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군/물량 (문단 편집) == [[쇼미더머니]] == [[파일:attachment/미군/물량/미군물량1.jpg]] 전쟁 이후 항공기들을 가득 모아놓은 모습. 잘 보면 저 비행기들은 무려 4발 중폭격기다.[* 사진에서 보이는 기체들은 [[B-17]],[[B-24]] 등이 있는데 이 기체들은 대부분 중폭격기로 분류된다.] [[파일:attachment/미군/물량/미군물량2.jpg]] 경항공모함, 초계함, 수송선 등의 군함들을 잔뜩 [[모스볼#s-2.1|모스볼]] 처리해 놓은 모습. 잘 보면 '''정규항공모함'''도 있다. [[파일:attachment/미군/물량/미군물량3.jpg]]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따라할 수 없는 미국만의 특징인 쇼미더머니가 있다. 강조하거니와 전쟁은 곧 경제력을 과시하는 싸움인데 지구 역사상 최고의 경제력을 기반으로 한 가공할 생산력은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그 어떤 군사적 무기보다 위협적이다. 상기한 수치는 어디까지나 '''당장 필요가 없어서''' 감축시킨 것이지 미국이 위협받거나 혹은 전시체제로 전환한다면 현재 규모의 배 이상으로 전력을 늘릴 수 있으며 퇴역된 기체들이 모인 곳에서 쓸만한 것들을 다시 취역시켜 운용이 가능하다. 이것조차 당장 쓸 수 있는 인력인 예비군의 규모문제로 배로 늘리는거지, 만약 전쟁이 2차 대전마냥 장기화되어 신병훈련으로 규모를 늘린다면 예비물자만으로 4배 이상의 전력구성이 가능하다. 여기서 파생되는 '''보급력''' 또한 빠질 수 없다. [[병참]] 항목에 나와있듯 나폴레옹, 미국 18대 대통령 출신인 율리시스 S. 그랜트 같이 수많은 [[명장]]들은 보급의 중요성을 설파해왔다. [[미군]]의 병참은 이러한 명장들이 들으면 보급에 고민해왔던 자신을 저주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예 차원이 다르다. 자국 병사들은 물론 베트남전에서 한국군 병참까지 지원해주는 것과 같이 동맹군의 병참까지 책임지고, 이걸 넘어서 전쟁으로 기아에 시달리는 민간인들의 민심을 얻기도 했으나 이들에게 식량과 의료 혜택을 주어 작전 지역의 민생 안정까지 도모한다.[* 그렇게 돈질해서 얻은 민심을 제발로 걷어차는 것도 특징. 독일이 전통적으로 군사적 우위를 스탈린그라드 전투처럼 정치적 삽질로 날려버린다면 미국은 돈질해 얻은 민심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다가 역풍을 맞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다.] 그 무지막지함이 치트키를 보는 듯하여 통칭 [[쇼미더머니]]라고 불린다. 다음은 미국이 역사적으로 보여준 보급 사례 몇 가지. * [[남북전쟁]] 당시 미군(북군)의 식사는 베이컨과 햄, 빵, 설탕, 커피, 버터 등이었는데 '''유럽 중산층이 먹는 것보다 좋은 수준'''이었다. 때문에 유럽의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생계를 위해 미군에 입대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당장 1847년에 가장 크게 피해를 입힌 [[아일랜드 대기근]]때문에, 미국으로 이민오는 아일랜드인이 많았는데, 남북전쟁이 터지자 이민자수가 더 늘었다고 한다.]짬밥은 짬밥이라서 북군의 한 장교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아침은 빵, 커피, 베이컨이었고 점심은 커피, 빵, 베이컨이었으며 저녁은 베이컨, 커피, 빵이었다'''라고 적기도 했지만, 유럽의 하층민들은 베이컨조차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했고, 북군 병사들이 메뉴 가지고 투정하고 있을 동안 보급문제와 빈약한 경제력으로 체계가 부족한 남군 병사들은 땅콩으로 식사를 때우거나 '셔츠를 물어뜯어야 했다'고 할 정도로 보급이 매우 열악했다. 남부군이 유일하게 보급이 잘 된 물품은 담배밖에 없었다. 남군은 농업중심의 경제구조임에도 불구하고 대지주들이 목화밭을 포기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 만성적인 물자부족에 시달렸다. 게다가 면화를 물자로 바꾸자니 남부의 경제를 박살내려는 북군의 해상봉쇄가 너무 강력해서 면화가 쌓여있는데도 팔아먹지를 못했다. 참고로 이 때문에 엉뚱하게도 [[이집트]] 면화의 가격이 폭등해서 이집트의 경제가 쑥쑥 성장했다. 물론 남북전쟁이 끝난 뒤에는 다시 남부의 면화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이집트는 망했다. *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군은 [[참호]]에 물이 고이자 발이 젖지 않도록 다먹은 고기통조림 깡통들을 바닥에 잔뜩 도배해버렸다.[* 이 통조림이 스팸이라는 얘기가 퍼져있는데 스팸이 처음 나온 것은 1937년이었으므로, 스팸이 아닌 [[콘비프]] 통조림이었을 것이다.] 당시 영국군이나 프랑스군은 [[참호족]][* 참호+족. trench foot. 