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돌격소총 (문단 편집) == 역사 == [[무연화약]]이 등장하면서 기술적으로 [[반자동 소총]]을 제작할 여지가 생기게 된다. 그러나 총기회사들은 당시 기술로는 군용 대형탄환으로 반자동소총을 만들기 어려워했다. 회전노리쇠와 틸팅볼트 등의 기술이 등장하기 이전이라 반동이용식과 단순 블로우백 정도의 기술밖에 없었기 때문이였는데, 결국 최초의 반자동 소총들은 [[.22]] 림파이어의 소형탄을 사용한 단순 블로우백의 호신용 정도라 군에서는 관심이없었다. 이후 [[존 브라우닝]]이 롱 리코일 방식의 반동이용식을 선보였지만 역시 대형탄을 사용하기에는 [[쇼샤|신뢰성]]이 부족했지만 중간탄을 사용해 민간에서 대박을 치게된다. 그러나 여전히 군은 중간탄을 거부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1차대전의 전후 보고서[* 1차대전 주요 국가들은 대부분 이 결과에 도달했으며 가장 적절한 탄은 6~7mm 중간탄이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이는 한참후인 현대 2020년대에 들어서야 미군이 채용을 고려하고 있다.]에서도 대형탄은 과하다는 결과가 나왔어도 거부하는 군[* 더글라스 맥아더와 M1 개런드의 일화가 유명하다.]과 로비하는 총기 개발회사[* 특히 자신들이 생산하는 탄약을 채용하도록]들의 신경전이 2차대전 초반까지 계속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미군이 채용한 M1 카빈도 '''비전투 요원용'''이라는 단서가 붙었다. 그러나 '''전투 요원용'''인 M1 개런드보다 더 많이 생산되었고 무기 선택권이 있는 공수부대나 해병대 등의 '''전투요원'''들이 줄기차게 써먹으면서 효율성은 입증이 되었는데도 고집을 부려 전투소총이라는 분야를 등장시키게 된다.] [[자동화기]]의 중요성은 기관총이 등장한 이래 세계 모든 군대에서 인식하고 있었고, 보병들이 주력으로 휴대 하기에는 너무 크고 아름다운 [[기관총]]을 대신하여 [[기관단총]][* 그래서 '''Sub'''machingun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이 등장하였으나, 기관단총은 권총탄을 쓰기에 사거리와 화력에 있어 많은 제약이 있는 문제가 있었다. 따라서, 그냥 무식하게 큰 대구경 소총을 좀 줄여서 적당한 자동화기로 만들어 쓰자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있었고, "중간 크기의 자동화된 소총"들이 이미 [[제1차 세계 대전]] 즈즘에 등장한 바가 있다. [[러시아 제국]]에서는 6.5mm 아리사카탄을 사용하는 [[표도로프 자동소총]][* ~~러시아 다운~~ 재정적 한계로 인해 양산은 거의 되지 못하였다. 이후 [[SVT-40|SVT-38/40]] 개발에 영향을 주긴 한다.]을 1차 대전 중 개발한 바가 있고, 프랑스의 [[리베롤 1918]]의 경우에는 중간탄 사용, 연사/단발 조정간 채용, 분리 가능한 상자형 탄창을 갖춰, 돌격소총의 요소를 완전히 갖춘 화기였다.[* 이 소총의 경우 현대 기준으로도 (구경이 좀 큰것만 빼면) 돌격소총에 매우 부합하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도저히 쓸 수 없는 수준의 빈약한 신뢰성 때문에 실전에서 사용하기엔 부적합 했다. 제대로 개선해서 투입되었다면 StG44의 자리를 빼앗었을지도 모를이지만, 400m라는, 돌격소총으로써도 영 부족한 실효 사거리는 당대 전장에는 매우 부적합 했기에, 결국 리베롤 1918이 제대로 개선되어 실전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이게 1918년이 아니라 최소한 전간기에 등장한 화기였다면 평이 확 달라젔을 것이다.] 이외에도 (반)자동사격이 가능한 소총을 만들면서 반동 억제 및 신뢰성을 위해 조금 더 약한 탄약을 사용하려는 시도는 많이 있었으며, 미국의 [[윈체스터 1907 SL|윈체스터 모델 1907]]이나 [[레밍턴 모델 8]], [[윈체스터 버튼 1917|모델 1917]], 이탈리아의 [[https://guns.fandom.com/wiki/Terni_Model_1921|M1921 MAF]], 스위스의 [[https://en.topwar.ru/90348-avtomaticheskiy-karabin-wf-m1921-shveycariya.html|MP. 1920/1921]], 덴마크의 [[https://www.historicalfirearms.info/post/144775866619|Weibel]], 체코의 [[https://guns.fandom.com/wiki/ZK_412|ZK-412]] 등은 AK 돌격소총이 사용하는 7.62x39mm와 비슷한 급수의 탄약을 채택해 현대적인 돌격소총의 개념에 근접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은 모든 보병을 자동 소총으로 기본 무장 시키려는 생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당시 교리상, 대체로 소총의 유효사거리가 400 ~ 600m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여겨젔고, 가능하다면 1km나 그 이상에서도 명중과 살상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 요구 되었기에, 중소 구경 탄약을 이용하는 소총 개발은 상당히 꺼려지는 일이었다. (실제로 참호전으로 대표되는 장거리 교전이 대부분이었던 당시 전장 상황에서는 중거리 화기 사용에 많은 애로사항이 있었다.)[* 그런데, 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독일에서 이미 기존의 대구경 소총이 매우 비실용적이라는 평가를 내린 바가 있다. 이 때문에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 이미 기존 소총탄에서 탈피한 신규 규격으로 소총을 만들 것을 고려했는데, 전간기의 혼란한 정세 탓에 어영부영 백지화 되어버렸다. 결국 이리저리 타협한 끝에 '''그냥 (비교적) 가벼운 기관총을 왕창 만들어 뿌리자!'''는 결론으로 이어지게 되고, 이것이 MG32와 MG42가 되었다.] 게다가, 당시의 공업 기술력으론 제대로 된 신뢰성을 갖춘 중소구경 자동화기를 만든다는 것도 쉽지 않았고 기존 총탄의 인프라가 쫙 깔려있었다. (어쨌든 보병의 자동화기 무장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제정신인 군대면 다 뼈저리게 아는 문제였기 때문에, 보병에게 자동화기를 최대한 챙겨주려는 노력이 계속 되었고, 그 대표주자라 할만한 것이 [[M1918 브라우닝|BAR]]이다.) 결국 "아예 모든 보병이 기본적으로 휴대하는 주력 자동소총"이라는 개념은 2차 세계대전 후반부에 가서야 등장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