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영제국 (문단 편집) == 영향력 == >'''We are not interested in the possibilities of defeat; they do not exist.'''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패배 따위엔 관심 없습니다.'''[* 영어에는 [[3인칭화|Royal We 혹은 Majestic Plural 으로 불리는 보통 서구의 군주가 스스로를 복수(We)로 칭하는 장엄 복수형]]이라는 어법이 존재하나 위 발언은 당시 [[보어 전쟁]]에 적극적이었던 전시 내각이 소집된 상태에서 [[빅토리아 여왕]]이 다소 소극적인 행보를 보인 총리를 꾸짖으면서 나온 것으로 정황상 본인 혼자만을 가리키기보다는 내각 전원을 칭하는 것이라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 >[[빅토리아 여왕]], 1899년 제2차 [[보어전쟁]]에 대해 대영제국은 [[나폴레옹 전쟁]] 승리 이후 전성기를 달리며 19세기 중엽[* [[아편전쟁]], [[크림전쟁]], [[세포이 항쟁]]]에 그 세력과 영향력이 전세계에 달해 세계 패권국에 이르렀다. 흔히 대영제국(British Empire)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것은 [[영국 정부]]가 썼던 공식 국명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영국과 영국이 지배하는 식민지들을 통칭하기 위해 편의상 붙여진 명칭이다.[* 당시 대영제국의 정식 국명은 '''[[그레이트브리튼 왕국|Kingdom of Great Britain]]'''(1707년~1801년) → '''[[그레이트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1801년~1927년) → '''[[영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1927년 이후)이었다.] [[영국 국왕]]은 [[영국령 인도]]([[인도 제국]])에 한하여 [[황제]] 지위를 겸했을 뿐, 통합된 국가의 수장을 지칭하는 명칭은 어디까지나 '국왕'이었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로마 황제]]만을 적법한 황제로서 인정해왔으며[* 따라서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은 물론이거니와, 로마와 맘루크 왕조를 멸망시킨 후 각각 로마 황제와 이슬람 칼리파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한 [[오스만 제국]], 교황으로부터 서로마 황제로 인정받아 등극한 [[신성 로마 제국]]만 정당하게 황제를 칭할 수 있었다.][* 예외적으로 [[프랑스 제국]]이 존재하는데, 전례를 남긴 이베리아의 [[알폰소 6세]]가 칭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주변국으로부터 무시와 조롱을 받았으나 전례와는 달리 힘으로 전 유럽을 굴복시켜 후대의 [[나폴레옹 3세]]에 이르러서는 나름의 정통성을 갖추기도 했다. 이에 관한 설명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문서로. 참고로 프랑스 제국은 [[프랑크 왕국]]의 후예를 주장했으니 억지로 보면 로마의 후예라 볼 수 있다.], [[러시아 제국]]의 경우 아예 [[제3의 로마]]라는 말을 만들고 동로마 제국의 후예를 자처했다. 로마 제국의 속주 중에서도 [[로만 브리튼]]으로서 변방, 그것도 완충용 속주 정도로 인식되었던 영국이 로마 제국의 후계자를 자처하기에는 그 정통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유럽 세계에서 황제국을 주장하는 국가들에게 로마 황제라는 타이틀은 그 권위 자체를 증명했다. 교황 [[레오 3세]]가 [[카롤루스 대제]]에게 제관을 씌워줄 때도 그냥 준 게 아니라 문서를 조작해서까지 서로마 제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 다음 그걸 수여했다. 한편 서로마 황제 작위가 오도아케르에 의해 동로마 황제에게 다시 반납된 것을 모든 사람이 다 알았기에 동로마에서는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Location_of_the_BOTs.png|width=100%]]}}}|| [[전간기]] 이후로 옛 식민지들이 대부분 독립하면서 거대 식민제국으로서의 위상은 거의 잃어버렸지만 아직도 그 일부가 영국의 속령으로 남아 있다. [[지브롤터]]를 제외하면 전부 다 [[섬]]이다. 위 그림에서는 [[영국령 남극지역]]도 포함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남극은 [[남극조약]]에 의해 어떤 국가의 영유도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남극조약 채결 전까지는 실질적으로 영국이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채결 이전에는 사실상 대영제국의 영토로 취급하였다. '''지금도''' 영국은 [[케이맨 제도]]에서 해가 지면 [[핏케언 제도]]에 해가 떠 있고 핏케언 제도에서 해가 지면 [[영국령 인도양 지역]]에 해가 떠 있고 인도양 지역에서 해가 지면 [[아크로티리 데켈리아]]에 해가 떠 있어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이다.''' 전성기 대영제국의 대항마로 꼽혔던 것은 그나마 전반기에는 [[프랑스 식민제국]], 후반기에는 [[러시아 제국]]이 꼽혔지만, 전자는 [[7년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 등 여러 사건을 거쳐 결국 영국이 명확하게 우세를 차지했고[* 결국 프랑스는 19세기부턴 사실상 대영제국의 패권을 넘는 것은 포기하고 대체로 영국과 다투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는 방향으로 간다.] 후자는 [[그레이트 게임]]으로 불리는 패권 경쟁을 했지만 영국이 국력에서 우세한 상황 하에서 러시아의 거대한 영토와 인구, 군사력의 잠재력을 감안해 미리 대비해 견제한다는 성격이 강했다.