습한 진창 속에 너무 오래 있어서 생기는 동상 비슷한 발병이다.] 문제가 워낙 심각한데 해결책이 없어 그저 후방의 민간에 이런 사실이 퍼지지 않도록 전전긍긍하고만 있었던 걸 생각하면 굉장히 비범한 해결법. 당시 영국, 독일, 프랑스군은 총알과 포탄을 만들 황동과 무기 만들 철이 부족해서 전선에서 가능한 한 많은 탄피와 깡통을 수거했다. 심지어는 전투가 끝나고 전장으로 들어가 부서진 총이나 탄피, 철조망 등을 수거해서 [[택시]](당시 프랑스군은 파리의 택시를 군 수송물자로 징발했다)에 넣어 공장으로 바로 옮기는 일을 하는 잡역부가 있었다. 반면 미국원정군은 일단 본토에 금속이 남아도는데다가 이걸 수거해서 본국으로 가져가 재활용하는데 돈이 더 드니 야전 참호에서 고생하는 병사들의 의견을 들어 참호 바닥에 깔도록 한 것이다. 2차 대전 종료 후에는 유럽이나 아시아로 보낸 차량 등을 "구식 군용차 따위 팔리지도 않는데 가져오는 것도 돈 드니까, 그냥 버리자"하며 진짜 멀쩡한 차 수백대를 해변에 갖다 버리기도 했다.[* 이 유기물자들은 종전 후 군축으로 인하여 부품 수급조차 시원치 않았던 터라 극동군 사령부에서 [[오키나와]] 등으로 수거팀(...)을 꾸려 적극 회수했다.] 심지어 현대에도 한국에 짱박아두었던 비축 폭탄 52만톤(...)을 회수해가기는 비싸고 낡은 걸 가져가서 쌓아두어도 쓸모없으니 한국에 팔아치웠다. 물론 그 비축물자에 군침을 흘리고 있던 한국도 어차피 못 가져간다는 약점을 잡고 있으니 하나하나 검사해서 쓸만한 것만 구매하고 쓸 수 없는 건 처리비용을 요구했으며, '쓸만한 것'의 기준을 두고 치열하게 다투었다고. 자세한 내용은 [[한국군 방산무기 수입사]] 문서로. 그외에도 해외에 투입돼서 파손된 물자 중에 회수해서 고치는거보다 본토에서 새로 뽑는게 비용이 덜 드는 물건들은 그냥 버리기도 한다. *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 장군은 1년 전에 마지막으로 지급받은 전투복을 입고 기관총알을 한발 한발 세어가며 연료도 최소한의 기동만 가능한 상황에서 미군과 싸워 승리를 거뒀다. 허나 승리 후 미군이 쓰던 건물을 점검하며 미군의 보급품이 부족한 곳이 한 곳도 없다는 걸 확인했고 심지어는 어느 미군 병사의 배낭에서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병사의 어머니가 '''본토에서 부친''' 초콜릿 케이크 조각을 발견하자 미군과의 전쟁에서 승리의 희망을 잃었다. 사적인 개인물품인 가족이 보낸 케이크까지도 배달해줄 수 있을 정도라는 건 그만큼 보급 역량이 남아돈다는 뜻이니까. 이 케이크 에피소드는 진위여부에 논란이 있지만, 그걸 떠나 미군의 보급 능력을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야기로 꼽히고 있다. 영화 [[아르덴 대공세 #영화 벌지 대전투|《벌지 대전투》]]에서도 독일군 기갑여단장 헤슬러 대령이 상관 콜러 상급대장을 설득하면서 신선한 초콜릿 케이크를 보여준다. [[파일:attachment/미군/물량/리버티쉽1.jpg]] [[파일:attachment/미군/물량/리버티쉽2.jpg]] * 2차 대전 기간 동안 [[배수량]] 1만 톤급 수송함 [[리버티선]][[http://gall.dcinside.com/list.php?id=worldwar2&no=7994&page=527|#]]을 '''2,700척''' 이상 건조했다. 독일 U보트가 미군 수송선을 자꾸 격침시키니까 그럼 격침시키는 것보다 더 많이 만들면 해결된다는 정말로 돈지랄스러운 해결책이었다. 그래서 독일 U보트의 진정한 천적으로 이 리버티선을 꼽기도 한다. 이게 농담이 아닌 것이, 유보트가 전쟁 중 총 1,500만톤의 연합군 상선을 격침시켰는데, 영국과 영연방 그리고 기타 동맹국들이 모두 건조한 배들을 합치면 대략 1,500만톤이 된다. 여기까지 보면 현상 유지지만 문제는 미국은 혼자서 2,500만톤을 건조했다.[* 참고로 저기서 영연방의 1,500만 톤은 해군 함정까지 모두 합친 값이지만, 미군의 2,500만 톤은 '''군함을 제외한, 오로지 수송선만을 따진 값이다.'''] 정말 저 해결책이 실현된 것. 이를 위해 [[리버티선]]은 일부러 최대한 간소화된 구조를 채택했고, 용골 올리고 늑재 붙이고 외판을 리베팅 쳐서 붙이던 기존 건조 방법을 과감하게 버리고 배를 몇 개의 블록으로 나눠 용골 올린 다음에 그 위에 차곡차곡 용접으로 붙이는 방법[* 이러한 블록 공법은 현재도 쓰이고 있다. 물론 리버티선과 같이 미친듯이 찍어내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기공 시간이나 비용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을 사용해 건조 속도와 효율성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이 배를 건조한 노동자 대부분이 내륙 출신이라 바다를 본 적도 없는 사람이거나 심지어는 여성들도 있었음에도 1944년에는 평균 한 척당 42일 안에 만들어졌으며, 8시간마다 한 척이 나오고 있었다. 이벤트성으로 서둘러서 '''용골 올리고(강재 절단) 진수까지 고작 4일 15시간 29분''' 걸린 로버트 E. 