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이베리아 (문단 편집) == 전쟁 범죄에 대한 처벌 부재 == 라이베리아 내전이 끝나고 과도기 정부가 들어설 동안 라이베리아에서는 1979년 1월부터 2003년 10월 14일까지 라이베리아에서 일어난 전쟁범죄를 보고해 '국가 평화, 안보, 통합 및 화해를 촉진'하자는 목적으로 2005년 5월에 진실화해위원회(TRC)가 세워지고 2009년 7월 1일에 2권에 총합 491페이지 가량의 최종 보고서가 발표되었으나 처벌을 받은 사람은 '''전혀 없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범죄 조사 임무 정도만 부여받았고, 정부로부터 적절한 자금도 지원받지 못한 데다가 직원의 질적 수준과 인프라도 열악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집단살해 등 국제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헤이그의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재판소가 창설된 2002년 이후 사건에 대해서만 관할권을 갖고 있다.] 그리고 TRC는 내전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만행 재발 방지를 위한 개혁, 새로운 전범들에 대한 추가 조사와 몇몇 인사들에 대한 사면[* 지극히 당연하지만, TRC는 전쟁 개전이나 반인륜 범죄에 직접적, 적극적으로 가담한 자들은 전혀 사면 대상으로 삼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들은 라이베리아 사법 제도 내에서 정식 재판을 거쳐 처벌할 것을 요구했고, 사면 요구 대상은 전쟁 참여 당시 18살 미만이었거나 반인도적 범죄에 가담하지 않는 등 어느 정도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는 사람들 정도로만 한정되어 있었다.]을 제시하고, 실제로도 라이베리아 정부가 따라야 할 개혁 권고안을 정확히 47건이나 제출하긴 했지만, 이 권고안들은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을 못했을 뿐더러 오히려 '이전의 전쟁 분파와 연루되면 30년 동안 공직을 맡거나, 임명되거나, 선출되는 것이 금지된다'는 내용으로 50명의 인사가 담긴 블랙리스트에는 당시 현직 대통령이던 [[엘런 존슨 설리프]]도 있었기에 큰 논란을 빚었다. 이 논란이 터지자 설리프 대통령은 2009년 7월 26일에 '테일러의 의도의 진정한 본질이 알려졌을 때 그에 대해 나보다 더 열렬히 비판한 사람과 강력한 반대자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2011년]] 1월에 라이베리아 대법원은 TRC 보고서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 중 한 명에 대한 재판에서 '다수의 개인이 공직에 오르는 것을 금지하는 TRC의 권고는 열거된 개인의 적법한 절차에 대한 권리를 위헌적으로 위반한 것이므로 TRC가 제안한 금지 조치를 정부가 시행하는 것은 위헌이다.'라는 판결을 내리며 TRC의 권고 사항 중 상당 부분이 취소되었고, 이렇게 나이지리아 내전에서 반인륜 범죄를 지원하거나 아예 직접적으로 가담한 사람들은 과장 전혀 안 보태고 모든 만행의 총책임자인 [[찰스 테일러(정치인)|찰스 테일러]] 전 대통령 1명을 제외하면 '''전부''' 합당한 처벌을 받기는 커녕 라이베리아에서 멀쩡히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테일러조차 라이베리아 내전에서의 범죄에 대한 책임이 아닌 [[시에라리온]] 내전에서의 범죄에 대한 책임으로 처벌을 받은 것이고, 이 때문에 라이베리아의 TRC는 테일러에 대해 전혀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 심지어 라이베리아에서는 [[르완다 내전|르완다]], [[킬링필드|캄보디아]], [[유고슬라비아 내전|유고]][[보스니아 전쟁|슬라비아]]에서와 달리 국제재판소가 설립되지도 않았는데, 그 이유는 만약 처벌을 한다면 '''모든 사람이 살인으로 기소받을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르완다 내전은 최소로 쳐도 인구의 약 '''3%'''가 살인에 가담한 참극이였다. 그리고 킬링필드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라이베리아만큼은 아니었지만 굉장히 미진했는데, [[크메르 루주]]에 세뇌되어 타의로 학살에 가담하게 된 [[소년병]] 등 학살에 가담한 가해자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훈 센]] 정부도 학살에 가담한 전원을 처벌하는 것은 완전히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국제제판에 회부한 사람도 학살의 수뇌부격인 5명밖에 없었으며(이들 중 2명은 재판 중에 사망해 확실히 처벌을 받은 사람은 3명밖에 없었다), 심지어 최고 책임자인 [[폴 포트]]는 1998년에 이미 사망해서 재판에 부를 수도 없었다.] 