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영일관계 (문단 편집) === 19세기 === 19세기에 미국은 [[매튜 페리(군인)|페리 제독]]을 보내서 일본을 개항시킨다. 그렇게 미국이 일본에게 영향력을 행사려는 찰나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이 터졌고, 전쟁 직후 이를 수습하느라 일본에는 제대로 영향력을 끼칠 수 없었다. 하지만 일본 [[보신전쟁]]이 한창일때 남북전쟁 때 썼던 무기들을 팔아치워서 어느정도 이득을 보았다. 한편 영국은 [[러시아 제국]]과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패권경쟁을 치렀다. 하지만 러시아가 극동으로 진출하자 영국은 큰 위협을 느꼈으나 당시 대영제국은 이미 수많은 식민지를 점령하고 기존의 식민지들을 유지하기에도 벅찼기 때문에 동아시아까지 진출할 여력이 없었다. 때문에 영국은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진행할 때 도움을 줬고,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 성공하고 근대국가가 되어서 영국, 미국과 손잡고 같이 러시아 제국을 견제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69/0000601695?sid=110|#]] 1902년 영국과 일본은 [[영일동맹]]을 결성했다. 이는 러시아가 [[절영도]] 조차 요구, [[아관파천]] 등으로 동아시아에 세력을 확대하는 상황을 어떻게든 저지하려는 영국이 [[보어전쟁]]으로 인해 군사력을 투사할 여력이 되지 않자 일본을 이용해 견제하는 목적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편 [[일본]]에서는 영일동맹의 결성 당시 축제 분위기였다. 메이지 유신의 결과물로서 열강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을 극적으로 체감할 수 있게 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미국과 영국은 일본을 지지하며 아낌없이 군자금을 투입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0/0003425547?sid=110|#]]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