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단셋 (문단 편집) == 역사 == 당 부대는 1990년대 초반부터 창설되어 초창기에는 높으신 분들이나 다른 중대에 보여주기 위한 '시범 중대'의 역할을 주로 하였으며, 시위 현장에는 직접 투입되지 않았다. 서울청 기동대의 제식 기준이 바로 이들이었던 것.[* '우리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중요한 곳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 라는 구호는 전통적인 1기동대 1중대의 상징이며, 기동대 건물 중앙 입구에도 현판으로 걸려있었다. 현재 1중대를 이은 11중대에도 남아있는 현판.] 1996년 [[연세대 사태]] 이후로 특수기동대(현 5기동단) 창설 이후 흑선풍 작전 등 2000년 김기영 단장 취임 이후 극렬시위대 전담 격대로 지정되고 본격적으로 시위진압에 투입되기 시작하는데, 2000년 노동자대회를 비롯해 2001년 대우차 파업, 2003년 노동자대회, 2003년 부안 핵폐기물 처리장 반대집회, 2005년 평택 미군기지 이전반대 집회 등지에 투입되어 전국 각지에서 활약한다. 여기서 얻은 명성과 부대 자체의 특수성, 그리고 선봉,현무,특공이라는 이미지로 인해 유명세를 타게 되나, 2005년 11월 11일 노무현정권 당시 일어난 농민대회 사망사건으로 인해 과잉진압 논란이 크게 일어났으며 언론의 뭇매를 맞고 지속적인 감시로 인해 전력이 급감하여 결국 2008년 부대 재편과 함께 사실상 해체가 된다. 이 과정에서 키 제한도 사라지고[* 다만 1중대의 경우 중대장의 자부심으로 본인 승진 전까지 차출 과정에서 장신자를 우선으로 차출했다.] 단셋이라는 명칭도 사라진다. (이후 키 제한은 다시 생겼다가 2015년 10월부터 다시 사라졌다.) 그 후신인 11,12,13중대 일명 '국밥1'[* 당연히 실제 격대 이름이 국밥인 건 아니지만 격대명 또한 모두 음어에 해당하므로 나무위키에 직접적인 표기는 피한다.] 격대가 단셋의 후예라는 자부심으로 선봉에서 활약했으나 11,12,13은 같이 붙어다니지도 않고 키제한도 아예 없어져어 특수성이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후 2022년 [[경찰청 의무경찰|의무경찰]] 폐지의 영향으로 인한 부대 감축의 일환으로 해당 중대들은 모두 해체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