결국 이 때문에 라이베리아에서는 다른 나라였으면 벌써 [[사형]]이 되고도 남았을 극악무도한 전범들이 멀쩡히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후술하겠지만, 라이베리아에서 지금도 멀쩡하게 살아가는 전범들의 전적들을 보면 문자 그대로 [[노덕술]], [[하판락]], [[이근안]] 같은 극악무도한 [[고문기술자]]들조차 '''애들 장난 수준으로 만들 정도로''' 극악무도한 만행들을 저지른 자들이다.][* 다만 라이베리아에서의 전범 방치는 라이베리아 정부가 의도한 측면도 있는데, 어지간해선 후술할 밀턴 블라히와 같은 식으로 간접적으로 죄를 드러내 사회적 응징을 받게 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이베리아 내전 시기의 주요 군벌 지도자로는 [[프린스 존슨|프린스 요미 존슨]](Prince Yormie Johnson, 1952~)이 있었는데, 프린스 존슨은 찰스 테일러의 라이베리아 국민애국전선(NPFL)의 최고 훈련 책임자로 일하며 라이베리아 내전을 일으킨 주범인 데다가 라이베리아 독립국민애국전선(INPFL)[* 존슨이 1990년 2월에 테일러가 자신을 반역죄로 처형하려고 한 것을 알고는 NPFL을 자진 탈퇴하며 세운 단체다.]을 이끌며 자신을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민간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고 특히 부하들에게 [[새뮤얼 케니언 도]] 전 대통령을 잔인하게 처형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악명이 높은, 사실상 1차 라이베리아 내전에 있어서 찰스 테일러에 버금가는 2인자나 다를 바 없는 인물이었다.[* 심지어 존슨은 케니언 도를 처형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면서 불쾌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커녕 오히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맥주]]를 홀짝이며 마시기도 했다.'''] 존슨은 케니언 도 전 대통령의 친구와 군인으로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부하들조차 '적보다 더 빠른 속도로' 죽인 것으로 유명했고, [[미국]]의 [[타이어]] 제조사 파이어스톤(Firestone)의 경영진들을 납치, 고문하기도 했으며, 특히 [[미국]] 출신 [[크리슈나]] 신봉자로 라이베리아로 봉사를 떠난 흘라디니 데비 다시(Hladini devi dasi, 1949~1990)가 존슨에게 사람들을 죽이지 말라고 간청하는 편지를 보내자, 이에 분개한 존슨은 그녀를 살해하도록 지시하여 1990년 9월 13일에 그녀와 그녀의 신자 5명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참고로 이 만행은 전직 대통령을 잔혹하게 살해한 지 불과 '''나흘''' 뒤에 벌어졌다.] [[https://www.iskconbangalore.co.in/hladini-devi-the-brave-fearless-daughter-of-srila-prabhupada/|#]] 그러나 프린스 존슨은 죗값을 제대로 치르기는 커녕 오히려 1997년에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기독교인 [[복음주의]] 설교자로 변신했고,[* 사실 존슨이 뜬금없이 나이지리아에서 발견되었던 이유는 존슨의 추종자들이 그를 라이베리아 대통령으로 추대하려고 했으나, 테일러파들과 충돌하면서 존슨이 1992년에 [[나이지리아]]로 도피했기 때문이다.] 설교자로서의 평판은 좋았는지 설교자로서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하며, 도의 가족과 화해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기를 '거듭난'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내전 종전 후 2005년에는 당당하게 고국으로 돌아온 후 동년에 있던 선거에서 자신의 고향이자 지역 기반인 님바 지역에서 상원의원으로 출마하고는 당당히 당선되었다. 이후 존슨은 2006년부터 님바 지역의 상원의석에 앉고는 2023년 현재까지 무려 17년 동안 '''현역''' 상원의원 자리에 있으며, 상원 국방위원회 위원장도 역임한 적도 있고 2011년에는 문자 그대로 '''라이베리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까지 했다.''' 결과는 11.6%의 득표율로 3위를 기록했다.[* 참고로 이는 한국으로 치면 '''[[노덕술]]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3위를 기록한 꼴 그 이상이다.(!)''' 참고로 해방 후 혼란기와 [[반민특위]] 해산으로 [[일제강점기]]에 자행한, [[독립운동가]] 고문이라는 반인륜 범죄에 완전한 면죄부를 부여받고 '반공투사'로 신분을 세탁한 뒤 육군 [[중령]]에 올라간 노덕술조차 밀수에 가담한 것이 발각되어 파면된 후 [[울산광역시|고향]]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뒤에서 3위로 낙선했고, 이후 불법 [[흥신소]]를 운영하면서 [[검사]]를 미행하다가 구속되는 굴욕을 당하며 이전의 영광(?)