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군 (문단 편집) ====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 1979년 [[이란 혁명]]으로 [[테헤란]]의 미 [[대사관]] 직원들이 억류당하는 '''이란 대사관 사건'''이 발생하자 미군이 큰 맘 먹고 인질 구출작전을 벌였다. 그러나 [[독수리 발톱 작전|이글 클로 작전]]은 시작부터 각 병과가 죄다 밥숟가락 얹으려고 난리친데다 정치권의 간섭까지 옵션으로 끼면서 심지어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정보도 쓰지 못하도록 간섭을 걸었고 이로인해 애초의 작전계획안은 일찌감치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고 특수작전이 아니라 [[C-130]] 수송기까지 이용하는 정규군급 작전으로 발전해버려 알아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제 발에 걸려 자빠질 단초를 제공했다]]. 이글 클로 작전은 결국 사막의 모래바람에 휘말려 헬기가 추락한데다 철수 중에 C-130의 후류에 휘말린 헬기가 수송기와 충돌하며 애꿏은 인명피해만 내고 대실패, 이란과의 관계 악화를 [[자업자득|알아서 자초한다]]. [[지못미]]. 미국이 이글 클로 작전을 장쾌하게 말아먹는 동안 [[영국군|영국]]은 [[런던]] 이란 대사관 인질사건에 '''[[SAS(특수부대)|SAS]]'''를 투입하여([[님로드 작전]]) 성공, 특수작전에서 주가를 올린다. 물론 이쪽도 레펠링 중 대원이 줄에 감겨 낑낑댄다든지 하는 만만찮은 코미디를 연출했지만.[* 다만 이 두가지 작전은 비교할 만한 대상이 절대 아니다. 영국의 경우는 어디까지나 런던의 주 영국 이란 대사관에서의 인질사건으로 진압성공하든 실패하든 만만의 준비를 가지고 진압준비를 실행할 수 있던 인질작전이고 인질범들이 포위된 상태이니 인질범들이 협박을 위해 연속으로 인질을 처형하지 않는 이상 '''시간은 진압부대에게 유리하다''' 반대로 주 이란 미대사관사건의 경우는 적대화 된 수천km 떨어진 국가의 최중심 수도 그것도 해안 및 미국의 동맹국(가장 가까운 곳이 터키)으로 부터 최소한 수백km이상(최소 4~500km) 떨어진 [[내륙국|내륙]]에서 벌어진 사건에다 시간은 미국의 편이 아니었다. 성급하게 서두르면 정보 및 준비부족으로, 시간이 길어지면 인질의 소재파악이 불가능해지거나 방어자의 준비가 철저해지게 되어 있다. 한마디로 작전 배경부터 난이도는 넘사벽 급이며 님로드 작전의 경우 소탕해야할 [[테러리스트]]는 고작 6명. 인질은 20명 밖에(?) 되지 않았다.(원래 26명이었으나 1명은 공격 전 처형됐고 5명은 석방) 그리고 작전 중에 1명이 추가로 사망하고 1명이 부상당한다. 이글 클로 작전에서 구출해야할 인원은 무려 50여명. 그것도 미 대사관에만 수용되고 있던게 아니라 이란 외무성 등에 분산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헬리콥터와 특수전용으로 개조된 수송기를 이용해서 개인화기로만 무장한 부대가 수백 km를 몰래 들어가서 적의 수도를 기습하여 들쑤시며 마비시킨 다음 정확히 어디어디에 몇명씩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인질을 찾아서 데려온다는 거다. 애초 헬리콥터 고장 및 충돌 사고가 없었어도 성공했으리라 보기 힘들 정도의 고난도다.] 이글 클로 작전의 실패로 [[미국-이란 관계]]는 더욱 악화되고 '''444일간''' 인질들이 억류되는 기록을 수립한다. 베트남 철수 이후 지지리도 운이 안 따라주던 미군으로서는 '''굴욕 크리의 연속'''이었던 시절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