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목포시 (문단 편집) == 개요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D37C3F7-C096-45A8-A442-DFEA19D2304C.jpg|width=100%]]}}} || || {{{#fff '''목포 시내 전경 (2022년)[br]{{{-2 가운데가 목포 시가지, 오른쪽이}}} [[남악신도시|{{{#fff '''남악신도시'''}}}]]{{{-2 , 왼쪽은}}} [[영암군|{{{#fff '''영암군'''}}}]] {{{-2 삼호읍(대불 국가산업단지)이다.}}}'''}}} || ---- > '''목포는 항구다.''' > - [[이난영]] 노래 ---- [[전라남도]]의 [[시(행정구역)/대한민국|시]]. [[군산시]], [[여수시]]와 함께 [[전라도]]의 3대 항구 도시 중 하나로 개항하면서 부터 항구 도시로 발전해왔다. [[호남선]]이 끝나고 [[서해안고속도로]]가 시작하는 곳으로 교통의 시발점 역할도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만 해도 [[부산광역시]], [[인천광역시]], [[원산시]]와 함께 '''조선 4대 항구 도시''' 중 하나였고, [[1950년대]] 10만을 훌쩍 넘는 인구 증가(11만)로 한때 '''남한 6대 도시'''였다. 하지만 목포항은 수심이 얕아 대규모 무역항으로 쓰기에 입지가 나빴고, 교통 인프라가 부실해서 목포항은 화물 운송량이 급속도로 줄게 되었다. 그래서 목포항에 의지하던 목포시의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고 목포는 대도시로 성장하지 못했다. 전라남도 서부의 중심도시다. 전라남도의 경제력은 동부(여수, 순천, 광양 등)이 압도적이며 목포는 공업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도 없는 순수 소비도시이니 자체 경제력은 떨어진다. 역내 총생산을 비교해보면 목포시는 45,305억 원이지만 여수 258,706억 원, 순천 61,250억 원, 광양 100,602억 원에 달하며, 2020년 기준 재산세는 목포시는 224억원으로 여수시 507억 원, 순천시 301억 원, 광양시 279억 원에 이어 4번째다. 목포와 가까운 [[영암군]] 삼호읍에 [[현대삼호중공업]]과 대불산단이 있고 [[영암군]]의 전남 내 수출액 비중은 10.4%다. 하지만 전남 동부의 수출비중은 80%를 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따져보든 목포의 경제력은 도무지 동부권과 비교할 수 없는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도청신도시가 서부에 올 수 있었던 게 상대적인 낙후지역이라는 점이 작용한 바가 크고, 소비도시 규모로서는 전남의 다른 도시들보다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작은 도시면적과 그에 따른 높은 인구밀도을 바탕으로 도시 인프라의 구축은 여순광에 비해 훨씬 큰 도시로 보이게 만든다. 마천루[* 전남 내에 완공된 마천루는 5개가 있는데 이 중 2개가 목포에 있으며 [[목포하당 중흥S-클래스 센텀뷰]]는 현재 명실상부 전라도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다. 이런건 인구 20만 초반대의 중소도시에서 나올만한 수준이 아니다.], 대형마트와 아울렛, 영화관 등이 다른 도시에 비하면 많은 편이다. 면적은 [[서울특별시]] [[서초구]]나 [[수원시]] [[권선구]]와 비슷하다. 비수도권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시(행정구역)/대한민국|시]]고, 전국에서는 [[경기도]] [[구리시]], [[과천시]], [[군포시]], [[광명시]], [[오산시]]에 이어서 6번째로 좁은 시다. 목포는 일제강점기 부터 발전해온 도시라서 도시 구획이 잘 되어있다. 대성동과 유달산 아래쪽은 도시구획이 잘 안 돼있지만 일제가 도시구획을 잡고 개발한 목포역 남쪽과 동쪽은 도로들이 사각형 형태로 뻗어있다. 옛날엔 목포역 근처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는데 대부분 도시가 바다를 매립한 곳이다. 하당과 남악도 다 바다를 매립해서 만들어진 동네다. ||사공의 뱃노래 가믈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시 아롱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삼백 년 원한 품은[* 처음에는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삼백련(三栢淵) 원안풍(願安風)은' 으로 바꾸어 부르다가 광복 후 고쳤다.]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노래 깊은 밤 쪼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쩌다 옛 상처가 새로워진다 못 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에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가 이 지역을 소재로 해서 만들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