피어리(Robert E. Peary)호의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물론 그렇게 양산하다 보니 용접불량 때문에 거친 대양에서 용접이 터진 배가 제풀에 분해되어 스스로 침몰해버리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덕분에 [[기계공학]]에서 파괴역학 분야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리버티선 외에도 대형 정규 항모인 '''[[에식스급 항공모함]]을 한 달에 한 척씩''' 뽑아내 '''전쟁 동안만 해도 32척을 계획, 24척을 건조, 17척을 취역'''시켰다. 더한 녀석들도 있는데, [[카사블랑카급 호위항공모함]]은 '''1주일에 1척식 취역시켜서 총 50척'''을 건조했고, [[보그급 호위항공모함]]은 '''42척을 건조해서 34척을 [[랜드리스]]로''' 영국에 쿨하게 보내줬다. 리버티선뿐만 아니라 포드의 윌로우 런 공장에서는 ''' 4발 중폭격기인 [[B-24]]를 1시간에 1대''' 뽑는 기염을 토했다. B-24의 경우는 비행기가 아무리 많아봐야 파일럿이 없으면 날아갈 수가 없으니까 이 예화는 미국의 인재풀 양성 능력에 대한 설명도 될 것이다. 2차 대전 후반기 미군은 '''30만명'''의 파일럿을 찍어내다 못해 '지금 있는 파일럿들로 전쟁 끝까지 써먹을 테니 '''훈련시간을 늘린다''''는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독일은 전투기는 충분한데 조종사가 다 죽어서 기존의 베테랑 조종사들을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써먹어야 했고[* 2차 대전 당시 독일 공군에 100킬 이상 에이스들이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이 때문이다. 아군은 적고 적은 많으니 은퇴하지 못하는 소수의 에이스에게 전과가 집중된 것.] 그 빈자리는 간신히 조종법 익힌 햇병아리 조종사들로 채우다가 결국 망해 버렸고, 일본은 유능한 조종사들이 있었음에도 [[카미카제|지도부가 다 날려먹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쇼미더머니가 아니라 [[Operation CWAL]]이다. * [[태평양 전쟁]] 당시 미 해군은 막강한 해군을 지닌 일본 해군에 밀리며 초반엔 고전했지만 [[미드웨이 해전]]으로 일본 해군에 결정타를 날리는 데 성공하고 결정타를 맞은 일본 해군이 공세적인 작전을 중지하는 동안 미국의 조선소들이 함정들을 본격적으로 생산해 배치하기 시작하면서 전력이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대량생산된 [[에식스급 항공모함]]과 호위 항공모함들이 배치되기 시작하면서 [[필리핀 해 해전]]과 [[레이테 만 해전]]에서 일본 해군을 양과 질로 압도했는데 전쟁 기간을 통틀어 미국은 '''총 101척의 항공모함을 생산했고''' 불과 18척을 생산(미완성 포함)한 일본 제국이나 24척을 생산한 영국 해군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이외에도 구축함은 '''자그마치 349척이나 건조되었다.''' 이 때를 기점으로 미해군은 전설의 영국 해군조차 뛰어넘는 세계 1위의 해군으로 거듭나게 된다. * [[디트로이트]] 아스널(전차제조공장) 한 곳에서의 전차 생산량이 미국 총 생산량의 4분의 1 수준(2만 2,234대)임에도 나치 독일의 '''12년간(1933-1945년)의 총 전차 생산량(2만 4,360대)'''와 거의 맞먹는 수준이었다.[[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worldoftanks&no=2941745&page=1|$]] [* 단, 전차 생산 대수만을 가지고 1:1로 비교하면 곤란하다. 독일은 비싼 가격의 고성능 전차를 선호했기에 동일한 비용을 들였을 경우 생산 대수가 적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 1942년, 일본군이 [[남방작전]]으로 남방 자원지대를 전부 장악하면서 당장 연합군의 천연 [[고무]] 자원이 부족해졌다. 차량 및 항공기 용 타이어로 활용되는 전략자원인 만큼 당장 연합군의 차량, 항공기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상황이었다. 그러자 미국은 대규모 인조 고무 공정 프로젝트를 가동해 순식간에 전세계 천연 고무 생산량의 2배에 해당하는 미친듯한 물량을 쏟아부었다. 예를 들어 인조고무 제조 프로젝트를 가동한지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20/11/29311/|불과 10개월 만에 총 2241톤의 고무를 생산해버렸다.]] 이는 최초 목표의 10배 정도를 초과 달성한 것이었다. 그리고 1945년에는 자그마치 90만 톤 이상을 생산하는 저력을 보였다. 반면 나치 독일의 인조 고무 생산량은 10만 톤 안팎이었으며 이마저도 전근대적인 노예제로 운영되는데다가 연합국의 전략폭격까지 겹쳐 비효율적인 생산 구조였다. 