을 완전히 잃은 채 쓸쓸히 사망했다.] 특히 그는 2010년 9월 [[BBC]]와의 인터뷰에서 "누구도 내가 특정인을 고문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파렴치한 망언을 날렸으며, 자신은 압제적인 체제에 맞서 국민을 해방시키려 싸웠다는 점을 강조하고 다만 내전 기간 주민들이 고통을 입었다면 그에 대해 사과한다고 말하며 자신의 만행을 남이 한 것처럼 말하며 자기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한때 수백 명의 민간인을 밧줄로 묶어놓은 채 강물에 빠뜨려 익사시킨 전적이 있는 한 장성도 한때 버젓이 라이베리아의 상원의원을 지낸 적이 있다고 전해진다. [[파일:external/img.khan.co.kr/AR_65.jpg]] 라이베리아 내전 당시의 반군 지도자 조슈아 밀턴 블라히(Joshua Milton Blahyi, 1971~). 심지어 라이베리아에서 손꼽히는 최악의 학살자가 [[목사]]로 변신하기도 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라이베리아 내전 당시 반군 지도자로 자신이 TRC 앞에서 증언한 것으로만 '''최소 2만 명''' 이상을 학살한 조슈아 밀턴 블라히인데, 그는 9살~10대 초반의 [[소년병]]들과 함께 신발을 제외한 옷을 다 벗은 채 적에게 돌격을 하기도 해서 이른바 '''"엉덩이 깐 장군(general butt naked)"'''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블라히는 라이베리아 내전이 끝날 무렵이었던 1996년에 자신의 손에 묻은 어린아이의 피를 보고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에게 '노예가 되지 말라'는 환상을 봤다고 주장하며 이 '경험' 이후 [[기독교]]로 개종하고 복음주의 설교자가 되었다. 참고로 밀턴 블라히는 자신이 목사가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 "부대를 이끌고 전투에 나서기 전에 우리는 보통 술과 [[마약]]에 만취가 되어 동네 십대 아이를 희생물로 바치고 이 아이의 피를 들이킨 다음 완전 나체가 되어 형형색색의 가발을 뒤집어쓰고[* 실제로 그의 부하 중 일부는 여성복을 입은 채 전투에 나섰다고 한다.] 민간인들로부터 탈취한 핸드백을 들고 다녔다. 우린 길에서 맞닥뜨리는 누구든지 살육했고 이들의 머리를 잘라내어 축구공으로 썼다. 우린 완전히 (술과 마약에) 취해서 벌거벗고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고 살의만 등등했었다. 우리는 수백 명을 살해했다. 사실 몇 명을 죽였는지 그걸 어떻게 알 수 있겠나? 그러다가 2004년 6월에 [[브루스 올마이티|하나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하나님은 내가 영웅이 아니라고 말씀하셨고, 그 후부터 나는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는 목사로 활동하며 과거 피해자들을 찾아 용서를 구하고 있는데[* 후술할 기사에 따르면 그에게 피해를 입은 76명 중 19명이 그를 용서했다고 한다. 그리고 블라히는 선교하러 갈 때 피해자의 유족들이 그를 거부하는 것에 대해 "기분이 너무 안 좋아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저는 과거에 사탄의 세력에 사로잡혔기에 (과거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 밑에서 학살을 자행한 부하들과 함께 뻔뻔하게도 [[가나]]에 있는 라이베리아 난민들을 찾아가 [[사역자]]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2007년에는 전직 군인들과 거리를 부랑하는 아이들, 마약 중독자들이 소년병과 마약 중독자 농업, 건설 분야에서 일하며 사회에 재통합되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하는 [[비정부기구]]인 폭력에 저항하는 여정(Journeys Against Violence)을 설립하고는 공개적으로 "프린스 존슨 같은 전직 군벌들의 개별적인 역할과 그들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재판을 받아야 한다. 전범 용의자를 기소하기 위해 라이베리아에 전범 법원을 설립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자신이 어떠한 전쟁 범죄에도 가담한 적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후 블라히는 여성 목사와 결혼해 4명의 자식을 낳고 평온히 살고 있으며, 블라히의 어머니는 옛 소년병들을 위해 요리를 하는 아들을 보고 '착한 사람'이라 하기도 했다. 결국 이런 상상을 초월하는 망언들을 일삼으며 자신을 정당화하다가 지난 2008년 1월 15일, 라이베리아 수도 몬로비아에서는 내전 당시 군벌들의 범죄행위를 조사하기 위한 진실화해위원회 청문회가 열렸는데, 블라히는 신발부터 바지, 셔츠까지 모두 하얗게 차려입은 채 청문회에 출석했다. 