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제국 (문단 편집) === [[3.1 운동]] 이후 === >[[순종(대한제국)|융희 황제]]가 삼보(영토, 인민, 주권)를 포기한 [[경술국치|경술년(1910) 8월 29일]]은 즉 [[국민|우리 동지]]가 삼보를 계승한 8월 29일이니, 그 동안에 한순간도 숨을 멈춘 적이 없음이라. 우리 동지는 완전한 상속자니 저 황제권 소멸의 때가 곧 [[공화주의|민권]] 발생의 때요, 구한국의 마지막 날은 즉 신한국 최초의 날이니 (하략) >---- >『1917년 [[신한청년당|대동단결선언]]』[* 1917년 7월 [[신규식]], [[박은식]], [[신채호]], [[조소앙]], [[신석우]], [[박용만(1881)|박용만]], [[한진교]] 등 14명의 명의로 발표된 선언문이다.] 경술국치 9년 뒤인 [[1919년]] [[3월 1일]]에 [[고종]]의 죽음과 [[민족자결주의]]의 확산으로 한반도의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3.1 운동]]이 한반도의 전역에서 발생하고, 이를 계기로 대한제국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표방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창립하게 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시정부]]를 창립하는 과정에서 국호에 대하여 의견이 둘로 나뉘었다. 신석우는 '대한민국'을 주장했는데 [[여운형]] 등은 망한 국호를 다시 쓰기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대한이 아닌 '[[조선]]'[*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조선인민공화국]]을 지지했다.]을 주장했다. 그러자 신석우는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해 보자."라고 했고, 이 말에 다들 찬성하며 만장일치로(혹은 다수결의 투표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헌법/역사#s-3.1|임시 헌장]](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본법)에서는 대한제국의 황족에 대하여 우대를 강조하는 한편으로, [[대한민국 헌법/역사#s-3.3|임시 헌법]]에서 《대한민국의 영토=대한제국의 판도》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대한민국이 대한제국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선언했다. 대한제국 멸망 이후에도 대한이란 국명은 남아서 새로운 국호([[대한민국]])의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는 [[대한민국/국명|대한제국의 의미를 찾을 수가 있다.]] 대한제국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이란 국호도 없었을 확률이 매우 높고, 북한과 남한에 대하여 지금도 '[[북조선]]'이라고 호칭하거나 '[[남조선]]'이라고 호칭하면서 지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북한의 국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기도 하고. 그 밖에도 [[한국민주당]]은 '''고려공화국'''을 지지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