일본 제국의 경우에도 미해군의 제해권 차지로 인해 남방 자원의 수급이 끊겨 고무를 비롯한 천연 자원의 수급이 단절되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어마어마한 인조 고무가 생산된 덕에 연합군은 추축국을 압도하는 차량과 항공기를 생산해 지상과 공중을 지배할 수 있었다. *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 태평양 함대는 행정 착오로 '''보급받은 전투식량이 너무 __많아서__''' 심각한 문제를 겪었다. 1945년 당시 태평양 함대가 가지고 있는 자체 보급라인이 상대적으로 부족하자 전시 해운운송의 관리를 담당하는 전쟁선박국(War Shipping Administration)[* 미국 정부에서 설립한 2차 대전 전시조직으로 수천 척의 민간선박을 통제하여 미군을 위해 해상수송을 담당한 기관. 엄밀히 말하면 해군에 속한 조직은 아니나 위급 시 지원을 요청할 권한은 있었다.]에 보급을 맡겼다. 이때 태평양 함대 측에서 자체 보급라인의 수준만 생각한 나머지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은 전투식량의 보급을 요청했는데, 문제는 전쟁선박국은 [[렌드리스]]를 실질적으로 담당한, 해상 보급과 물류에 대해선 당대에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조직이었다. 게다가 그동안 전쟁선박국을 무시한 태평양 함대에서 도움요청이 오자 그동안 무시당한 것을 되갚으려고 잔뜩 별렀고, 그 결과 식량이 너무 많이, 빨리 보급되어서 처리할 방법이 없자 여기저기 떠넘기느라 난리를 친 것. '''4개월 동안 1억 명분의 식량'''을 보급해서 난리가 났다. 결국 게라마 열도와 사이판, 괌, 레이테 섬과 맥아더 장군의 남서태평양 해역군에 잔뜩 떠넘기고도 남아서 진주만에 상당량을 보관해야 했고, 그 결과 [[오키나와 전투]]에서 민정당국이 [[포로수용소]]에 수용된 민간인들을 위한 식량을 요청하자 태평양해역군의 모든 전진기지가 [[짬처리|남은 전투식량을 떠넘겼다.]] 상황을 파악한 민정당국이 황급히 지원요청을 철회했음에도 불구하고 요청한 것의 2배 정도의 식량을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https://m.blog.naver.com/imkcs0425/60148399288|#]] 게다가 저 부족한 보급라인이란 것도 보급품의 양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후방에 보급품이 넘쳐나고 있었지만 수송선단이 수요를 못 따라간''' 것이었다. 당시 미군에 맞서 싸우던 일본군은 풀뿌리와 벌레들을 씹으며 싸워야 했던 부대가 있었을 정도로 상태가 [[영 좋지 않다|영 좋지 않았다]]. 오히려 태평양 섬에서 미 해군에 의해 보급이 끊긴 지역의 병사들 건강상태를 점검하자 전쟁 초반에 미군에게서 [[노획]]한 전투식량들로 연명했는데 오히려 그로 인해 영양상태가 더 좋아진 부대가 있었다고. 풀뿌리와 벌레들을 씹어 먹으며 굶주림을 달랬던 일본군이 적들이 고기 반찬이 가득한 1억 명분의 식량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당시 일본 본토의 인구가 약 7천만 정도였으며, 일본은 본토 인구를 [[내선일체|조선인 인구까지 끼워넣어서]] 1억 명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더 슬픈 사실은. 원래 전투식량은 보존성을 우선하므로 신선식량이나 냉동식량보다 맛없을수밖에 없다. 따라서 신선·냉동식량과 전투식량이 둘 다 있다면 당연히 여건이 되는 한 신선·냉동식량을 먼저 먹는다. 그러므로 일선 전투부대가 아닌 후방기지에서는 전투식량이 아무리 많아도 신선·냉동식량이 있는 한 전투식량을 먹을 리 없었다. 태평양 함대의 보급역량도 신선·냉동식량을 우선해 짜여 있었고, 신선·냉동식량의 성공적인 보급이 전투식량을 찬밥으로 만든 것이다. 전투식량을 먹으라고 기존의 신선·냉동식량 보급을 줄인다면 당연히 반발이 있었을 것이다.[[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imkcs0425&logNo=60136032440&proxyReferer=https:%2F%2Fm.blog.naver.com%2FPostView.naver%3FblogId%3Dimkcs0425%26logNo%3D60148399288%26proxyReferer%3D|#]] *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은 꼭 필요한 비행장이나 항구가 있는 섬만 점령하는 '개구리 뜀뛰기' 작전을 실시한다. 필요없는 섬이면 일본군 몇 명이 있든 무시해 아군의 병력소모를 줄이겠다는 계산이었다. 대신 점령하지 않은 지역은 봉쇄하고 주기적으로 해상·공중 타격을 가해야만 했는데, 때문에 병력소모는 줄어들었지만 물자소모는 몇 배 더 늘었다. 전략의 기초인 물자절약을 무시하고도 전쟁을 승리로 이끈 건 미군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대표적으로 [[이마무라 히토시]] 장군이 방어하고 있던 [[라바울 본영]]은 전후 조사에서 여기에 상륙했다가는 [[이오지마 전투|이오지마]]나 [[오키나와 전투|오키나와]]는 애들 장난으로 보일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방비가 잘 되 있는 곳이었지만, 미군은 이곳을 공격하지 않았다.