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민족 (문단 편집) == 상세 == 개요에서 언급했듯, Nation(민족)은 언어, 문화, 종교, 혈통, 풍습 등의 공통된 특성을 가진 집단이고 이러한 공통된 특성이라는 것은 모호한 개념이기 때문에 학계에서도 명쾌한 정의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민족이란 개념만의 특징은 아니다. 민주주의 등도 과거인들의 관점에서는 완전히 달랐다. 이는 시간에 따라서 개념이 점점 발전하고 변했기 때문이다. 민족의 정의는 보통 후술할 카테고리 둘 중 하나에 속한다: * 정치체제를 초월한 원시적 공동체 (Primordial community): 민족은 확연히 구분이 가능한 혈통, 문화, 언어 등으로 이루어지며, 역사의 흐름은 민족의 흐름과 (어느정도) 일치한다는 이해.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퍼진 민족의 개념. * 근대화와 함께 나타난 상상의 공동체 (Imagined community): 민족이라는 개념은 근대화의 산물로, 정치사회적 근대화 (국민교육, 물리적 국경 등)로 인해 형성된 상상의 공동체라는 이해. 서구 정치학계에서 제시하는 민족의 개념. 베너딕트 앤더슨이 대표적이다. 원시적 공동체로서의 민족이라는 개념은 20세기 후반에 들어 사장되었고, 현재는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민족의 개념이 학계 널리 인정되는 추세이다. 이는 원시적 공동체를 구성한다고 믿어졌던 혈통, 언어, 문화 등의 기준이 기준이라 볼 수 없을 정도로(...) 주관적이며, 역사적으로 이러한 기준이 고정적으로 이어진 적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민족의 형성에 대해 학계는 프랑스 혁명과 근대국가 수립에서 그 근원을 찾는다. 프랑스의 국토는 [[백년전쟁]]이 끝나서야 비로소 현대와 흡사한 형태로 발전되었고, 당시 [[오일어]] 계통의 북부와 [[오크어]] 중심의 남부는 의사소통조차 불가능하였으며, [[브르타뉴]], [[알자스-로렌]] 등 로망스어 계통 언어가 주류가 아닌 지역도 프랑스 국경 안으로 편입된 상황이었다. 언어가 다르니 문화, 풍습이 같을 리가 없다. 프랑스 성립 이전의 역사를 본다면, 골, 라틴, 게르만 등 여러 종족의 사람들이 차례대로, 또는 중복되어 프랑스에 거주함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프랑스 고유의 혈통이 역사의 여명과 함께 유유히(...) 보존되었을 가능성은 없다고 볼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을 통해 왕정을 타파한 혁명정부는 기존의 왕정 지배의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인민을 주권을 근원으로 삼는 근대적인 국가를 탄생시켰고, 근대국가의 설립을 통해 국가의 정통성을 부여할 '국민(Nation)'이란 정체성을 발굴한 것이다. 이에 따라 프랑스 국경 안에서 생활하는 코르시카인, 브르타뉴인, 알사스-로렌인, 노르망디인, 부루군디인 등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프랑스의 국민'''이라는 정체성, 즉 민족이 나타난 것이다. 이 공동체를 창조, 유지하기 위해 일-드 프랑스 지역의 문화를 중심으로 프랑스의 언어와 문화가 정의, 전파되었고, 프랑스 국경 속 다양하게 존재했던 공동체가 하나로 묶이기 시작한 것이다. 독일 또한 저지 [[독일어]] 지역과 고지 독일어 지역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였으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과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의 결과로 독일어 [[성경]]이 만들어졌고, 마르틴 루터의 독일어 성경을 중심으로 중립적 언어인 표준 [[독일어]]가 만들어지면서 종족적으로 분리되어가던 독일인들을 통합시킬 수 있었다. 저지 독일어를 쓰던 지역인 [[네덜란드]]는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정치적으로 분리되면서 독자적인 표기법을 쓰게 되었고 결국 종족적으로 분리되기에 이르렀다. 그러한 상황에서 Nation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 혁명군의 침공을 받고 [[라인 강]] 서부의 게르만족 거주지역이 통째로 프랑스에 떨어져나가는 위기를 겪자 독일인들은 민족 국가의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프랑스의 Nation에 저항하기 위하여 게르만족이라는 Ethnic Group[* 독일어로는 Volk와 Nation이다. 형태와는 달리 독일어의 Nation은 영국, 프랑스의 nation과 의미가 다르다.][* Ethnic Group은 [[한국]]에서 말하는 민족에 더 가까운 개념으로, 문화 혹은 언어적 [[부족]] 중심의 민족을 의미한다. Ethnic을 기반으로 한 정체성은 논란은 있으나 [[프랑스 혁명]] 이전부터 어느정도는 나타났고, 이것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프랑스 혁명 전쟁 및 [[나폴레옹 전쟁]]이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군]]에게 침공당한 독일은 수백개의 제후국으로 나뉜 상태였고, 형식적이나마 그들을 묶어 주던 [[신성 로마 제국]]도 붕괴되었기 때문에 게르만족의 통일된 Nation이 부재한 상황이었다.]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 정체성을 만들었고, 국가보다는 종족이 중심이 되는 민족과 이로 인한 민족의식을 강화시키게 된다. 