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나슬루 (문단 편집) == 등정 역사 == [[일본]] 등산가 이마니시 토시오와 [[네팔]]인 걀젠 노르부가 최초로 1956년 정상등정에 성공하였다. 8,000m급 14좌 중 [[일본]] 국적의 원정대가 세계 초등을 이룩한 유일한 산이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onquest_of_Manaslu.jpg|width=300]] 당시 [[일본]]은 축제 분위기가 되어 위와 같은 기념우표도 발행하기도 했다. "영국인이 에베레스트가 영국의 산이라고 생각하듯이 [[일본인]]은 마나슬루를 일본의 산으로 생각한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과는 악연이 있는 산이다. 한국은 1970년대 이전 여러 차례 등정에 시도하였으나[* 10명이 사망한 설악산 죽음의 계곡 눈사태 사고가 히말라야 원정을 위한 훈련 중 사고다. 마지막 목표는 당연히 에베레스트였지만, 1차 목표가 입산 허가가 쉬운 마나슬루였다.] 1971년 마나슬루 원정대의 김기섭 대원이 추락사하면서 최초의 원정대 사고로 기록되었다. 이듬해 1972년에 등반대원 5명과 현지 셰르파 10명이 눈사태에 의해 약 해발 7천미터 지점에서 전원 사망하는 참사를 겪는 등 여러 차례 비극을 겪었다. 72년 1차 원정대 김기섭 시신 수습을 겸한[* 시신은 눈과 얼음에 덮히고 장비와 함께 얼어 붙어 100kg을 넘어가며, 자기 몸 하나도 가누기 힘든 가파르고 추운 고산에서 접근하거나 파내는 것조차 어려운 조난자 시신을 수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등반 장비와 기술이 발전한 2000년대에도 많은 원정대가 조난 시신을 버려두고 온다. 당시에는 그런 사실을 잘 몰랐다.] 2차 원정대에는 김기섭 대원의 형인 김정섭(1차 원정대 등반대장, 2차 원정대 총 대장), 김호섭(2차 원정대 등반대장)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 사고로 김호섭이 사망했다. [* 막내 김예섭도 대원이었으나, 눈사태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1980년에 동국대학교 산악부가 한국 내 초등에 성공했다. [youtube(raFP8igXin0)] [youtube(z7rwgVCsHBQ)]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