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초반 공세에 영국과 소련의 생산체계가 거의 마비되었기 때문에 미국은 병력이 투입되기 훨씬 전부터 유럽 전선에 [[무기대여법|병기와 물자]]를 쏟아부어야 했다. 사실상 단독으로 싸웠던 태평양 전선은 미국이 거의 100% 부담. 즉 반드시 피해야 하는 [[양면전쟁]]을 치뤄야 했던 형편이었다.[* 사실 2차대전은 워낙 거대한 전쟁이었기 때문에 독일(영국-소련)도 일본(중국-미국)도 영국(유럽-식민지)도 양면전선 상태였다. 유일하게 소련만 일본과 불가침 조약을 맺고 양면전선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미국은 독일과 일본을 각 전선에서 모두 압도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펜실베이니아 주 하나가 독일 전체 철강 생산량을 뛰어넘었다.''' 영국은 전체 렌드리스의 60%를 받았고(소련은 1/3), 태평양 전선은 물자 병기가 유럽 전선의 2할도 오지 않았음에도 일본군 총전비를 능가했다. 미국의 물자 중 90%가 유럽으로 갔다는 말은 과장이나, 그래도 유럽으로 간 물자와 비교하면 태평양에 투입된 물자가 훨씬 적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 물론 미국도 [[할리우드]]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리그]]의 스타들을 동원해 전시[[국채]]를 팔고 [[고무]]를 확보하기 위한 모집 운동을 하고 [[럭키 스트라이크]]는 원래 마크가 녹색 원이었지만 녹색 페인트를 만드는 데 [[구리(원소)|구리]]가 들어가는지라 붉은색으로 바꿨다거나 하는 기록이 있지만, 다른 국가들에 비하면 지극히 적은데다 전쟁에 가장 중요한 자원인 '''국민의 지지'''를 모으기 위한 의미도 컸다. * [[무기대여법]]으로 수많은 물자가 영국과 소련에 지원될 때 [[스팸]]도 주요 구호물자였는데 그 양이 얼마나 많았는지 영국인들이 영국은 스팸랜드가 되었다고 할 정도로 스팸 융단폭격을 받았다. 오늘날까지도 아예 스팸이라는 단어 자체가 '쓸데없이 많이 받는 무언가'를 뜻하게 되었으며, 이 당시 분위기에 대한 풍자는 [[스팸(몬티 파이튼의 비행 서커스)]]에 나타난다. * 일본 전역을 석기시대로 만든 [[B-29]] 폭격기를 4년동안 약 4000대를 생산했는데, 이 폭격기의 엔진인 Wright R-3350 Duplex-Cyclone 성형엔진은 출력(2200마력)은 매우 좋았지만 엔진과 비행기 엔진 카울간의 설계가 약간 안 맞았다.[* 엔진 자체는 명품이라 1950년대에도 3,500시간마다 오버홀 받으면 되는 훌륭한 것이었지만.] 때문에 엔진의 열기가 제대로 빠져나가질 않아 엔진 내부온도가 최대 5,600도까지 치솟았고, 그 와중에 엔진 무게를 줄이려고 [[마그네슘]]으로 처리한 부분들이 거의 타버리는 문제가 발견된다. 그렇다고 이미 생산중인 비행기의 설계와 공정, 엔진 설계와 공정을 바꾸자니 처리해야 될 일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러자 미군은 '''75시간마다 주기적으로 엔진 전체를 교환'''하는 방법으로 B-29를 굴렸다. B-29와 같은 장거리 폭격기가 75시간마다 엔진을 교환한다는 건 출격 횟수를 채 10번도 채우기 전에 엔진을 교환한다는 뜻이다. 그것도 엔진 4대 전부를! 물론 교환한 엔진을 그대로 내버리는 [[1회용]]으로 썼다는 것은 아니고, 교환한 엔진을 [[오버홀]]로 다 뜯어내서 세심하게 정비한 뒤에 다른 비행기에 설치하는 형태였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값비싼 엔진을 꼬박꼬박 제 시간에 맞춰서 교환한다는 건 미국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 [[맨해튼 프로젝트]] 당시 [[우라늄]]을 분리하기 위한 [[입자가속기]]를 건설하면서 대량의 전선이 필요해졌는데, 전시 상황이라서 전선에 쓸 [[구리(원소)|구리]]를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은]]으로 만든 전선을 사용했다.''' 은이 전선으로서는 구리보다 더 우월하긴 한데,[* 20 °C 정도의 실온에서 순수 은이 순수 구리보다 대략 5.66% 만큼 저항이 적다. 즉 같은 전압을 걸어주면 은은 구리보다 대략 6%(=1/(1-0.0566))만큼 전류가 더 많이 흐른다.] [[가격 대 성능비]]가 터무니없어서 보통의 경우에는 쓸 엄두도 못 낸다![* 보통 은이 같은 무게의 구리보다 50배에서 150배만큼 비싸다. 당연히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은 전선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비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리고 이 와중에 은을 대량으로 보유했던 미국 재무부[* 은은 그 자체로 전략물자이기도 하고, [[은본위제]]에서도 알 수 있듯 유사시 화폐 대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귀금속인 터라 재무부에서 은을 상당량 비축하고 있었다.]