[* 실제로 약 100여년이 지나, 러시아 제국을 계승한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이후 [[영국령 인도 제국]] 독립을 기점으로 영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확실히 뛰어넘어 [[초강대국]]에 등극하니 19세기 영국의 우려와 견제는 결코 헛된 생각은 아니었다.] 20세기 초에 신흥 열강으로 떠오르던 [[미국]]도 영국의 잠재적 적국으로 간주하고 미국에 대한 견제 정책을 수립하려 했으나,[* 1차대전 당시 미국이 [[평갑판형 구축함]] 수백척을 찍어내는 어마어마한 공업력을 선보이자 영국이 기겁한게 컸다. 그래서 [[영일동맹]]을 기반으로 미국을 견제하려 했으나 영국과 일본이 끝내 결렬하면서 무산된다. 그리고 미국도 마찬가지로 [[태평양 전쟁]] 이전까지는 [[색부호 전쟁 계획|영국을 주적으로 간주하고 대비를 했다.]]] 또 다른 열강 [[독일 제국]]이 급부상하는 바람에 당장 유럽에서 패권 경쟁을 벌이느라 바빠 지원을 얻으면 얻었지 미국을 견제할 상황이 아니었다. 대영제국은 현대 [[문명]]의 형성에 있어, 단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나라이다. 대영제국은 '''[[영어]], [[의회민주주의]], [[자본주의]], [[시간대]], [[산업 혁명]], [[정장]]''' 등등 수없이 많은 오늘날의 '''인류의 보편 문화'''를 만들어 놓은 엄청난 문화력과 산업력을 가졌고, 또 그것을 실현 가능하게 했던 실행력과 국력을 가졌다. 당시 대영제국이 건드리지 않은 국가가 거의 없었기에, 현대의 보편 문명을 전세계에 전파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 세계의 여러 방면의 표준이 영국식이 된 것도 바로 대영제국의 영향력 때문이다. 당장 이들의 [[언어]]인 [[영어]]가 현재 [[링구아 프랑카|전 세계 공통어]] 노릇을 하고 있으며, 세계의 [[시간 체계]]는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원점으로 [[협정 세계시|설정]]되어 있다. 이들의 복식인 [[양복]]이 전세계의 정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산업, 사상, 정치, 군사 등등 '''현대문명의 기준이 된 것들 중 상당수가 대영제국에서 만들어져 확산되었다'''. 그나마 영향이 적다고도 할 수 있는 음식 분야에서마저도, [[커리]]가 지구 반바퀴를 돌아 [[카레]]로 변하게 하거나 [[차]] 문화를 세계적으로 퍼트리는 등, 이들이 영향을 미치지 않은 영역은 하나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영제국이 직접 건드리지 않은 국가들도 결국 영국의 영향을 받은 다른 국가들과 교류를 하거나 침략을 당했기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으니 가히 전세계가 대영제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봐야 한다. 반면에 부정적인 영향도 있었는데, 특히 [[서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분쟁에 꽤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사례만 봐도 [[팔레스타인]] 문제, [[예멘]] 내 남북 갈등, [[이집트]]-[[수단 공화국|수단]] 국경분쟁([[비르타윌]] 문서 참고), [[로힝야족]] 및 카렌, 카친족 분리독립 문제, [[과테말라]]-[[벨리즈]] 영토 분쟁 등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농담삼아 [[혐성국|현대 세계의 분쟁의 원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십중팔구 영국과 연결된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나올 정도다. 현재는 [[영연방]]이라는 회원국 간 외교 기구로 바뀌었다. 영연방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연합왕국, United Kingdom)과 [[자치령]](Dominion)[* 자치령들은 식민지처럼 속령이기는 하지만 본국인 영국 정부를 본따 자신들만의 자치 정부를 갖추고 내정에는 간섭을 받지 않았다. [[캐나다]]가 최초의 자치령이었다.] 정부 간 연합 조직으로서 출범했다. 본래 대영제국(British Empire)은 본토인 영국(연합왕국)이 다수의 자치령, 식민지 등을 거느리는 형태였지만, 1차 대전 때 영국을 도와 피흘려 싸운 자치령들이 그 전보다 많은 권한을 달라고 요구, 영국 정부가 1931년에 [[웨스트민스터 헌장]]으로 그 요구를 수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치령들이 외교권, 군사권까지 자체적으로 가지게 돼 사실상 독립국[* 1차 대전 때는 자치령들이 독자적인 외교, 군사권이 없었기 때문에 영국과 별도의 선전포고를 하지 않고 참전했다. 하지만 2차 대전 때는 자치령들이 이미 독립국과 마찬가지로 외교와 군사권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과 별도로 선전포고를 하고 참전했다.]이 되었는데(물론 일부 권한은 예외적으로 영국이 계속 가지고 있기도 했다[* 예를 들면 캐나다 헌법과 호주 헌법, 뉴질랜드 헌법은 1980년대까지 영국 의회에서 개정 권한이 있었고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에서는 스스로 개정할 수 없었다. 이론상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가 헌법을 고치고 싶다면 영국 정부에다가 이러저러하게 고쳐달라고 요청해서 협의해야 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 권한이 캐나다 의회와 호주 의회, 뉴질랜드 의회로 완전히 넘어왔다.]), 이들이 완전히 남남이 되는 건 아니었으므로 영국과 자치령들의 입장을 조율하기 위한 조직으로서 영연방을 창설하게 되었다. 물론 대영제국 시절 식민지였던 이집트, 수단, 짐바브웨 같은 국가들은 일부 빠지고 타국 식민지이던 [[모잠비크]], [[카메룬]](다수지역) 등이 영연방으로 들어오며 구성국과 그 형태는 사뭇 달라졌다. 자세한 것은 [[영연방]] 문서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