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마이너의 역할이 매우 컸다는 점이 [* 당시 사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문헌에서 특정 단어가 문맥에서 어떻게 쓰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글로 쓰고, 해당 글들을 검토하여 퇴고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글들을 [[집단지성]]에서 얻기 위해, 머리는 대영제국 국민이라면 누구든 편지를 보내 참여할 수 있도록 홍보하고 있었다.] 매우 아이러니하다. 이 이야기는 [[프로페서 앤 매드맨]]이라는 소설과 영화로 각색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