의 협찬을 받는 과정에서 프로젝트 연락담당 관료와 재무부 차관이 인식하는 은의 분량, [[도량형]]이 달랐던 웃긴 일화가 있다. >"은이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우선 1만 톤..." >'''"...은은 톤 단위로 세는 물건이 아닙니다.'''"[* 은 같은 [[귀금속]]이나 [[보석]]은 광산업이 아니고서야 보통 그램이나 킬로그램, 또는 [[트로이 온스]] 단위로 센다. --우선 10,000,000,000그램...--] 말 그대로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진짜로 빵이 없어서 케이크를 만들어 먹었다.]] 이렇게 전선을 만드는데 쓴 게 무려 '''1만 3천 톤'''에 달한다. 프로젝트 종료 이후에는 기계를 다 뜯어내고 회수해서 손실율은 36만 분의 1(0.0000027%)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리 전체의 극히 일부라지만 워낙 전체 양이 많아서 37.5'''kg'''의 은이 날아간건데 이게 밖에라고 말할 일인가??[* 다만 저 37.5킬로그램의 은 가격은 아무리 비싸도 3만 달러를 넘지 않는다. 현대 [[대한민국]] 정부 예산 규모에서도 어렵지 않게 감당이 가능한 금액이니 너무 쫄지는 말자.]~~ 워낙 돈 안 아끼는 프로젝트라, [[백금]]으로 실험용 잉곳을 만들었다가 쓸모없다는 결론이 나자 문받침대(...)로 쓰기도 했다. 그리고 이 때 [[재무부(미국)|재무부]]에서 빌려주었던 은은 [[로널드 레이건]] 시절까지 연방정부에서 쌓아놓고 있다가 1986년부터 [[https://en.wikipedia.org/wiki/American_Silver_Eagle|은화]]의 형태로 민간에 방출했다. * 미군은 2차대전 말기 [[일본 본토 공습]]으로 일본 전역 26개 도시에 4개월간 9만톤을 투하했으며 [[도쿄 대공습]] 하루에만 2,600톤을 집중시켰다. 한국전쟁에는 폭탄 65만 3천톤을 사용했고, 베트남전에서는 롤링썬더 작전 하나에만 86만 4천톤을 쏟아부었다. 다만 이쯤되자 폭격운용이 비효율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걸프전에서는 총 폭격량 약 10만톤 중 레이저 유도폭탄 6천톤으로 효율화하였다. 1999년 [[코소보 전쟁]]에서는 10주간 항공기 1천기를 3만 8천 소티 띄워 폭탄 2만 발을 퍼부었고 2003년 이라크전은 값비싼 유도폭탄과 미사일을 19,948발 사용해 전체의 68%를 차지했다. 그래도 아낌없는 공중지원이 어디가진 않아서 옛날엔 융단폭격으로 돈지랄을 했다면 요즘은 사람 잡는데 대전차미사일을 쏜다.. * [[1948년]] 소련군이 [[베를린 봉쇄]]로 베를린 시를 포위하자 미국과 영국의 공군은 베를린 시민들에게 식량과 물자를 지급하기 위해 대대적 공수 작전을 펴게 된다. 당시 미 공군은 전쟁 후 남은 C-47 수송기 2개 중대밖에 없었는데 이 방면에서는 사실 수송기 150대 정도를 생산하고 있던 영국이 앞서 있었다. 하지만 막상 작전이 시작되자 미군은 전 세계에서 수송기를 끌어모으고 신형 C-54기를 양산하기 시작, 결국 225대의 C-54기를 이용해 하루 5,000여톤씩 15개월 동안 영국 공군의 3배가 넘는 180만 톤의 물자를 실어 날랐다. [[1949년]] [[부활절]] 날([[4월 15일]])에는 하루 동안 1383대의 비행기가 베를린에 착륙하는 이벤트성 작전을 보여주는 여유까지 보였고, 중간중간 [[생필품]]만이 아니라 [[사탕]]이나 [[과자]] 등 [[기호품]]을 투하하기도 했다. 한편 소련은 포위작전 자체가 무의미하게 되어 공수작전으로 베를린이 잘 먹고 잘 사는 데다가[* 물론 포위 상황을 감안했을 때 넉넉하다는 이야기다. 15개월 동안 300만 톤 이하의 물자는 베를린 같은 대도시를 운영하는데 빠듯하다.] 이마저도 나중에는 비축까지 하는 것을 멍하니 바라만 보다가 결국 체면만 잔뜩 구기고 봉쇄를 포기했다. * [[이스라엘]]이 [[제4차 중동전쟁]] 때 위기에 몰리자 미군 항공수송 사령부가 갖고있는 대형 수송기들이 동원돼서 지구를 반바퀴 돌아 수십만 톤의 물자를 일주일 사이에 이스라엘에다 공수했다. 하루에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온 비행기가 수십 대씩 이스라엘 공항을 뜨고 내리는데 지체되거나 문제가 생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 [[걸프전쟁]] 때 어떤 육군 장성이 무심코 사막에서 군인들이 따뜻한 햄버거같이 미국에서 흔히 먹는 음식을 못 먹어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부사관이 방탄트럭으로 음식을 따뜻하게 데워 보급하면 되지 않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다른 군대라면 채택은커녕 생각도 못 할 방안이지만 미군이었기에 진지하게 검토되었고 곧 채택되었다. 해당 부사관은 1계급 [[진급]]에 2만 5천 달러의 포상금을 받았다고 한다.