이 청문회에 증거사진들이 제출되었는데 블라히가 이끌던 ‘벌거벗은 엉덩이 연대’의 소년병들이 사람의 심장을 먹고 있는 모습, 거리 교차로를 사람의 뼈로 장식하는 모습, 처녀 소녀들을 윤간하고 있는 모습들이 찍혀 있었다. 블라히는 자신의 나신이 탄환을 보호해준다고 믿어서 소년병들도 신발만 신은 나체로 전투에 임하게 했으며, 학살 후에는 심지어 그의 부대가 문자 그대로 악마만도 못한 짓을 저질렀다는[*열람주의 블라히는 어린아이의 신선한 피가 악마를 만족시킬 수 있다고 믿었기에 전투 전에 어린이들을 산 제물로 바치면서 그 아이의 피를 마시기도 했고, 사람의 참수된 머리를 축구공으로 쓰기도 한 데다가 심지어는 전투 전에 '''죄 없는 어린이를 살해하고는 [[식인|그 아이의 심장을(!!!) 다른 소년병들과 함께 나눠 먹었다고 한다.]]'''] 잔학행위가 드러나기도 했지만 그는 현재까지도 목회자로 살아가고 있다. 2013년 시점에서의 밀턴 블라히를 다룬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311051749291&code=117|이 기사]]와 2021년에 라이베리아 토크쇼에 출연해 '내가 아이를 낳지 못하게 만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부모를 빼앗긴 아이들 때문에 거의 매번 후회하며 산다'고 말했다는 것을 보면 농담이 아니고 그야말로 그 태연함에 소름이 끼칠 정도다. 이렇게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이 전혀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사회에 득시글거림에도 라이베리아 국민들 사이에서는 과거의 비극을 들춰내지 말고 그냥 묻어두자는 여론이 더 강하다고 한다. 심지어 헤이그 재판을 받고 있을 당시의 인물들 가운데 우두머리 격인 [[찰스 테일러]] 대통령을 지지하는 간판이 몬로비아 거리 곳곳에 걸려 있고 심지어는 '테일러를 사랑하는 모임'이 운영하는 웹사이트까지 만들어졌다. 사실 이 정도의 혼란상이라면 우리가 소위 문명사회에서 배우고 지켜오는 도덕률 자체가 의미를 잃게 되는 [[아노미]]현상이 벌어질 법도 하다. 이를테면 문명사회에서라면 사람 한명을 죽여도 죄책감을 크게 느끼고 자수하거나 [[PTSD]]에 시달리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는 애들도 사람을 킥킥대면서 죽이는 것이다. 또한 테일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라이베리아에서 전범 재판을 해야 한다면 라이베리아 국민 모두가 피고석에 앉아 있어야 한다.", "우리들 중에 손에 피 묻히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냐?"라는 궤변을 펼치면서 전범 재판에 반대를 하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살기 위해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으로 하는 행위와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하는 행위는 급이 다르다. 나아가서 실제로 전쟁터에서 [[강간]] [[살해]]를 저지른 일반 병사들은 정당방위나 긴급피난과는 관계없는 흉악범죄를 저지른 것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범]]들과 급이 같은 것은 아니다.] 충격적인 사실은 라이베리아의 많은 가정에서는 강간을 당한 딸을 갖고 있는 동시에 군대에 끌려나가 남의 집 딸을 강간 살해한 아들을 두고 있는 집안이 숱하게 많이 있는 까닭이 있을 정도로 처벌 받을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쉽게 범죄자 처벌을 주장할 수 없는 난감한 처지에 있긴 하다. 그렇게 보면 [[여성]]과 [[어린이]]들이 가장 두드러지는, 진정한 피해자인 참극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차피 가해자 본인이 평생 고통받을 테니 법적으로는 가능한 용서하고 잊자는 모양이다. 나아가서 라이베리아 역시 [[칠레]] 같은 다른 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의 확산은커녕 자국의 이익만 따져가며 필요에 따라 독재자나 전범들도 지원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1973년 칠레 쿠데타]] 당시 미국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지원했다. 물론 그렇다고 미국 정치인들이 하급 전범으로라도 처벌받는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라이베리아의 반군 사령관 출신 인사가 이례적으로 스위스에서 전쟁 범죄 혐의로 기소되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4&oid=001&aid=0010723356|#]] 그리고 스위스 법원측은 반군 사령관 출신 인사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001&aid=0012470824|#]]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