그 결과 19세기 내내 독일인들의 통합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였고 결국 독일제국의 성립으로 이어졌다. 즉 독일에서 Ethnic Group을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가 형성되었고, 이것을 기반으로 독일인이라는 Ethnic group이 중심이 된 국가인 [[독일 제국]]이라는 Nation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독일과 프랑스에서 볼 수 있듯, 민족의 본질에 대한 정의는 다를 수 있으나, 두 가지의 개념 모두 창조된 개념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독일의 경우 공통된 언어, 문화, 역사를 가진 집단들을 묶어 독일민족(Deutsches Volk)을 형성했고, 프랑스의 경우 프랑스라는 울타리에서 공동체의 개념을 고안해 프랑스 민족을 고안해 낸 것이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프랑스와 독일 학계에서 민족에 관한 논쟁이 예전부터 일어났다. 프랑스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국가 중심의 민족주의, 즉 Nation의 개념을 기반으로 민족과 민족주의의 발달 등을 설명했으며, 독일은 Ethnic Group을 중심을 이것을 설명하였다. 이는 양국의 역사적인 경험 등이 기반이 된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맞다고만 보기가 힘들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알자스-로렌]] 문제로도 이어진다. 프랑스의 입장에서 알자스-로렌은 프랑스라는 Nation에 속하는 지역이었고, 독일의 입장에서는 독일인이라는 Ethnic Group에 속하는 지역이 된 것이다. 이것은 비단 [[보불전쟁]]으로 야기된 것이 아닌, 19세기 전반 프랑스와 독일의 라인강 접경 문제 등에서 이미 나타난 것이었다. 이러한 창조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근대주의적 관점에서는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라 정의하고 있다. 태고적인 민족이란 개념이 사장된 대신, 상상의 공동체가 어느 시점에 발생했는지 (즉, 근대적 산물로서의 민족이라는 이해의 정당성)에 대한 논의가 뜨거운 편이다. 베너딕트 앤더슨 등 근대화의 산물로서의 민족이라는 개념을 미는 학자들은 민족의 탄생을 보통 [[프랑스 혁명]] 즈음으로 잡는 반면, 민족의 공동체적인 요소, 그리고 역사 속 민족(또는 동질한 족속)을 언급한 예시를 중요시 여기는 학자들은 민족이란 개념의 근원을 훨씬 이르게 잡는 편. 후자의 경우 "동일한 문화적 유산(Cultural heritage)를 계승했다고 믿는 사회적 공동체"로서의 민족의 개념을 제시한 버나드 야크가 대표적이다.[* 버나드 야크의 경우 상술한 민족의 정의로 민족, 그리고 민족주의의 이해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래 민족 회의론, 실재론 등의 논의는 이미 30년 전에 논의가 마무리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덧붙여 민족의 성격에 대한 논의도 아직까지 뜨겁게 진행되는 편. 20세기를 맹렬하게 불태운 민족주의의 여파를 고려했을때, 민족이라는 개념이 과연 현대의 자유주의적 가치에 부합하는 개념인지, 아니면 20세리를 끝으로 종언을 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인류의 어두운 면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마지막으로, 위에 서술한 비교적 자세한 민족 개념의 태동에도 불구하고, 민족이란 놈이 실재하는 공동체인지, 사회정치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공동체 개념인지에 대한 논의가 맹렬하다. 유고슬라비아 내전 등의 예시를 들며 민족주의의 위력을 근거로 민족의 정치성을 피력하는 학자가 있는가 하면, 유고 내전 등의 민족 간 폭력이 과연 민족과 민족주의가 주 원인이 되어 일어난 현상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존재한다. 이러한 논의는 민족을 형성한다고 생각되는 여러 기준점들이 극히 주관적[* 민족주의는 민중적 관점이 많으나 의외로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민족주의자들은 귀족 같은 사람들을 섬기거나 대우해야 정상이다. 그들은 적은 숫자가 단점이긴 하나 민족주의가 주장하는 장점을 더 우월하게 가질 수 있으며 심지어 해당 민족을 창조하거나 과정에 많이 기여하고 그렇지 않아도 민족의 정수 그 자체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귀족들이 특히 좌파 민족주의를 어이없이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논의라 볼 수 있겠다. 인류역사에 큰 기여를 한 석학인 홉스봄마저도 "민족은 한 공동체가 민족을 이뤘다고 여길때 형성된다" 고 지극히 두리뭉실하게 정의하고 두손을 들 정도로(...) 그 정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며, 인류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형태와 성질에 대한 정의가 미약한 개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