[* 단순한 [[돈지랄]]로 볼 수도 있지만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은 병사들의 사기 향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베트남에서는 헬리콥터로 갓 구운 스테이크를 날라오지 않았던가-- 이는 21세기에 와서 현재까지도 그대로 내려오고 있는데, 이것이 훈련할때도 마찬가지로 작용해 미군과 연합훈련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연합훈련중 한국군이 한참 숙영지를 만들고 있을때 미군은 '''에어컨과 냉장고''' 까지 가동되는 PX텐트를 제일먼저 설치한다.(...) * 각 선진국이나 강국에서 [[병원선]]을 운영중이고 한국도 정부기관이 섬지역 진료 차원에서 작은 병원선을 운영중인 반면 미국은 대형유조선을 개조하여 만재배수량 체급 '''7만톤급'''짜리 병원선 '''2척씩'''이나 운영중이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거냐면 7만톤급은 미국이 건조한 그 어떤 전함(BB)보다도 더 무거운 수치고, [[PANG|프랑스 해군의 차기 항모]]의 만재배수량이 7만톤급이다. 한마디로 병원선이 전함, 항모수준의 크기를 자랑한다는 것. 게다가 [[머시급 병원선|미해군이 운영하는 이 병원선]]에는 1대당 10억이 넘어가는 최신 의술장비를 비롯해 어지간한 대학병원 수준의 의료장비를 자랑하며 의료진도 잘 구축되어 있다. 그야말로 돈지랄이 가능한 미국이어야 가능한 수준. [[파일:external/www.globalsecurity.org/carriers-2012.gif]] * 세계 [[항공모함]] 전력의 7할을 차지한 미 해군의 위엄.[* 물론 사진명에서 보다시피 2012년 기준이다.] 참고로 항공모함은 워낙 고가라서 개별 함정 유지비만으로 웬만한 중견 국가들의 국방예산을 말려들게 한다. 그런데 미국은 배수량 10만 톤짜리 대형항모를 10척씩 운용한다. 게다가 옛부터 [[F-14]]를 쏴댔던 미 해군은 현재도 [[F/A-18]], [[EA-18G]] 같은 전폭기들[* 비슷한 성능의 일반 공군기에 비해 유지비가 훨씬 많이 들어간다. 게다가 그렇게 많은 돈을 사용하면서도 워낙 험한 바다에서 험하게 써먹는 바람에 수명도 훨씬 짧다. 그나마 말벌은 고양이보다 싸긴 하지만 공군의 F-16에 비하면 가성비는 비교불가.]을 날리고 있으며 저 항공모함은 자체 방어능력이 거의 없으니 방어를 위해 [[항모전단]]을 꾸려서 돌아다닌다. 니미츠급 항모 한 척 굴리는 데만 해도 어지간한 중소국은 나라가 휘청할 지경인데 거기에 추가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들어가는 항모전단을 10개 이상 굴리는 짓은 미국만이 가능한 돈지랄이다. 요즘 경제가 안 좋다고 줄인다고 하는데 11개 전단에서 1개 줄여서 10개로 줄인다고 한다. 물론 항모전단 1개가 잡아먹는 무지막지한 돈을 생각하면 큰 절약이지만 나머지 10개를 고려하면 조금 미묘하다. 그나마도 [[제럴드 R. 포드급 항공모함]]이 진수되면 다시 11개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그리고 이름에 ‘항공모함’이 들어가는 배만 11척이지, 위 이미지와 같이 미군은 [[F-35B]]를 운용하는 [[와스프급 강습상륙함]], [[아메리카급 강습상륙함]]까지 보유 중이며 이들은 타국의 [[경항공모함]]은 물론 프랑스의 정규항모인 [[샤를 드골급 항공모함]]보다도 크다. * 2005년 5월 14일 [[키티호크급 항공모함]] CV-66 아메리카를 차기 항공모함 건조 시 항공모함에 대한 위협과 그 피해수준을 반영하겠다는 이유로 [[대함미사일]]·[[함포]]·자유낙하폭탄·[[레이저]]·유도폭탄·[[기관포]]·[[어뢰]]·[[기뢰]] 등 온갖 방법으로 실험한 후 물고기집으로 만들어버렸다. 또한 [[포레스탈급 항공모함]] CV-59 포레스탈 CV-62 인디펜던스는 역시나 인공환초로 쓰려고 수장이 계획되어 있다. 사실 다른나라라면 [[스크랩|고철값]]만으로도 감지덕지할 수십척의 배를 핵실험을 통해 죄다 수장시켜버린 [[오퍼레이션 크로스로드]]에서 이미 싹수가 보였다.[* 투입된 전함 중 가장 구식인 [[와이오밍급 전함]] 2번함 아칸소만 해도 기준배수량 26,000t이다.] * 해군에게 아무데서나 못 구할 데이터를 제공하고 침몰한 항공모함의 최후는 양반인 편. [[진주만(영화)|진주만]] 영화 제작진이 해군의 협찬을 받아 스프루언스급 4척을 날려버렸다. 스프루언스급은 대만이나[* 중국과의 마찰을 우려한 미국은 대만의 요청을 거절했으나 그렇다고 대만을 내버려둘 수도 없었기 때문에 스프루언스급의 배리에이션 함인 [[키드급]]을 판매하였다.] 칠레가 미국에게 퇴역함을 자신들에게 판매해 달라고 매달렸었던 함정. 즉 미국은 타국에서 주력함으로 쓸 수 있는 핵심 전투함을 영화 소품으로 쓰고 버렸다. * 유명한 [[B-2]] [[폭격기]]. 한대만으로 어지간한 나라 하나를 [[핵무기]]로 쑥대밭을 만들 능력이 있는 이 22억 달러짜리, 당시 환율로 약 2조 7천억 원 정도 했던 폭격기를 20대[* 1대 더 있었지만 정비상의 실수로 1대를 잃었다. 무사고 폭격기의 최초의 사고.]를 굴리고 있다. 사실 원래 계획은 133대를 뽑는 거였다. 