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미티아누스 (문단 편집) ==== 전쟁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64px-Agricola.Campaigns.78.84.jpg|width=300]]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10px-Agricola.Campaigns.80.84.jpg|width=420]] || || 아그리콜라 원정 칼레도니아의 육상 해상의 진출로를 표하고 있다. || 마찬가지로 진출로와 요새를 말하고 있다. ||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는 즉위 전부터 수많은 전투경험과 군사적 업적을 가진 황제였다. 그러나 도미티아누스는 즉위 전부터 치세 내내 유독 군사적 업적이 없었고, 군무경험조차 부족했다. 따라서 스스로 임페라토르이자 프린켑스로서의 책무를 중요시 여긴 도미티아누스는 즉위 직후부터 군대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황실 예산의 많은 부분에 꾸준히 국방비를 측정했다. 그리고 아우구스투스 시대 이후 두 번째로 로마군의 임금 인상을 확정해 이를 실행했다. 그 결과, 국방비의 대부분은 병사들의 연봉 인상과 복지 향상에 책정되어 집행됐다. 그는 즉위 직후부터 게르마니아 일대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 결과, 그는 83년 게르만족 분파 중 하나인 차타족과의 전투 승리를 기념한 정식 개선식을 로마에서 거행했고, 원로원으로부터 '게르마니쿠스'(게르마니아를 정복한 자)라는 존칭을 받았다. 하지만 이 존칭은 원로원이 자발적으로 선사한 존칭이 아니라 황제가 스스로 원해서 얻어낸 칭호였고, 도미티아누스는 전쟁터에서 로마군을 이끌고 원정에 제대로 참전하지 않았음에도 개선장군이 된 이유 때문에 존칭을 받은 모양새가 떨어졌다고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원로원에서는 즉위 직후부터 아니꼬웠던 도미티아누스가 반강제식으로 얻어낸 이 칭호를 자랑스러워 한 것을 놓고 쓴웃음을 지었다. 도미티아누스의 치세에는 명장 [[그나이우스 율리우스 아그리콜라|아그리콜라]]가 활약했다. 아그라콜라는 [[브리타니아]]에 파견되어 히베르니아([[아일랜드]])까지 탐험과 토벌전을 나가 이름을 남기고 [[칼레도니아]]([[스코틀랜드]])를 합병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아그리콜라의 칼레도니아 침공]]) 그러나 때마침 멀리 떨어진 본국의 도나우 강 지역에서 여러 군단과 군사를 잃어, 85년 로마로의 귀환을 명령받아 합병을 앞두고 정벌 도중 그간 수년간의 고생길이 무색하게 빈손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85년, 도나우 강 북쪽의 [[다키아]]족이 로마로 쳐들어오자 도미티아누스는 다키아족과 전쟁을 벌여 우여곡절 끝에 88년 다키아족을 무찌르는 데 성공했다. 이듬해(89)에는 고지 게르마니아군 사령관 [[루키우스 안토니우스 사투르니누스]]가 반란을 일으켰지만 진압되었고, 이로 인해 후의 황제가 되는 [[트라야누스]]가 등장하게 된다. 이 반란의 경우 사투르니누스가 죽기 전 증거를 소각하는 바람에 증명되지는 못했으나, 밀고자를 대거 고용하고 재무관직에 종신 취임하면서 원로원 의원들을 숙청하던 도미티아누스에 대해 불만을 품은 원로원 반대파들이 뒤에서 사주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로 인해 원로원과 도미티아누스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대부분의 로마인들이 다키아를 완전 섬멸할 것으로 기대한 것과는 달리 도미티아누스는 다키아의 [[데케발루스]] 왕과 강화를 체결하여 로마인들을 실망시켰다. 특히 로마인들은 포로가 된 병사들을 돈으로 구해낸 것에 분통을 터트렸다. 물론 도미티아누스에게도 이유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키아와 싸우는 사이에 도나우 강 유역에 거주하던 야만족들이 로마로 쳐들어올 조짐을 보였기 때문에, 다키아와 다른 야만족들과 동시에 전쟁을 치루기는 무리라고 판단한 도미티아누스는 일단 다키아와 강화를 맺기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키아와의 강화는 도미티아누스에 대해 결정적으로 민심이 떠나는 계기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