이 정도로 생산했다면 B-2라도 대당 가격은 꽤나 떨어졌겠지만 냉전이 끝나자 필요성이 줄어들어 생산기수가 감축되었고, 연구개발비가 21기에 분산되어서 대당 가격이 막대하게 올라간 것이다. * 현재 미군의 유류는 모두 [[항공유]]인 JP-8(Jet Propellant 8)이다. JP-8은 1990년대 이후 미국 정부와 군의 연료 보급체계에서 디젤을 완전히 대체했다. 대체된 이유는 바로 고[[옥탄가]] 연료로 유류보급체계를 통일하는 것이 실제로는 더 적은 행정소요를 지출하며 [[M977 HEMTT]]로 대표되는 미군의 병참체계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등유램프나 가스 스토브 험비나 브래들리 등의 디젤 엔진에 항공유를 붓는 정신나간 짓을 당당하게 실행하고 있다. 타국군이었으면 [[혼유사고]]로 분류될 짓임에도 이를 당당히 실행하는 이유는 유류보급체계 통일로 절감가능한 비용 등 소요가 혼유로 인해 증가하는 장비 교체소요보다 크기 때문이다. 걸프전 이라크 전쟁 때 미군 기갑부대의 연료 소모량과 보급 수준에 대해서 알아보면 좋다. 다른 나라는 아예 엄두도 못 낼 보급량을 아무런 문제 없이 보급해 준다는 데서 [[충격과 공포]]다. 쿠웨이트에서 미군이 __하루__ 동안 쓴 JP-8의 양이 상기한 롬멜 원수의 아프리카 기갑 군단이 __편제되어 사멸할 때까지__ 쓴 기름보다 많다. [[M1 에이브람스]]전차는 [[가스터빈]] 엔진을 탑재해서 경유건 등유건 [[향수(화장품)|향수]]건 다양한 연료를 쓸 수 있지만[* 심지어 '''[[보드카]]''' 같은 고도주도 가능하다. [[2차 대전]] 당시 [[소련군]]이 절찬리에 써먹은 전차용 연료+[[부동액]].] 실제로는 JP-8만을 사용한다. * 미군은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아이스크림과 같은 전시라 귀한 [[기호품]]이 사기에 큰 영향을 준다고 판단하여 담배, 초콜릿, 아이스크림 등 각종 기호품을 넉넉하게 보급했다. 그런데 해군은 해상작전을 해야하고 선박마다 실을수 있는 물자가 한정되어 있고 기름, 포탄, 식량을 넣다보면 거진 공간이 없었기에 유독 기호품 보급이 힘들었는데 전투용 함선에 기호품을 넣기에는 공간이 부족한데다가 계속 이동하기 때문이였다 그래서 미해군은 '해군에 오직 [[아이스크림]]을 보급 하기 위해 운용되는 [[바지선]]을 만들자'는 돈이 넘쳐나야 하는 발상을 했다. 아이스크림용 바지선의 대당 연간 운용 비용이 100만 달러로 현 가치로 환산하면 훨씬 높은 비용(현 가치로 '''약 500억 원'''에 달한다!)이었는데, '''[[쿼츠급 보급함|미군은 이런걸 12척이나 운용했다.]]''' 이 외에도 항공모함과 같은 큰 함선은 기호품을 넣기에도 충분했기에 아이스크림 창고가 따로 있었다. 이때문에 렉싱턴급 항모가 산호해에서 격침당해 퇴선하는 와중에도 아이스크림을 챙겨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참고로 일본 제국 해군은 아이스크림 바지선이 아닌 일반 급양함을 고작 2척 운용하는데 그쳤고 간식으로는 아이스크림 대신 비교적 저렴하게 만들 수 있는 [[라무네]]를 마셨으며 그 조차도 양은 항상 모자랐다. * 위와 비슷한 사례로 [[리처드 닉슨]]이 태평양 전쟁 당시 남태평양 후방에서 미해군 보급장교로 복무했을 때에는 가게를 하나 차려서 햄버거와 호주산 맥주를 파일럿들에게 하나씩 무료로 지급할 수 있을 정도로 보급이 넘쳐났다고 하며 파일럿들을 상대로 여유롭게 판돈이 큰 [[포커]]까지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만큼 보급이 넘쳐날 정도로 미국의 병참라인이 튼튼했다는 반증이다. * [[베트남 전쟁]] 당시 북베트남군은 [[케산 전투]]에서 미군을 포위했는데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보여준 프랑스군의 추태와 달리 미군은 압도적인 화력과 어마어마한 보급력으로 전투를 해결했다. 미군은 [[B-52]] 등 많은 항공기들을 동원해 '''12만 톤이 넘는 폭탄을 투하해''' 북베트남군을 박살냈고 한 연대는 미군의 공중 폭격으로 인해 4분의 3이 궤멸당했을 정도였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헤르만 괴링]]의 망상으로만 끝났던 공중보급을 미군은 진짜로 실현해 하루 2500소티의 헬기, 수송기 보급으로 포위된 5000여명 미군 전체의 보급을 충분히 책임졌고 결국 북베트남군은 오지게 두드려맞은 후 포위를 풀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1972년 [[부활절 공세]] 당시에도 기세 좋게 [[남베트남군]]을 밀어내던 북베트남군은 이윽고 미군 [[B-52]]와 항공기들이 투하하는 어마어마한 폭탄 세례를 당해내지 못하고 8만 명에서 15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채 공세를 중단했다.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게릴라]] 전술로 덤비던 [[베트콩]]들도 테트 공세 이후에는 거의 붕괴된 상태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